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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

4.3항쟁 추념식과 뮤직토크콘서트 진행

  • 입력 2018.04.17 18:15
  • 기자명 박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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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추념식장의 모습. 행사장 주변에는 유족회 등의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참여객들은 가운데 마련된 회색 의자에 착석하도록 되어 있었다 ⓒ박샘별

오전 9시, 추념식장에 도착하자 맨 먼저 현장을 생중계하기 위한 방송국 촬영 기구가 눈에 띄었다. 본식이 진행되기 10분 전임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의자를 채우고 있었다. 여순 일행은 뿔뿔이 흩어져 자리에 착석했다.

순간 ‘까악’ 추념식장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까마귀가 눈에 띄었다. 죽음과 연관된 장소에 까마귀가 곧잘 상징으로 거론되는 것은 들었지만, 막상 4.3 추념식장을 가로지르는 까마귀를 육안으로 보자니 마음이 아렸다. 까마귀야, 뜯어먹을 살이 아직 남았더냐, 절규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까마귀는 너무 빨리 지나갔다. 희생자 유가족들의 마음도 그랬을까. 가해자에, 시대에 대놓고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을 텐데. 그러기에 세월은 너무 빨리 지나갔을 터.

마침 내 옆자리에는 검은 양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신사 한 분이 앉아계셨다. 제주 사투리를 질펀 구사하시는 걸 보아하니 제주 토박이인 듯하고, 추념식 브로셔를 미처 챙기지 못한 내게 안내부스로 가서 받으면 된다고 알려주시는 걸 보니 여러 차례 추념식에 와 보셨을 걸음이 짐작됐다. 

대뜸 여쭐 수는 없었지만, 지인을 4.3으로 인해 잃은 분이실까 싶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하긴 4.3으로 제주 인구의 1/10이 초토화되었으니 다리 건너 건너로 피해의 범주에 속해 계실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받아온 추념식 브로셔는 꽤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제껏 받아온 기념식 안내물 중 가장 무거웠다. 많아봐야 식순, 각 단체장 인사말, 부대행사 안내를 다 합해도 20쪽이 넘지 않곤 하는데, 쪽수를 살펴보니 81쪽이나 되었다. 

왜 이렇게 많지? 뒷부분을 쑤욱 보고 나서야 고개 끄덕여졌다. 23쪽~66쪽까지의 부분이 모두 4.3 희생자 명단이었던 것이다. 지역별-마을별로 한 명 한 명 적어 내려간 묵직한 브로셔를 제작해 전해주는 제주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름자 하나 없이 ‘강군옥의 자 1, 2’이런 식으로 기록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었을 유족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으니 나조차 마음이 무거워졌다.

4.3의 발발과 연혁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추념식이 시작되었다. (한때 역사교사를 꿈꿨던 직업병인지, ‘저 동영상 수업 때 틀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압축적이고 간명하게 잘 만들었다.) 이후 바로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입장이 이어졌다. 추념식장 관객석 가운데 길로 들어서는 부부의 모습이 꼭 신랑 신부 입장 같아 기분이 묘해졌다. 지금은 애도와 추념으로 오시는 것이지만, 머지않은 훗날엔 4.3이 성대한 결혼식 못지않은 축복의 장이 되기를 마음깊이 기원했다.

식 초반에 내내 사회자의 멘트가 울러퍼졌다. ‘행방불명인 표석에서의 참배는 추념식이 끝난 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주최 측에서 큰 행사를 치르면서 나름의 통일성과 질서를 갖추고 싶은, 운영과정에서의 안내방송인 건 알겠다. 

하지만 4.3추념식의 기본 의미가 ‘추념(追念)’인 만큼, 참배객들의 자율적인 ‘추념’마저도 통제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폭력이지 않나, 라는 삐뚤어진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기계적으로 다 관객석에 앉아서, 우리의 추념 행사를 관람하는 것만 추념입니다? 더 비꼬아 말하자면, ‘용변은 화장실 안에서만 조준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똥개훈련 시키는 느낌이었달까. 오히려 내가 행사를 이끌어가는 주체였다면, 추념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 카메라 클로즈업을 해서 참배객의 멘트를 소중히 전하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싶을 정도였다. 제 3자 입장에서 듣는 나도 불쾌했는데, 참배하던 이들은 얼마나 마음 상하셨을까.

본식은 현기영 소설가의 추모사 이후(전날 전야제에서 뵙고 또 뵈니 더 반가웠다), ‘양복 입은’ 루시드 폴의 제주 4.3 노래-4월의 춤 공연이 이어졌다. 늘 캐주얼 차림의 편한 동네 오빠 포스였는데, 양복을 입으신 만큼 행사의 무게도 덧입으신 느낌이었다. 이은미의 찔레꽃도 담담한 듯 마음을 울렸다.

더 놀라운 점은 국민가수 이효리의 ‘개념녀’적인 행동이었다. 사실 가수가 본업인지라 노래 한 곡 불러드리는 게 그녀로서는 훨씬 편한 행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4.3에 관련된 시를 엄선하여 여러 편을 공연 중간 중간 낭송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했다. ‘바람의 집-이종혁 시’, ‘생은 아물지 않는다-이상현 시’ ‘나무 한 그루 심고 싶다-김수연 시’ 등, 비교적 대중적 인지도는 적지만 선명한 역사의식을 갖춘 시를 대중성 있는 인사가 여러 차례 낭송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산교육일 터.

행사의 최정점은 대통령 추념사.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홍준표처럼 지나치게 무개념적이지도 않은, 딱 봄볕 같은 온화하면서도 따스한 멘트들이 이어졌다. ‘제주의 봄은 유채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깊이 사과하고 감사드린다.’(사죄가 아니어서 마음을 쓸었다. 그러고 보면 노무현은 지나치게 모든 잘못을 자기화하는 버릇이 있었다. 어찌됐건 노무현이든 문재인이든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닌 만큼, 사죄보다는 사과로의 경감이 나는 더 바람직하게 들렸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나아갈 것’ 등 명언을 무더기로 쏟아내시더니, 가장 멋진 말씀으로 마무리하셨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식이 끝나고 걸어가는데, 아, 정말 제주에 봄이 왔구나 싶었다. 많은 인파들에 휩쓸려 보지 못했던 4.3평화공원 내의 봄꽃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어 주었다. 그 모습이 내내, 고맙도록 눈물겨웠다.

여순반란사건을 여순항쟁으로 정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시던 주철희 선생님의 모습 ⓒ박샘별

다시 평화공원으로 돌아왔다.

오전의 추념식 때 왔던 곳이었지만, 추념식 참여 때문에 위령제단 쪽만 다녀왔을 뿐이어서 기념관을 중심으로 더 꼼꼼히 다시 보게 되었다. 

주철희 선생님께서는 역사의 여러 씨줄과 날줄을 엮어 우리에게 생동감 있는 역사를 보여주셨다. ‘여순사건은 동학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문상길의 박진경 암살 대목은 더 부각되어 알려져야 한다’, ‘여순항쟁의 정신은 애족과 애민이다’ 등이 핵심적인 메시지였다. 

가장 안타까워하시며 성토하신 부분은 ‘제주 4.3의 평화기념관에도 여순사건 관련 내용을 (주 선생님께서 항의하셔서) 겨우 비치해 놓았는데, 그마저도 ’여순반란사건‘이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박물관 등의 잘못된 기록을 시정하는 것도 훌륭한 역사적 탐구활동의 연장선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뮤직토크콘서트 '4.3 칠십년의 기억' 첫 장면. 동백으로 화사하게 치장한 무대와 빔 프로젝터. 그 사이에서 사회자가 조심스레 멘트를 건네고 있다 ⓒ박샘별

오후에는 음악 공연과 토크 쇼가 곁들여진 ‘뮤직토크콘서트’, 그것도 ‘제주 4.3’을 소재로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기대가 많았다. 

패널들과 사회자가 앉는 의자 4~5개가 놓인 부분이 무대의 2/3을 차지하고, 나머지 1/3은 조그맣게나마 단이 있는 무대로 꾸려져 있었다. 4개의 주제로 각각 이야기를 나눈 후, 가수가 옆의 무대로 등장하여 노래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아울러 중간중간 청년들의 인터뷰를 담아 현 시대 제주 청년들이 4.3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알게 됐는지를 전해주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학을 제주도로 오게 되면서 4.3에 관심을 갖게 된 학생들도 있던데 이들을 위한 교육이 더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사회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의 오상진이 맡고, 이야기손님으로는 김종민(당시 제민일보 기자), 정신지(할망 전문 인터뷰어), 최상돈(4.3 싱어송라이터)이 참여했다.

 ‘4.3에 대한 정명보다 더 시급한 것은 치유이다.’ 

‘4.3 취재한다고 집을 방문하면 신발도 못 벗게 했던 시대도 있었기에, 보도만으로도 위로받고 계시다는 걸 느꼈다.  역사가 풍문으로만 남아있으면 안 된다’라는 명언들을 남길 만큼 제주 4.3을 깊이 취재하신 김종민의 진중한 모습도 좋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걸쭉한 목소리와 입담의 최상돈의 모습에서 기를 전해받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할망 인터뷰어 정신지 씨. ‘제주 4.3을 동백꽃으로 상징화했던데, 꽃만 가지고선 안 된다. 꽃이 지고 나서도, 동백씨앗을 잘 간직하여 또 심고 심어 동백숲이 될 때까지 가꾸어야 한다.’라는 멘트를 통해 행사를 총정리하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손님으로는 이야기손님이기도 했던 최상돈, 음악손님인 안치환, 장재인, 퓨전국악그룹 Atman(해금, 바이올린, 가야금)이 각각 등장하셨다. 

이들은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노래하겠다며 최상돈은 세월을 열창하였다. 안치환은 ‘너네가 4.3의 아픔을 알아?’라고 했던 최상돈에게 양심이 찔리기도 하고 열패감도 들었노라면서, 잠들지 않는 남도, 4월 동백(이 무대에서 처음 선보인다며), 자유 세 곡을 불렀다. 

장재인은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그곳과, 버튼 자작곡을 통기타치며 노래해 주었다. Atman은 김대성 작곡가로부터 받은 곡인 다랑쉬와 불노하를 연주하였고, 최상돈과 애기동백꽃의 노래를 (편곡하여) 연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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