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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분단고착화에 적극적으로 항거한 자랑스러운 역사

북촌 너븐숭이 위령탑과 '4.3 70주년 특별전'이 펼쳐지는 제주도립미술관 방문

  • 입력 2018.04.17 18:15
  • 기자명 박샘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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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너븐숭이에 있는 위령탑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여수 시민들. 자연이든 사람이든 역사의 비극 앞에 헌화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박샘별

제주에 체류하면서 내내 유채꽃을 보지 못해 아쉬웠었다. 벚꽃도 봤고, 목련도 동백도 봤기에 괜찮아, 애써 마음을 다스렸지만 내심 아쉽고 못내 궁금했었다. 그랬는데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북촌으로 향하는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을 목도하게 되었다! 얼마나 반갑던지.

(난 이래서 어떨 땐 역사적인 시선이 싫던데) 주철희 선생님의 차가운 물 한 잔이 마음 한 켠에 흩뿌려졌다. “유채꽃과 4.3은 전혀 관련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심어진 것이라 4.3이 일어났을 때 유채꽃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고, 네네. (유채꽃에 취해 있던 내 낭만 어디가나요...)”

버스를 탄 지 한 시간 뒤 북촌 너븐숭이에 도착했다.

(물론 이럴 때는 역사적인 시선이 참 소중한 느낌표인데) 북촌에서 여순사건으로 대규모의 학살이 자행될 수밖에 없었던 뒷이야기는 소름이었다. 무장대 선봉장이었던 이덕구가 조천 출신이며, 김지회의 처 조경순도 조천 출신으로 아버지가 목사였기에 그 반감이 더 거셌을 것이란 추측을 주철희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셨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일 없고, 모든 죽음엔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걸 제주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고 덮으려 한다고.

같은 맥락인데, 제주 4.3이 ‘피해자들의 무고함, 억울함’에 멈춰있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우익에, 특히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세력에 적극적으로 항거했던 점을 자랑스레 드러내야 한다.’라는 이야기도 함께 해주셨다.

나는 여기에 사족을 더 붙이고 싶다. 무고함에 대한 억울함도 장기적으로 애도의 한 과정일 테고, 역사학자는 이들의 애도 과정을 인내함으로 이끄는 심리학자이기도 해야 한다고.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상실의 5단계설을 제안했다. 애도의 5단계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학 이론을 대입해보자면 지금 제주 4.3의 애도의 단계는 분노와 타협 그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억울함을 분출하고 분노해야 그 과정이 건강하게 넘어가지는데 싶은 것이다. (특히 사회주의자를 빨갱이가 아닌 당대 사회개혁자로 재정립하는 것은 전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할 것이며, 그런 말은 아직 남한에서 쉬이 내뱉을 수 없는 말 아닌가.) 

물론 주 선생님께서는 이성적인 역사학자로서 지당한 지적을 하신 것이지만, 감히 반론하자면 ‘제주는 잘 하고 있다. 오히려 그 억울함을 토로하는 장을 응원하며 마련해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메이딘옌의 작품 228. 제주도립미술관의 post trauma 전시회는 제주 4.3을 넘어 전세계의 국가폭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박샘별

마지막 일정으로 제주도립미술관 4.3 70주년 특별전 ‘Post Trauma’을 방문했다

원래는 ‘평화인권전 침묵에서 외침으로’를 보기로 되어 있었으나, 일전에 도립미술관에 가보았던 일행의 강력 추천으로 목적지가 바뀌게 되었다. 분홍과 보라색으로 화사하게 칠해진 벽 사이사이에 아픈 학살의 기억들이 작품으로 승화되어 자리하고 있었다.

12명의 작가(강요배, 김승, 권오송, 딘큐레, 박경훈, 야마시로 치카코, 우웨이산, 메이딘옌, 제인 진 카이센, 킨조 미노루, 펑홍즈, 홍성담)가 현대사의 학살이 남긴 심리적 트라우마를 각자의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특징적인 점은 제주 4.3 특별전이라 하여 제주에 갇히지 않고 광주 5.18, 타이완 2.28, 오키나와 양민학살, 베트남전쟁, 난징대학살, 하얼빈 731부대로 확장하여 전 세계적 비극을 한자리에 담아냈다는 점이었다. 5.18에 대한 연작 판화 화가로 유명한 홍성담의 작품들을 일부러 5.18 기념재단에서 대여해 와 전시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메이딘옌의 작품 ‘228’이었다.

색맹 검사표에 2, 2, 8을 아라비아 숫자로 표현하여 타이완 2.28의 모순을 이야기하는 발랄한 팝아트라니. 1947년(심지어 1948년 제주 4.3과 근접한 시기다.) 2월 28일, 중화민국 정부 관료의 폭압에 맞선 항쟁으로 정부의 잔혹한 진압과 살상으로 1만 8천~2만 8천 명이 희생당한 사건. 그가 그 작품을 만들었을 때인 1995년까지도 2.28의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하니 얼마나 (역설적으로) 큰 사건이자 트라우마였는지 알 수 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약간의 어지러움을 참아가며 날것의 감상을 스마트폰 메모 어플에 새겨 넣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면, 모든 기억들이 함께 날아갈 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10.19 여순을 준비하려는 이들에게 이 작은 글이, 이 단상이 조그마한 자극제나마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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