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5.27 일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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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플라톤의 가르침에 반기를 들다
스승을 넘어선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다
  • 2018.04.26 12:56
ⓒ 김자윤

때론 소소한 질문이 나를 바꾼다. 때론 ‘아니오’라는 대답이 역사를 바꾼다. 그래서 나에게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많은 질문을 하길 소망한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에 대하여 엉뚱한 질문을 하고 엉뚱하게 대안을 제시하길 바란다. 마치 스티븐 잡스가 조그마한 핸드폰에 커다란 컴퓨터를 집어넣듯이, 발칙한 상상을 하는 학생이 정말 정말 많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은 의문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바뀌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린 왜 공부를 하는 걸까? 우린 무엇 때문에 배움을 멈추지 않은 걸까? 바로 의문투성인 삶에 의문스러운 질문을 던져 새로운 삶을 찾아내기 위한 것은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스승에게 반기를 든 이단아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보자. 20세기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서양철학 2천 5백년의 핵심인물이 바로 플라톤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가 그렇게 극찬했던 스승 플라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나브로 비수를 들이댄다.

아리(아리스토텔레스를 줄여‘아리’라 하겠음)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 받을 용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지식이 어떻게 세상에서 빛을 발하며 공부(질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삶을 보여준다.

아리는 17살 되던 해 마케토니아의 작은 도시에서 아테네로 유학을 간다. 그가 유학을 간 학교가 바로 그 유명한 아카데미아이다. 그리스의 석학 플라톤이 경영하는 아테네 최고의 학교이며 배움의 전당인 그곳에서 아리는 질 높은 수업과 수많은 독서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혀 플라톤의 수제자로 인정받는다.

스승 플라톤은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제자 아리를 매우 아낀다. 거기에다 노력까지 아끼지 않은 그의 공부 태도를 보면서 아카데미아의 정신이라 극찬한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스승과 제자는 삶을 해석하는 핵심 코드가 다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했던가? 청색은 쪽빛에서 나온다고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아리는 점점 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는 그토록 불멸할 것 같은 진리, 스승의 이데아 이론에 반문하며 질문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리는 스승과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는다.

 

아리 : 스승님 우리의 삶은 허상이고 다른 진짜 세상이 있다고 했잖아요?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이상해요?

플라톤 :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아리 : 혹 진짜 세상을 본적이 있나요? 스승님이 말씀하신‘이데아’를 증명할 수 있나요?

플라톤 : 아니, 본적은 없지만, 그것이 있는 것은 확실하단다.

아리 : 스승님, 외람됩니다만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나요? 철학의 출발점은 모든 사물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플라톤 : 허허, 이놈이 어디서 감히 말대꾸를 하는 거야. 너의 짧은 식견으로 그리 쉽게 삶을 말하지 마라. 내 철학이 그리스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데 어디서 내 가르침에 반기를 드는 거냐.

 

제자의 질문에 확답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스승의 철학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에 깊은 골을 만든다. 처음엔 아리도 스승의 영향을 받아 그의 이데아 이론을 수용한다. 문제는 아리의 내면에서 스승의 이론에 대한 의문의 싹이 무럭무럭 자란다는 것이다. 마침내 자라난 싹이 스승의 정신세계를 칭칭 감는다.

아리는 스승과 삶의 핵심 철학이 달라 수많은 나날을 고뇌한다. 그는 그 아픔을 ‘니코마코스윤리학’에 이렇게 적는다. “두 가지(자신의 철학, 스승의 철학)가 모두 나의 친구이기는 하지만, 진리(자신의 철학)를 더 높이 존중하는 것이 나의 숭고한 의무다.”

한편 플라톤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아리 제자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내비친다. “마치 어린 망아지가 제 어미에게 하듯 아리가 나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스승과 제자의 철학이 어떻게 다른지 그들이 나눈 대화를 좀 더 엿들어보자.

 

플라톤 : 아리야, 여기 꽃과 의자 그리고 강아지가 있지. 문제는 여기에 있는 그것들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란다. 허상이며 그림자지.

아리 : 무슨 말씀이신지요?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것이 가짜라면 진짜는 어디에 있다는 거죠?

플라톤 : 그것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있단다. 즉 그 진짜를 본질이라고 하는데‘이데아’라고 칭하지.

아리 : 그렇다면 여기에 사는 우리도 진짜가 아니라 가짜란 말이에요?

플라톤 : 그렇단다. 진짜는 철인(哲人)이 되었을 때 볼 수 있고 알 수 있단다. 그래서 이 세상은 철인이 다스려야 한단다. 현실의 모든 생물은 이상 세계에 있는 진짜를 모방한 가짜란다.

아리 : 스승님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플라톤 : 증명할 수는 없단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만 보일 뿐 다른 세상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요약하면 세상은 크게 이원화되어 있단다. 불행하게도 이 세상은 힘 있고 독선적인 계층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단다. 그래서 하루 빨리 종식되어야 한단다.

아리 : 스승님, 스승님의 철학은 현실주의보다는 이상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네요. 

 

아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긴 한숨을 내쉰다.

플라톤의 이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우리가 보고 있는 꽃과 의자와 강아지는 완벽한 것이 아니다. 완벽한 꽃, 의자, 강아지는 이데아에 있고, 그걸 모방한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아리는 매사에 현실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비교 및 분석하여 이해하려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하다.

 “(처음 삼륜자동차 보며)자동차는 바퀴가 세 개네? 왜 바퀴가 세 갤까? 하나를 더 달면 안 될까? 그래 바퀴를 하나 더 부착하면 되겠네. 그렇지 처음부터 바퀴가 네 개인 자동차를 만들면 되겠구나. 아니야, 바퀴를 두 개만 달면 어떨까? 빨리 움직일 수 있겠지. 차체만 작게 만들면 좋은 이동수단이 나오겠군”

이처럼 아리는 사물을 대할 때 의문이 생기면 관찰을 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생각을 거듭 한 끝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진리라고 배웠던 스승의 철학을 의심하며 급기야는 의문의 정점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존경하는 스승님의 철학은 거기까지입니다. 스승님이 불변한다고 말한 이데아는 망상이요 허상임이다”라고 선언한다.

플라톤은 무척 황당해 한다. 플라톤이 자신이 존경하던 스승 소크라테스가 지식의 본질을 모르는 부랑당같은 정치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보며 새로운 이론을 정립한 것이 바로 ‘이데아’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짜 세상은 모순된 인간이 통치하는 현실이 아니라, 철인이 다스리는 이상세계'라고 주장한다. 그곳에서는 오직 철인(哲人)만이 통치할 수 있고 철인을 따르는 사람만이 이데아를 알 수 있다. 그래야만 두 번 다시 제2의 소크라테스를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데아라는 새로운 철학을 제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상상의 폭을 넓혔다. 어찌 보면 수학과 과학이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 작은 가지이다. 더불어 현실에서 부정하고 타락한 삶을 지양하고, 건강하고 바른 삶을 살아야만 진정한 이상세계인 이데아의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그때까지 인류의 석학 플라톤의 주장에 대하여 그 누구도 반기(反旗)를 들지 못했다. 아니, 누구도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수제자 아리가 '보이지 않는 이상보다는, 보고 느낄 수 있는 현실이 중요하다'고 혁명적인 상상을 해낸다. 아리 덕분에 '모든 답은 현실에서 찾아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너와 내가 주인이 되어 해결하자'는 현실주의가 열매를 맺는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이 두렵다는 공자의 그 말이 스치는 이유가 무얼까? 과연 아리가 존경하는 스승에게 반대의 입장을 말한 것이 불경(不敬)한 것인가? 왜 아리는 스승에게 반기를 들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삶은 의문투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매일 교실에서 제2의 아리를 기다린다. 아직도 침묵만이 넘실대는 교실에는 역발상의 사고를 제기할 젊은 청춘이 숨죽이며 있을 뿐이다. 결코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상상을 하는 것은 이단이 아니며 비판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곳은 소수의 사람들이 제기한 반문과 의심 위에서 완착 되었듯이, 내일 그리고 미래는 현재의 부정에 의해서 더욱 발전할 것이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땡땡땡 울린다. 나는 백묵을 놓고 문을 나선다. 잠시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에게 말한다. 후학들이여! 아리처럼 발칙한 상상을 하라. 스승은 괴롭지만 그의 사상을 뛰어 넘을 때 그대를 진정한 김청출(靑出) 양과 이후생(後生) 군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추신 : 훗날 플라톤과 아리는 다시 만났다. 스승은 아리에게 살갑게 말한다. 참 허무맹랑한 제자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네가 나의 철학에 반기(反旗)를 들었기에 인간이 이 세상에서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구나. 참 삶은 무상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의문투성이구나.

 

2017년 4월 맑은 빗방울 그 방울을 바라보며

김광호 씀

김광호  여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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