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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자 울릉군수 요령만 피웠다?

1906년 당시 상황 담긴 일본인 일기 확보... 자료 확보한 김문길 교수, 관료 태도 문제 지적

  • 입력 2018.04.05 10:50
  • 수정 2018.04.05 12:34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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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일본측이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주장하자 울릉군수가 요령만 피우고 명쾌하게 대답하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긴 오쿠하라 헤끼운의 일기 ⓒ오문수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공동게재 기사입니다.

 

"일본이 독도 침탈을 시도할 때 울릉군수가 태만해 이를 막지 못했다는 문헌이 발견됐습니다"

김문길 교수의 얘기다. 부산외국어대학 명예교수인 김문길 교수는 일본 국립교토대학과 고베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한 후 20여 년간 일본에서 자료를 수집 연구하고 있다.

김문길 교수는 다케시마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던 박물관 관장으로부터 상당한 금액을 들여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다음은 울릉도와 독도 조사단으로 왔던 학술담당 오쿠하라 헤끼운(奧原碧雲)의 죽도 <조사일정>이란 일기에 나온 사료이다.

일본외무성은 1905년2월12일에 독도는 죽도로하고 시마네현청 오끼섬주의 소관으로 한다는 공시를 했다. 러일전쟁(1905년)이 끝나고 시마네현 간부들과 오끼섬 간니시부장(神西)과 오끼섬 어부들 45명이 신영토를 조사하기 위해 독도와 울릉도 조사에 나섰다.

조사단은 외무성 공시가 났던 1년 후인 1906년 3월22일 시마네현 마츠에를 출발해 26일 독도에 왔다. 전공분야에 따라 분담된 업무를 조사할 때 간니시 부장팀은 울릉군수 심흥택을 만나기 위해 울릉군청을 방문했다. 오쿠하라 헤끼운의 일기내용이다.

오쿠하라 헤끼운의 죽도<조사일정>. 오쿠하라 헤끼운은 1906년 울릉도와 독도 조사단으로 왔던 학술담당자이다 ⓒ오문수

"오전 10시, 간니시부장을 비롯한 10여명은  통역을 데리고 군수를 방문했다. 일본인이 사는 가즈이(數町)부락을 거처 올라가니 울릉군청이라 쓰여 있는 문에 들어갔다. 정면 맞은편에 군수실이 있었다. 군수 심흥택을 면회하니 군수는 경성사람이고 나이는 52세였다. 위엄 있는 얼굴이고  반석위에 앉아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물고 있었다. 앉은 책상위에는 수권의 책이 놓여 있고, 조선 태고의 모습이었다. 간니시 부장이 방문 이유를 말하고 독도에서 잡은 물개 한 마리를 선물하니  군수는 먼 거리에 수고가 많았다고 인사하고 선물이 아주 고맙다고 했다. 방문목적인 '독도는 죽도이고 일본영토'라는 질문에 요령만 피우고 명쾌하게 대답에 응하지 않았다. 방문단 일행은 군청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음 행선지로 떠났다"

 

군수의 태만과 일본측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못한 것에 대해 분개한 김문길 교수의 얘기다.

일본대학과 대학원에서 한일관계사를 전공하고 20여년간 독도와 울릉도 및 대마도 자료를 연구하는 김문길 교수 모습 ⓒ오문수

"1906년 일본이 독도를 신영토로 만들기 위해서 조사할 때 울릉 군수가 요령만 피울 것이 아니라 방문한 일본 시마네현 조사단원들에게 '독도는 조선땅이고 일본신영토인 죽도(다케시마)가 아니다'라고  왜 단호하게 말 못했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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