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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칼럼]집사람? 옆 사람!

  • 입력 2018.03.08 18:14
  • 기자명 백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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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람꽃   ⓒ 김자윤

늘 그래왔다. 병원에 오기 전부터 치료를 결정하기 전까지 환자들은 인터넷과 디지털을 통해 수 없이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막상 치료결정은 아날로그로 내린다.

입원기간 중에도 보호자는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라는 각오로 입원실 침상 옆 비좁은 쪽침대에서 잠을 자고, 수술 중에도 입원실이 아닌 수술실 코앞에서 끝나길 기다리며, 환자가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수술실 입구만 쳐다본다. 

병원에서도 늘 크고 작은 일에 보호자를 찾고 보호자 서명이 있어야 환자는 수술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 병원에서 보호자란 꼭 챙겨야 할 의료보험 카드 같은 존재다.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아파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나는 누구에게 가장 먼저 말을 할까? 진료실에서 내가 관심이 가는 부분 중 하나는 몸이 아픈 환자의 표정과 함께 들어오는 보호자이다.

지구온난화로 바다 어종이 변하듯이 이제 병원에서도 시간과 돈이 의사 결정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병원에는 늘 아들이 앞장서서 부모님을 당당히 모시고 왔었고, 부모님 역시 딸이나 부인 대신 아들만 찾았다.

얼마전 보호자와 함께 병원을 찾은 환자가 있었다. 아들인 줄 알고 보호자에게 한참 열심히 설명했는데 그는 '이웃집' 분이었다. 자녀들은 직장 때문에 바빠서 못 왔단다. 

보호자가 누군가에 따라 환자의 표정도 다르다. 딸과 함께 병원을 찾은 어머니는 마치 친구들과 마실 온 듯 시종일관 얼굴에 두려움 따위는 없다. 한 발짝 떨어져서 묵묵히 의사의 말을 듣는 젊은 보호자를 보고 그가 며느리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장모님을 모시고 와서 상담하는 사위는 법 없이도 살 사람 같다.

복수초    ⓒ 김자윤

어느 날 오후 늦게서야 진료실로 찾아온 70대 노부부가 생각난다.

시골에서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느라 이제 도착했다는 보호자 당신이 더 환자 같아 보였지만 이 분은 어깨가 아파 밤마다 잠을 못 자는 부인 걱정  뿐이다. 그날 남편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수술 날짜를 잡은 후 돌아갔다. 

하지만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그가 수술 당일에도 나를 붙잡고 재차 물으며 확인하는 바람에, 나는 당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수술실 앞에서 좌불안석으로 계실 어르신을 생각하자, 어찌되었든 반드시 낫게 해드려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상대가 편안하고 익숙해지면 언제까지나 내 옆에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  소중함이나 고마움을 잊고 살기 십상이다.

이 노부부를 보면서 부부란 '잡아다 놓은 물고기’가 아니며, ‘집사람’이 아니라 ‘옆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는다. 

배우자는 불편한 몸으로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할 때, 언제든 가장 먼저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미소지었다.

오늘 저녁엔 좀 더 일찍 집에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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