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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백병원이 표현하는 새로운 '공간'

의도된 공간은 '이미지'를 창조하고 '예술'을 담는다

  • 입력 2017.12.30 10:13
  • 수정 2017.12.30 22:17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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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희원장은 지난 10월 시청 문회홀에서 공직자 상대로 앵콜 강좌를 가졌다.

지난 10월 여수시청 문화홀에서 의사 백창희가 강의를 하고 있었다. 2년 전에 실시한 ‘여수시청 굿모닝 아카데미’를 가진 후 ‘다시 듣고 싶은 명 강의’ 요청에 응한 앵콜 강의였다.

건강강좌가 아니다. 병원 경영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청동기 시대가 도래 했는데도 이를 간파하지 못한 병원장들이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을 한탄했다. 변화를 선도해 나갈 것을 주문하는 강의를 이어 가고 있었다.

공무원들 역시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의 사고방식에만 갇혀 있으면 도시 발전도 미래비젼도 없다고 강조하는 중이었다.

투명한 '누드 엘레베이터'에서 보이는 건물 공간

당시 그는 공간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말하며 백병원에서 적용하고 있는 투명하게 보이는 ‘유리 진료실’과 ‘누드 엘리베이터’, 그리고 공간의 추가요소로 컬러를 예로 들며, 병원에서도 공간에 변화를 준 이후에 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간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곳이다. 병원 건축물도 예술작품이다. 병원경영도 '예술'이다.

진료실 안이 훤히 보인다. 밖에서 기다리는 환자에게 투명 유리 때문에 많은 정보를 보면서 대기하도록 돕니다.

예를 들어, 진료실의 경우 일체 불필요한 실내 장식을 제거하고 오로지 환자를 위해 대형 모니터와 의자만을 배치한 것은 환자와 의사가 서로 집중하도록 하는 장치다.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는 밖에서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의사의 진료모습을 보면 지루하지 않도록 해주고 진료를 대비하게 해준다.

혼자서 처음 방문한 어느 병원의 진료 대기실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는 환자를 상상해 보라. 바로 그 상황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다.

진료실이 훤히 보이는 것은 기다리는 환자들에게도 어느 정도를 기다려야 할지 알게 해준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와 어떤 대화를 나눌지,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지를 미리 보게 돼 처음 방문한 환자에게도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백병원 진료실 안에는 의사가 앉을 의자가 없다.

의사가 환자에 오로지 집중해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마주친다. 어깨전문병원인 만큼 어깨를 만져보고 또 어깨를 들어도 본다.  의사는 한 순간도 앉아있지 않고 서서 앉아있는 환자 진료에 열중한다. 그러한 전 진료과정의 오픈된 모습은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신뢰로 다가간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여수백병원의 ‘이미지’가 된다.

병원의 이미지라는 게 고가의 의료장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숙련을 지닌 수술에만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이렇게 배치를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병원에서 방문 환자들의 불편 사항을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환자가 많이 밀릴 경우 어떤 안내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며 지루해 한다. 이를 반영했다.

또 하나, ‘유리 진료실’로 인해 직원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예전의 공간에서는 직원들도 혼자 한가할 때면 스마트폰도 보고 적절히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투명유리 진료실’은 그럴 수가 없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어 직원들의 업무집중도가 높아졌다.

전통 한옥의 서까래 와 창호 문양을 건물에 응용했다.

대기실과 접수 창구도 중요한 공간이다. 첫 대면이기 때문이다. 아늑한 분위기를 주려고 노력했다. 세련된 칼라이면서도 전통 창호 문양을 배치했다. 여기에 조화를 이루기 위해 딱딱한 콘크리트 천정을 한옥 서까래로 마감했다. 그리고 진료실과 바로 이어지는 동선으로 1층 전체에 열린 공간 이미지를 부여했다. 이곳 여수백병원을  첫 대면하는 방문객은 접수창구에서부터 기존의 병원 이미지를 벗어던진다.

첫 대면을 각인시켜주기 위해서 또 다른 코드를 병원 정문의 손잡이에 숨겨뒀다. 이 아이디어는 드롭탑 커피숍의 손잡이를 D자로 디자인한 것을 차용했다. 하지만 누드 여성을 문의 손잡이로 사용했다면서 시민 한 분이 시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병원의 손잡이가 선정적이다는 이유였다.

어깨 치료를 마치고 다 나았다는 상징성을 나타내려고 병원 정문 문고리를 누드 여성이 만세 부르는 장식을 택했다. 선정적이다는 민원제기가 있었다.

병원 측은 적극 해명에 나서야 했다. 이미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거니와 만세를 부르고 서 있는 형상이 아픈 어깨 치료결과를 보여주기 위한 상징물이라는 설명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예쁘게 보이려고, 편리하게 하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그는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바뀐 공간 안의 모든 사람들의 말씨, 사고방식, 태도까지를 다 바꾸도록 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공간 개념은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다. 실내 장식이 일반 병원과 유사하고 특별한 장식도 없었을 때는 환자들이 병원에 민원을 제기하며 큰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지르고 욕설까지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백병원의 세련된 공간에서는 큰 소리로 주문사항을 요청하거나 민원제기를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일은 사라졌다.

편리한 동선과 함께 진지한 진료 전 과정이 보여지고, 병원 로비의 공간에도 아늑한 조명과 고전미가 있는 전통 창호 문양의 배치로 인해 병원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결과다. 감히 그러한 이미지의 공간에서는 누구도 큰소리를 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간변화가 가져다준 효과다.

2층 MRI 촬영실 앞의 환자 대기실. 화려한 배경 색과 함께 은은한 전통창호가 돋보인다.

2층 대기실의 응용도 아늑함이다. 이곳은 MRI 특수촬영을 하기 위해 초조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기다리는 공간이다. 화려하게 원색 칼러가 지배하면서도 벽면의 전통 창호 문양과 창호지를 통과한 빛은 아늑함을 선사한다. 병원이라고 무거울 필요가 없다. 병원이라고 해서 세련된 디자인이 넘치나지 말란 법도 없다.

수술실의 아늑한 천정

3층 무균 수술실 천장도 포인트는 ‘릴렉스’다. 수술을 기다리며 천정을 봐야 하는 환자에게 긴장감을 풀어주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어느 별장의 안방에서 하늘이 보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아늑함 말이다.

또 관심을 끄는 공간은 건물 꼭대기 전망이 제일 좋은 곳에 위치한 레스토랑. 
여수백병원에서는 구내식당이란 표현을 안쓴다. 레스토랑이다.  환자들에게 가족들에게 직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레스토랑이다. 밥을 파는 곳이다. 고객의 맘에 드는 공간이어야 하고, 맛있는 식사가 제공되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서 식당을 여느 병원처럼 지하실에 두지 않고 제일 꼭대기층 라운지에 배치했다.

건물 고층의 라운지에 배치한 환자와 작원들의 레스토랑. 여기선 구내식당이라 하지 않는다.

아픈 환자나 의료진에게 최상의 장소에서 최상의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곳이다.

백창희 원장은 2016년도에 과감한 결정을 했다. 평소 꿈꿔온 병원다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옆 건물을 구입해 그 건물을 없애고 원하는 공간으로 확장했다. 기존 공간에서 약 두 배가 늘어난 연면적 6700㎡ 가 되었지만 병상은 오히려 줄였다. 그만큼 쾌적한 공간이 부여된 것.

사무공간과 병실 곳곳이 2016년 증축으로 편리한 공간이 되었다.

결국 기존 병상이나 수술실, 사무실 등의 모든 공간이  더 넓어지고 편리해졌다. 모두들 수억을 들여 증축하면서 병상수를 오히려 줄이는 병원장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편안한 병원, 안정감 있는 병원, 쾌적하고 믿을 수 있는 병원의 이미지 역시 수술 잘하고 진료 잘하는 병원이라는 믿음 만큼 중요한 가치로 여긴 탓이다.

먼 섬 가거도 주민 한 분이 뱃일을 하다가 어깨를 다쳐 고생했다. 백병원에 와서 수술하고 나아진 환자였는데 그 분이 처음 진료 받을 때 대뜸 “청담동 병원에 다니며 치료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주 의기양양하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왜 그 환자는 병원 이름도 말하지 않고 ‘청담동’ 병원이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잔뜩 담아서 말했을까?  청담동이 가지는 이미지 때문이었다고 본다. 이렇듯 이미지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적인 작가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Happy Hour'  촤근 구입해 1층 로비에 걸었다.

그래서 최근 데이비드 걸스타인의 작품을 구해서 1층에 걸었다. 작품 제목이  ‘Happy Hour'.  아픈 환자에게 치유를 가져다주면 그것이 ’행복한 시간‘이다. 병원이 추구하는 가치다. 해외에서 어렵게 구해온 예술품도 따지면 공간을 바꿔주는 요인이 되고, 병원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이미지가 될 것이다.

여수백병원 백창희 원장. 어깨 관련 두 권의 의학 저서를 낸데 이어, 병원경영 관련 저서를 곧 펴낼 계획이다.

그렇다고 여수백병원은 이미지만을 추구하는 병원에 머물지는 않는다. 실력 있는 병원, 진료 잘하고 수술 잘 하는 병원은 기본이어야 한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어깨전문 병원을 초기부터 9년 연속 지정 받았다. 세계적인 학회에 논문 발표와 게재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내 어깨 관련 전문 서적의 빈곤을 백창희 박사는 직접 해결했다. ‘어깨는 날개입니다(2012)’,  '내인생의 시간표, 어깨통증'이라는 부제에 '맞나? 오십견(2016)'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미 병원경영관련 서적을 펴내려고 자료준비를 마쳤고 곧 출간할 계획이다.

병원 간판이 “어깨에 미치다”이다. 병원 입구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간판 대신 들어선 문구다. 10년 넘게 사용한 백병원의 고전적 문구 ‘어깨는 날개입니다’에 대한 리뉴얼 개념이기도 하고, 외국 학회 나가서 색다른 명함을 주고 싶은 욕심에서 디자인된 문구다고 귀뜸한다.

병원 정문에 '여수백병원' 대신  '어깨에 미치다(Crazy  For Shoulder)' 간판이 걸려있다

외국 학회에서 명함을 건내자 ‘Crazy For Shoulder'를 보고 외국 의사들이 바로 ’와우~‘를 연발했단다. 

그러나 놀라게 해주기보다는 이 문구의 본질은 '어깨에 열광하고, 어깨를 사랑하고, 어깨에 온통 미쳐버리겠다'는 의미다.

거기다 추가한다면 식당이 간판을 내걸 때 상호를 다는 게 좋을지, 그 집에서 정말 잘하는 요리 한 종목을 내걸지를 고민하는데, 어쩌면 ‘어깨에 미치다’는 어느 식당에서 가장 잘하는 스시 한 점을 상호를 대신해 내건 격이라고나 할까? 

미치지 않고는 이런 방식들을 못 택한다.
여수 백병원.  확실히 ‘어깨에 미친 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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