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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역사유물 체계적 보존·관리는 어디서?

[박물관 건립 & 지역유산 찾기] ③

  • 입력 2018.02.04 13:09
  • 수정 2018.02.05 11:49
  • 기자명 마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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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넷통뉴스 - 동부매일신문 공동게재]

‘박물관 건립·지역 문화유산 되찾기’ 치밀한 준비·연속성 부족.

지역의 역사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연구하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공간과 기관이 없다.

▲ 충민사유물전시관. 난중일기를 비롯한 이순신 장군 유물 복제품과 우리나라 총통과 화포를 모형으로 전시해 놨다. (사진=마재일 기자)

시립박물관 건립 목소리 꾸준

지난 1990년 대 중반부터 지방자치제 실시와 건립비 국고지원이 맞물리면서 각 자치단체의 공립박물관 건립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와 함께 2000년대 중반까지 지역에서 발굴된 문화재에 대해 지역의 귀속권이 인정되지 않아 발굴과 동시에 국립·사립박물관, 대학박물관, 발굴기관 등 여러 지역으로 나눠 보관해야 했다.

이후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면서 박물관과 인력 등 문화재 관리 조건을 갖춘 지자체에 한해 지역 박물관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지역의 정체성 확립이나 지역 유물을 보관·관리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각 지자체들은 공립박물관 건립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남지역에는 목포근대역사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목포대박물관, 국립나주박물관, 나주배박물관, 순천대박물관, 강진청자박물관, 광양장도박물관, 고흥분청박물관, 영암도기박물관, 장흥귀족호도박물관, 장흥방촌유물전시관, 보성한국차박물관, 신안소금박물관, 해남해양자연사박물관 등 크고 작은 박물관과 유물전시관이 있다.

하지만 여수는 전남 제1의 도시를 내세우면서 박물관다운 박물관 하나 없는 실정이다. 지역 곳곳에 산재한 역사 유물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연구하는 구심점 역할을 담당할 공간과 기관이 없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택지개발과 돌산 조개더미(貝塚), 고인돌(支石墓) 발굴 등을 통해 여수 지역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 7000여점은 타 지역 박물관에 보관되며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 지역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외지인들에게 여수를 알리는 전진기지 역할을 할 시립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여수민속전시관. (사진=마재일 기자)
▲ 여수민속전시관 내부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여수민속전시관 옆에 방치된 관사. (사진=마재일 기자)
▲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여수민속전시관 옆에 방치된 관사 내부 모습. (사진=마재일 기자)

여수시에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2012년 6월 개관한 여수민속전시관(2종 공립박물관)과 엑스포장내 아쿠아플라넷이 사립박물관으로 등록돼 있다. 이와 함께 임진왜란 관련 유물을 전시한 충민사유물관과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이 있지만 전시물 거의 대부분이 복제품이다.

충무공 이순신 제1호 사당인 충민사유물관 안팎에는 난중일기를 비롯한 이순신 장군 유물 복제품과 우리나라 총통과 화포를 모형으로 전시해 놨다. 1886년(고종 23) 이순신의 10세손이 세운 비석인 ‘유허비’만 진품이다. 유허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조사를 피해 충민사 앞뜰에 묻혔는데 1975년 충민사 정화사업 당시 화단에서 발견됐다.

유물관 내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은 임진왜란 당시 관내도와 거북선 내부를 재현한 곳으로 전라좌수영성·거북선·진남관·철쇄방비시설 모형을 비롯해 각종 무기류,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유물, 해전 상황을 보여주는 모형, 거북선의 내부 모습, 진남관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 충민사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고 난 뒤 명나라 신종 황제가 하사품으로 내린 참도와 귀도 복제품. (사진=마재일 기자)
▲ 1886년(고종 23) 이순신의 10세손이 세운 비석인 ‘유허비’. 충민사유물전시관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진품이다. 유허비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조사를 피해 충민사 앞뜰에 묻혔는데 1975년 충민사 정화사업 당시 화단에서 발견됐다.

1663년부터 1666년까지 여수에 억류됐다가 일본으로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여수시가 2012년 건립한 하멜전시관은 당시 시의회가 임란 때 삼도수군통제영이었고 이순신 장군의 주 근무처였던 지역에서 제대로 된 거북선 및 임란유물전시관 하나 없는 상태에서 하멜전시관을 먼저 건립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현재 애양원역사박물관 건물로 쓰이는 여수애양병원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율촌면 신풍리 18번지에 설립된 한센병 환자 전문치료 병원이다. 한센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근대적인 병원으로는 애양병원이 국내 최초다. 특히 애양병원은 한국 근대 의료사에 있어 소장한 의료기기와 건물은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옆에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국내 한센병 치료의 역사와 한센인의 애환을 기록한 국내 유일의 한센기념관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박물관이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시민과 관광객이 적지 않아 지속적인 홍보와 활용 방안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 임진왜란 당시 관내도와 거북선 내부를 재현한 곳으로 전라좌수영성·거북선·진남관·철쇄방비시설 모형을 비롯해 각종 무기류,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유물, 해전 상황을 보여주는 모형, 거북선의 내부 모습, 진남관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사진=마재일 기자)

 

▲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 내부 모습.

시립박물관 건립 번번이 무산

시립박물관 건립은 여수 시민의 오랜 숙원사업 중 하나로, 그동안 여수시가 박물관 건립을 몇 차례 추진한 적이 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박물관 건립 추진과 맞물려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다른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환수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여수시는 민선3기 시절인 지난 2003년 210억여 원을 들여 돌산읍 우두리에 있는 제3청사(옛 여천군 청사)를 리모델링한 시립박물관 건립을 추진한 바 있다. 13억 원을 들여 기본계획 학술용역과 기본설계 용역까지 마쳤으나 박물관 운영 특혜 논란과 부지 부적합성, 확보된 유물 부족, 시기상조 등을 이유로 중단됐다. 결국 확보한 국비 68억 원도 반납했다.

여수시는 당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박물관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역에서 출토돼 다른 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유물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6명의 조사단을 구성해 현지 방문 등 실태조사를 벌였다. 당시 조사 결과 1985년부터 여수 지역에서 출토됐으나 타 지역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2013점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등 시민단체와 향토사학자들도 박물관 건립이 시급하다며 여수시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당시 “여수지역에는 임진왜란 당시 유물과 신석기,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들이 많다”면서 박물관 건립과 유물 회수 등을 위해 문화재 전문가, 대학 교수, 향토 사학자들로 자문단을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여수시는 2004년 돌산청사에 임시 수장고를 설치하고 ‘외지 반출 출토 유물 도록’을 발간하기로 했다. 시는 또 박물관 건립과 별도로 국책사업인 해양수산박물관 유치에도 나서기로 했지만 중단됐다.

민선4기 때인 2007년 중단됐던 박물관 건립 사업은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민선5기 김충석 시장이 재추진하면서 박물관 건립 문제가 수면위로 다시 떠올랐다. 2010년 8월 여수지역사회연구소와 여수시문화유산보존위원회위원 등 4182명이 여수시에 박물관 건립을 강력 촉구했다.

당시 이들은 건의문을 통해 “박람회 개최 도시에 작은 박물관 하나 없다는 것은 여수시의 문화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며 “박물관 건립으로 유서 깊은 여수의 많은 유물들이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2010년 10월 박물관 조성을 위한 토론회도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도시의 문화기반 조성과 역사·문화 자원의 체계적 보존 관리를 위해 박물관 건립 필요성, 박물관 건립 여론에 대한 여수시의 입장과 공론화 절차, 위치 선정, 규모, 재원 마련 방안 등이 논의됐다.

▲ 현재 애양원역사박물관 건물로 쓰이는 여수애양병원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율촌면 신풍리 18번지에 설립된 한센병 환자 전문치료 병원이다.

 

▲ 한센인기념관 내부 모습.

이에 맞춰 여수시도 유물 확보, 여론조사실시, 박물관 현황조사 등 박물관 건립 사업을 재추진했다. 2011년 11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ARS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82%가 시립박물관 건립에 찬성했다. 장소도 현 돌산청사를 리모델링해 박물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이 76.2%로 나왔다. 시는 당시 박물관 건립에 162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사업비의 60%는 지방비로 확보하고 나머지는 국비로 충당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시는 2011년 12월 전남도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지방재정 투융자 심사를 요청하고 2012년 3월 박물관 건립을 재추진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문화체육관광부의 박물관 건립 타당성 평가 결과 ‘규모가 크다’는 지적과 지역 내 여론 수렴 부족 등 여러 이견이 갈려 또다시 중단됐다.

문체부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전국 지자체의 공립박물관들이 정작 건립 후에는 부실운영을 하는 사례가 늘자 2012년부터 사전평가제를 시행하는 등 공립박물관 건립의 타당성 검증을 강화했다.

그동안 시립박물관 건립 장소로 거론돼 왔던 돌산청사는 오는 3월부터 여수국제교육원으로 활용된다.

시는 또 2009년에 수립한 선소유적 종합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선소유적(사적 제392호)에서 발굴된 유물을 전시할 전문박물관인 ‘선소박물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선소는 이순신이 나대용 등과 함께 거북선을 만들었던 조선소 유적이다.

지상1층 연면적 696.6㎡ 규모의 박물관에는 고지도와 사료에 나타난 선소유적, 선소유적 발굴성과 소개와 출토유물을 전시할 상설전시실, 전통무기류 및 병선의 부속물, 거북선 모형 등을 전시할 야외전시장 등 1종 전문박물관 요건에 맞는 시설물을 갖춘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시의회는 규모를 확대해 여수를 대표할 종합박물관으로 건립하자는 의견 등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지정 사적지에 인위적인 시설물 등을 설치하려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문화재청이 이에 대해 부정적인데다 국비 미확보, 시의 중점사업에서 배제되는 등의 이유로 지속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현재까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선소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798점 중 631점은 국가귀속유물로 분류돼 타 지역 박물관에서 보관 관리되고 있다. 나머지는 순천대박물관 등에서 보관하고 있는데 박물관만 있으면 언제든지 가져올 수 있는 유물이다.

▲ 진남관임란유물전시관에 전시된 전라좌도 수군이 쓰던 글씨교본. 복제품이다.

박물관 건립·문화유산 되찾기…중장기 전략계획 세워야

박물관 건립은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와 지역문화의 정체성 확립, 역사의 보고(寶庫)라는 측면에서 당위성은 충분하다. 특히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거의 빠뜨리지 않고 들리는 곳이 박물관이다. 재미를 떠나서 방문한 지역에 대해서 좀 더 알고자 할 때 필수 코스가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라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의 운영은 중요하다. 비단 관광객을 대상으로만 필요하다는 뜻도 아니다. 시민의 자긍심과도 직결된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이사장은 “제대로 된 박물관 하나 없어 소중한 지역 문화유산이 타 지역으로 가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며 “문화유산을 되찾아 오려면 중장기 전략계획을 세워서 박물관 건립 논의와 함께 문화유산 되찾기의 당위성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다만 “대규모 건물은 지양하고 내실 있는 소규모의 테마 박물관을 곳곳에 건립해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충민사유물전시관 내부 모습. 일부 기기가 수리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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