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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은 개장( 開葬)되어야 한다.

여순항쟁 70주년 되찾은 기억

  • 입력 2018.03.22 18:53
  • 수정 2018.03.22 18:54
  • 기자명 양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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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항쟁70주년 특별기고]

인간의 장례문화 중에 풍장(風葬)이라는 것이 있다. 풍장이란 사체를 지상에 노출시켜 자연히 소멸시키는 장례법 또는 사체의 처리방법을 말한다. 인류문학적으로 보면 풍장은 사령(死靈)을 천계나 저승으로 장송하는데 보다 유리한 방법이라는 인간관 내지는 영혼관, 자연관이 숨어 있다.

안도 장례문화 풍장

환경적 조건으로 인한 안도의 풍장문화

그런데 매장 위주인 이 땅에서도 풍장을 하는 곳이 있었다. 여수 부속 섬 안도의 풍장 (風葬)장례문화다. 안도의 풍장은 복장제(復葬制: 사체를 두 번 장례하는 방식)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영적(靈的) 차원이 아니라 자연 생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복장제로 봐야 한다. 그 이유 알기 위해서는 안도의 산림을 들여다봐야 한다.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으나 조선시대 때 안도를 휩쓴 산불이 있었다고 한다. 섬 규모가 작아 산림이 우거지지 못한데다, 그나마 산불로 산림이 모조리 태워 없어졌으니 관(棺)을 짤 나무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금오도는 아름드리 송림이 우거져 있어도 쓸 수 없었다. 황장봉산(黃腸封山)이기 때문이다. 황장봉산이란 임금의 관(棺)을 짜거나 판옥선 등의 전선(戰船)을 만들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산을 말한다. 때문에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안도의 풍장 장례문화 자연 환경적 요소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여간 안도 풍장은 사체가 탈 육화되어 백골이 되면 이를 다시 수습하기 위해 가족 및 일가친척이 다시 모여든다. 조상의 죽음과 다시 관계를 맺는 것이다. 관계 맺는다는 것은 후손들의 기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렇게 됨으로써 죽음은 세대와 수직적으로 관계하고 수평적으로는 흩어졌던 가족과 일가친척이 사회관계를 회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배 이데올로기 의해 분류되는 죽음

여기에 죽음의 형태가 이야기 되지 않을 수 없다. 개별 죽음도 그렇지만 당대 당시 통사적 죽음에 대해 영웅적이거나, 나쁜 것이거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비문 장식은 현재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새겨진다. 회상을 통해 죽음에 대한 성질을 분류하는 작업은 지배자와 지배 이데올로기 의하며 이는 지배정치에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장례문화는 밀려나고 새로운 장례문화를 생성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이원적인 상징체계가 구축된다. 에르츠베르거(1875- 1921 독일 정치가)의 말을 빌리면 '죽음은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으로 이원화 되는 것'이다. 결국 나쁜 죽음으로 분류되면 죽어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혼이 구천을 떠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글을 좀더 쉽게 우리의 이야기로 풀어내자면 이렇다. 미국의 지원에 의한 독재와 군사정부는 전통 장례문화 대신에 국립묘지 안장이라는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여기에 안장되는 주검들은 영웅적인 죽음으로 추모된다. 게다가 새로운 국가 종교로까지 격상된다. 정치인들이 번번이 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을 보라. 반면에 지배정치와 지배 이데오르기에 반하는 죽음은 철저히 주변으로 밀려난다. 당연히 전통적인 망자 추모 문화도 격하되어 혼령이 구천을 떠돌게 되는 것이다. 동시대 동일한 사건에 의한 죽음에 확연한 경계성이 그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죽음은 숭상과 저주로 보편적 윤리위계마저 붕괴시켜 버린다. 결국 저주받은 죽음은 기존의 전통적인 장례에 편입되지도 못한 채 후손을 괴롭힌다. 자이가르닉 효과(새로 생성된 망자 추모방식은 물론 전통 추모제례조차 치루지 못해 발생하는 심적으로 남게 되는 고통으로 이해하면 되겠다)에 의한 정신적 고통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제노사이드 (Genocide 집단학살)의 경우, 치르지 못한 장례에 대한 자이가르닉 효과는 지역 집단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이 땅에서 이승만에 의한 반공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셀 수 없는 집단학살이 일어났지만 제주와 여수는 집단학살에 의한 정신적 고통은 유산 규모가 너무 크다. 만약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비극적 죽음을 기억을 둘 만한 장소가 없다면, 이 기억은 살아있는 후손의 신체 속에 둘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가. 결국 나쁜 죽음은 후손에 의해 더 나쁜 죽음으로 치부되어 추모대상 지위를 박탈당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면서 발생한 집단학살지역인 전남 동북부는 나름 새로운 추모방식으로 나쁜 죽음을 비극적 죽음으로 추모하는 공간들이 생겨나 구천을 떠돌던 혼령들이 모여 있게 된 점이다. 그런데 이런 추모공간에 세워진 위령탑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학살 집행자와 피해자가 마주보고 있는 위령탑

구례 여순사건 위령탑

여순항쟁 이후 빨치산 활동에 의한 민간인 학살 위령탑이 기묘하다. 학살 집행자와 학살 피해자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이곳이 화해 상생이 이루어진 곳인지 아니면 궁여지책 묘수인지 헷갈린다. 숭배되는 죽음과 저주받은 죽음의 이원성이 지배 이데올로기 하에서 한 공간에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더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순천 팔마공원 위령탑

순천의 여순항쟁 위령탑에 와서야 비로소 구천을 떠돌던 혼령들이 제대로 쉴 수 있다. 순천 위령탑은 기묘하지도 않고 역사에 있어 피주체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당당하다. 여순항쟁 중 한 곳이 순천이다.

바다 건너 제주 4.3 평화공원으로 건너 가보자. 이곳은 혼령들이 제대로 쉴 만하다. 따라서 후손들도 편히 쉴 수 있다. 공원묘지가 넓거나 기념관이 웅장해서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참배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학살된 혼령들에게 국가를 대신해 사죄하고 국가기념일로 제정했기 때문이다. 비로소 장례가 완성되고 제삿날이 정해져 후손들이 몸속에 지니고 있던 조상의 기억을 온전히 모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권력은 국민 생명에 대해 객관적인 사후 세계 관리에 입각해서 세워진다는 말이 절감된다. 올바른 국가권력은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수직적으로 역사와 화해하고 수평적으로 사회 소통이 이루어지게 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못해 참으로 기괴하고 을씨년스러우며 살아 있는 후손들 고통마저 전율스럽게 느끼도록 만드는 곳이 있다. 바로 제주 4.3 항쟁과 쌍둥이인 여순항쟁 만성리 위령비인 것이다.

만성리 여순사건 위령비

이나마도 혼령들이 후손들과 세대를 통하는, 수직적이지만 비극적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에 다행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수평적 사회와 단절된 현재적 비극을 통탄해야 할까.

 

여수 만성리 위령비 이장은 전통윤리 복원의 마무리를 의미

이제 주검은 개장되어 이장되어야 한다. 이건 자연생태에 의한, 복장제에 의한 것이 아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죽음의 이원성으로 배제되어 전통 가정장례마저 치르지 못하게 만든 국가의 잘못이다. 또한 애통한 역사를 직시하지 않는 후손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다. 주검을 개장한다는 것은 후손들이 죽음이 남긴 물리적 정신적 유해를 가지고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집단학살은 전통윤리체계마저 붕괴시켰다. 그렇기에 아직도 시청 앞 태극기 집회에서 목사가, 스님이 “빨갱이는 죽여도 돼” 라고 소리쳐도 문제되지 않는 정신적 집단폭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죽음의 이원성 윤리는 여수의 주검을 개장하여 이장함으로써 전통 윤리 복원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 그 숙제가 바로 여수에 있다. 올해는 비극적 역사와 당당히 대면하여 사회와 수평적 대화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비문도 이제는 해방시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빨갱이로 몰아 소각된 주검을 개장하여 이장한다는 것은 새롭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올해가 여순항쟁 70주년이며 나라가 해방된 것은 그 이전이다. 
 

* 글쓴이는 여수출신 작가다.  소설<여수역>을 썼다.
* 관련기사 바로가기 >>>>>>>[인터뷰] 여수출신 양영제와 소설 '여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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