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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26명 열사들

민주화와 노동 인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죽어간 87년의 열사들

  • 입력 2018.01.16 19:53
  • 기자명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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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개봉한 영화 <1987>이 새해 들어 더욱 흥행몰이를 하는 중이다. 6백만 관객 동원도 코앞이다. 민주화 30주년을 보내고 또다시 개헌 논의가 한창인 지금, 이 영화는 87년 6월 항쟁부터 재작년 말 타오른 촛불 혁명에 이르는 민주화 30년을 돌아보고 매듭짓는 의미가 있지 않는가 싶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열사들의 이름을 절규하며 외치는 문익환 목사의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 하다.


영화 <1987>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과 폭행으로 사망한 박종철 열사와 6월 항쟁 과정에서 경찰의 직사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를 조명한다. 불의한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두 사람의 죽음은 전두환의 4.13 호헌 발표와 맞물리며 폭발적인 민중항쟁을 낳았다.

하지만 1987년에 전두환 정권에 살해당한 열사가 비단 박종철, 이한열 두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자료실 열사 정보를 살펴보면 1987년 당시 사망한 열사는 모두 28명에 이른다. 누락된 사람이 더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파악한 바로는 1987년에 사망한 노동 열사(10명), 시민 열사(5명), 학생 열사(6명), 군 의문사자(7명)의 전체 숫자는 28명이다.

한 해 동안 이처럼 많은 열사가 생겨났다는 사실은 군부독재 전두환 정권과 이에 저항한 민주시민들의 충돌이 얼마나 극심하였는가를 짐작케 한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와 같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나머지 26명의 열사도 민주화와 노동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이루고자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바쳤다. 그들의 죽음과 헌신으로 지금의 민주적 헌법이 만들어지고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게 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음은 1987년 사망한 28명의 열사 명단(가나다순)과 죽음의 원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김수배(28세) : 고려화학노조 건설투쟁. 노조 사무장으로 노조를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펼치던 중 사 측의 탄압과 회유, 고발 등에 시달리다가 10월 16일 자재 창고 앞 분신.

김성애(18세) : 작업 도중 화공 약품 흡입으로 반신불수. 산재 없는 세상 염원하며 투신.

김용권(23세) : 서울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중 1985년 카튜사 자원입대. 2월 20일 군 내무반에서 의문사.

김현욱(21세) : 사랑방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 수련회 참여. 물에 빠진 동료 구하고 운명.

박필호(21세) : 육군 26사단 의무 근무대 복무 도중 3월 19일 의문사.

박상구(20세) : 군 복무 중 군 비리 폭로. 선임하사 꾸중 이후 음독자살로 의문사.

박선영(21세) : 서울교대 학내 비민주적 학사운영 및 미제 식민지배 받는 암담한 조국 현실에 분노. 2월 20일 유서 남기고 목을 매 자결. 

박용선(20세) : 백마 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8월 1일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 수련회 참여. 물에 빠진 동료 구하고 운명.

박응수(28세) : 야권의 대선 후보 단일화 요구하며 대전역 앞에서 분신.

박종철(21세) :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운명.

박태영(20세) : 목포대 경제학과. 12월 9일 군부독재 타도와 제도교육 철폐 요구하며 분신.

이재용(23세) : 용성지역 호헌철폐 및 군부독재 타도 학생협의회 공동의장. 6월 25일 경찰 침탈을 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

이태준(27세) : 6월 18일 민중항쟁 시위 도중 부산 좌천동 오버브릿지 밑에서 쓰러진 채 발견. 병원으로 옮겨 뇌수술을 했으나 6월 24일 운명.

이한열(21세) :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참석. 시위 도중 경찰의 직격 최루탄에 맞아 쓰러짐. 병원으로 옮겨 투병 생활 하다가 7월 5일 운명.

장재완(22세) : 부산대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다 휴학 후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중 귀가하던 버스에서 중요 문건이 든 가방 분실. 그 가방이 보안대에 넘어간 사실을 확인한 뒤 피해를 입을 동지들과 조직을 지키고자 유서를 남기고 자결. 3월 27일 야산에서 주검으로 발견됨.

정경식(29세) : 노동운동을 하다가 6월 8일 실종. 88년 3월 2일 창원 불모산에서 유골로 발견됨.

정연관(21세) : 12월 4일 군 부재자 투표일에 사망. 상관이 군기 잡는다며 침상 끝에 세우고 두 차례 돌아가며 주먹으로 구타하던 중에 정 상병이 관물대에 머리를 받혀 사망했다 함. 야당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구타한 것으로 추정.

유인식(24세) : 샘터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 수련회 참석. 물에 빠진 동료 구하고 운명. 87년 6월 대투쟁에 적극 참여하였음.

이대용(24세) : 산마루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 수련회 참여 중 물에 빠진 동료 구하고 운명.

이석구(32세) : 노조위원장 출신. 9월 2일 노조탄압 중지 요구에 대해 회사의 성의 있는 답변이 없자 격분해 분신.

이석규(22세) : 8월 22일 대우조선에 다니던 중 노동자 대투쟁에 참여. 김우중 회장과 면담 요구하며 옥포 아파트 앞 사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 최루탄을 맞고 사망.

이순덕(31세) : 학교 계단에서 쓰러져 5개월 투병 끝에 1월 3일 운명. 충청지역에서 교육 민주화 운동을 하던 도중 86년 8월 학교에서 파면됨.

이승삼(21세) : 육군 36사단 공병대 복무 중에 3월 3일 의문사.

이이동(21세) : 육군 군수 사령부 제9 탄약창에서 복무 중 6월 15일 의문사.

채광석(39세) : 자유실천문인협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중 7월 12일 폭주하는 택시에 받혀 사망.

최우혁(21세) : 86년 5월 20일 학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전치 10주 부상 입은 바 있음. 군 복무 중인 9월 8일 의문의 죽음을 당함.

표정두(18세) : 광주 하남공단 신흥금속에 다니던 중 3월 6일 세종로 미 대사관 앞에서 내각제 개헌 반대.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며 분신. 3월 8일 운명.

황보영국(26세) : 태화고무에서 근무. 5월 17일 "독재 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민주헌법 쟁취하자" 외치며 부산상고 앞에서 분신. 5월 25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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