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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항쟁에서 세월호까지.. 존재론적인 서사가 담긴 미술전 열려

[인터뷰] '깃들다, Indwell '을 주제로 초대전을 연 정석희 작가

  • 입력 2018.04.08 18:25
  • 수정 2022.04.19 23:29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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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지하에 전시 중인 정석희 작가의 작품들

중견작가 정석희 초대전이 지난 7일부터 '갤러리 노마드'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초대전은 여순항쟁와도 직결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국가폭력 사건인 제주 4.3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꾸며졌다.

정석희 작가는 1999년 뉴욕공대 대학원 커뮤니케이션아트를 졸업한 후 그동안 14회의 개인전과 70여 회의 그룹전을 가져왔다.  ' "Indwell" 깃들다'라는 주제로 열린 정석희 초대전은 오는 26일까지 전시된다.

초대전이 시작된 7일, 갤러리 노마드에서 작가 정석희를 만났다.

7일  전시  오픈식에 앞서 노마드 갤러리에서 만난  정석희 작가

- 제주4.3을 소재로 한 미디어, 회화, 드로잉 작품 전시이다. 제주4.3과 여순항쟁을 주제로 작품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이번 70주년을 맞아서 제주도와 서울 6군데(공간41,대안공간 루프, 성북예술창작터, 성북예술가압장, 이한열기념관, 낙원상가4층 전시공간d/p)에서 전시를 하며 나에게도 의뢰가 왔다.

의뢰를 받고 제주4.3항쟁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혼자 제주도의 6곳을 다녀왔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작가로서 반드시 제주의 속살을 체험하고 그 아픔이 배어있는 곳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더라. 그러다보니 그 현장을 어떻게 옮겨야하나 고민 많이 했다. 결국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한번 걸러내는 방법을 택했다. 작품을 본 사람들이 현장을 직접 느끼길 바랬다.

1층에 전시된 영상회화는 제주4.3 현지의 영상과 내 드로잉이 결합된 작품이다. 그곳의 거친 총소리, 바람소리, 숨소리를 담으려 노력했다. 관람객들도 당시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느끼길 바란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 완성도가 높지 않지만 관객들이 즐겨줬으면 좋겠다.

회화를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은 매우 어렵다. 제주의 구럼비와 늪에는 바람에 풀이 흔들리고 파도치는 곳이 많아서 캔버스를 마주하고 작업을 할 때도 이 다음의 모습에 확신이 없었다. 어떤 날은 한 장면조차도 완성하기 힘든 적도 있었다.

영상에 학살당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넣으려 했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우선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그 후 ‘예술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그 장면을 삭제했다.

얼굴_영상드로잉_3분21초_가변크기_2018                                            출처 아트메일 홈페이지
폭설_영상회화_1분40초_가변크기_2018                                   출처 아트메일 홈페이지

- 영상이 아닌 회화를 전공했다. 그뒤 “무엇이 좋은 회화의 끝인가”를 고민하다가 영상작품으로 옮겼다고 들었다. 영상작품을 시작한 후에도 회화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회화와 영상은 다른 매체지만 꼭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매체만 다를 뿐이지 내 생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회화는 사실 쉽지 않은 과정인데, 고치는 과정에서 그림을 지운다고 그 부분이 애초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영상으로서 그 과정을 담기로 했다.

나는 작품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계획하여 그리는 보편적인 화가와는 사고가 다르다. 작품은 내 작업의 결과물이지만 그림도 스스로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스스로 변하는 것을 모색한다.

갤러리 노마드에서  정 작가 전시회 오프닝 리셉션에 모인 괸객들

- 작품을 보니 과거 애니메이션이 온전히 자리잡기 전, 초기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거칠고 부자연스러운 연결인데, 역설적으로 그 점 때문에 오히려 등장인물과 장면이 더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도한 것인가?

의도하진 않았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실용적인 것을 주로 공부했다. 나중에 작품을 제출할 때도 움직이는 드로잉 작품을 제출했다. 하지만 나는 드로잉을 좋아해서 작품을 제출할 때 드로잉이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정통애니메이션을 전공하지 않다보니 처음부터 자연스러움을 중요시하지 않았다. 각각의 그림들이 매끄럽게 넘어가도록 하는 기법을 몰랐다. 그렇다보니 거칠게 오려서 붙이고 찍고, 다시 움직이게 하는 방법으로 찍었다.

마치 스톱모션처럼. 1초에 24프레임인 애니메이션에 비해 굉장히 거칠다. 이 작업 과정은 매우 거칠고 고되다. 세세한 표현이 불가능하다보니 작품에 글을 달고 그 글이 움직이게도 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하지만 덕분에 의도치 않은 장면들도 많이 나왔다. 거친 현대인의 상황이 잘 나타났다고 본다. 작업결과에는 만족했지만, 이 방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경제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이런 여러 방법을 거쳐오며 완성한 결과가 지금의 작품들이다.

눈이오겠네_영상회화_1분46초_가변크기_2017                                       출처 아트메일 홈페이지

-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정을 묘사하지 않았다.

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특정한 캐릭터가 아니라 인간 본연을 상징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그의 행위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현재 작품들은 모두 인물에 표정이 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작품을 그리지만 작품도 유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업을 하지만 어떤 날은 캔버스가 내게 말을 걸어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내 작품의 특징을 규정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대상을 정확하게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그림으로 정확히 옮기는 회화가와 나는 다른 면이 있다. 나는 그림이 스스로 변하는 방법을 찾고 노력한다.

‘내 작품은 순간의 감정과 메시지가 우선이다’라고 한 과거의 인터뷰도 그런 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얼굴_영상드로잉_3분21초_가변크기_2018                                            출처 아트메일 홈페이지
얼굴_영상드로잉_3분21초_가변크기_2018                                               출처 아트메일 홈페이지
얼굴_영상드로잉_3분21초_가변크기_2018                                                  출처 아트메일 홈페이지

- 이번 개인전의 특징이 있다면

이번 전시에는 4.3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상을 담은 작품도 전시했다.  1층에 전시된 두 점의 영상회화는 회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았다. 어떤 대단한 메시지나 의미가 담긴 작품은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창작 스튜디오에서 인간의 감정에 대해 작업하다가 세월호 참사를 만나고 그동안 하던 작업을 모두 그만두었다. 세월호 사건 앞에서 개인의 감정만을 담은 내 작품이 너무 주관적이고 관념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작품들이 현실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어마어마한 생명들이 죽어갈 때 나는 방 안에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런 생각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후 세월호를 소재로 한 작품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개인전에 그때 완성한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다.

서울에서 하는 전시와 여수에서의 전시가 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여수에서는 제주와 계를 같이 하는 여순항쟁이 벌어진 곳이다. 제주와 여순의 문제까지 사람들에게 왜곡되지 않고 바르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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