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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을 할 때 비로소 슈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삶에서 성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 입력 2018.05.08 12:41
  • 수정 2018.05.29 12:25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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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힘이 있다면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

오직 기쁨과 동행하며 살아갈 것이다

ⓒ 김자윤

우린 왜 성장을 해야만 하는가?

성장은 더 나은 최선의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장은 삶에 있어서 선택이 아니고 필수 과정이다. 

톨스토이는 『인생의 길』에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다” 라고 말했다.

성장이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삶은 나와 너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에서 완성된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것이 너와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즉,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아의 본질을 탐색하고 사랑해야 한다. 

다음으로 나를 넘어 너에게 향하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네가 없는 나는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너 속에 비친 나를 알아야 진정한 나로 거듭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랑 너랑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노래하면서 세상과의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

한발 더 들어가서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 에서 '안나 카레니나(아래 문장에서는 안나 카레니나를 안나로 지칭함)와 레빈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성장의 의미를 알아보자. 

이 소설에서는 ‘안나와 레빈의 대비되는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나는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이다. 고관(高官) 카레닌과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여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안나는 스테판 오빠의 집을 다녀오다가 기차역에서 미남이자 미혼인 브론스키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안나는 가정을 버리고 브론스키와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나의 가슴에는 허전함과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안나는 브론스키에게 소유를 넘어 집착에 빠진다.

톨스토이는 이 장면에서 안나를 대하는 브론스키의 심리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최근에 와서 점점 더 빈번히 그녀에게서 일어나는 질투의 발작에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질투의 원인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식어가는 자기 감정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브론스키와의 일시적인 욕망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의 참맛을 느끼지 못하고 브론스키와 처음 만난 장소에서 기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불륜의 비극을 말하고픈 것이 아니라 성장 없는 욕망이 얼마나 무서우며 변함없는 사랑만을 좇는 행위의 결과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여기서 '삶은 생물과 같다'는 명제를 넌지시 던진다. 안나처럼 변화하지 않고 그 자리만 머물러 있으면 반드시 불행의 씨앗이 싹트고, 파국이라는 커다란 수렁에 빠진다는 것이다. 결국 항상 제자리에서 욕구만 충족하고 성장하지 않은 삶은 반드시 원점으로 회귀한다는 메시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 소설에서 안나의 삶과 대비되는 레빈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삶을 통찰하다 보면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레빈은 지방의 순박한 지주이다. 그는 아름다운 키티에게 구혼하지만 거절당한다. 실의에 빠진 그는 영지로 돌아와, 농지 경영에 온 힘을 쏟지만 경영에는 큰 변화는 없다. 자기와 갑을관계에 놓인 농부들을 어떻게 해야 더 효율적으로 부릴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직접 농사일에 뛰어든다.

톨스토이는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레빈은 오랫동안 베어나감에 따라 더욱 더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때에는 이미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그 자체가 자기의 배후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의식하고 있는 생명으로 가득 찬 육체를 움직이고 있기라도 하듯이”.

이처럼 레빈은 우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면서 무아지경의 순간을 느낀다. 더불어 의식을 집중할수록 시간 또한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다. 다만 자신의 육체는 기쁨의 춤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치 요술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도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정교하게 되어 가는 것이었다. 그런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레빈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몇 시간 동안이나 베었냐고 물었다면 그는 30분쯤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정오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작가의 분신인 레빈은 몰입의 과정에서 더 없는 행복을 만끽한다. 성장의 첫 번째 과정이다. 레빈은 일에 몰입하면서 자신이 언제 기쁨을 만끽한지를 알고 자아 해방의 의미를 깨닫는다. 이처럼 성장은 자연스럽게 기쁨과 행복을 동반한다.

한편 키티는 레빈의 사랑을 받아들이며 결혼에 응한다. 그들 또한 보통 부부처럼 여러 갈등이 있었지만 그것을 슬기롭게 극복해 가며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간다.

당연히 행복한 자아로 가정을 이룬 레빈은 성장의 두 번째 과정인 타인과 소통은 물론이요 성장의 세 번째 과정인 세상과의 교감 또한 한층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진정한 성장이라고 정의할 것인가? 

실마리는 안나의 삶이 아닌 레빈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 레빈의 삶에서 보았듯이 성장의 기쁨은 단순한 행복 그 이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장의 기쁨은 안나의 사랑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레빈의 삶처럼 지속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장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삶의 과정에서 꼭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슬픔일지 고통일지 아니면 기쁨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성장하는 힘이 있다면 더 이상 무의미한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오직 슈퍼기쁨과 동행하며 새 날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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