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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정신’, ' 5.18의 역사'...“잊지말자”

5.18광주역사기행 ... 두 신문사 공동기획으로 성황리에

  • 입력 2018.05.20 14:13
  • 수정 2018.05.21 04:51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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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5·18역사길 걷다’라는 주제의 광주 역사기행 탐방단 일행이 국립518묘지 앞에서 기념쵤영을 하고 있다.

제 38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이튿날 주말인 19일 여수넷통뉴스(대표 엄길수)와 여수뉴스타임즈(대표 김경만)가 공동기획한 ‘5·18역사길 걷다’라는 주제의 광주5.18 역사기행을 30여명의 독자와 함께 성황리에 마쳤다.

양사는 언론 문화 창달과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 주고자 서로 업무협약을 체결한 후 처음 실시한 공동행사였다.

지난 3일 <여수넷통뉴스> 대표 엄길수 이사장(왼쪽)과 <여수뉴스타임즈> 김경만 대표이사(오른쪽) 의 뉴스 제휴 협약식 체결 모습

이날 행사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참배를 시작으로 5.18기념재단 전문해설사 박경순씨의 안내로 국립5·18민주묘지 구역과 행불자 묘역을 둘러보고 구 묘역인 제3묘원에 들렀다.

제 3묘원 입구에서는 이한열 열사의 모친을 비롯한 광주 민주화운동 유가족등을 만나 기념촬영과 방문에 따른 환영의 말씀을 듣고 이한열,박관현,백남기,엄익돈 등의 묘지를 둘러보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묘지 앞에서는 묵념을 하기도 했다.

오후에는 구 도청과 상무지역을 둘러보았다. 

상무대 영창 부지인 광주 서구 5·18자유공원에서 열리는 '5·18영창 특별전-스물세 개의 방 이야기' 전시회 관람과 5.18 다큐멘터리 동영상 시청으로  광주역사기행을 마무리 했다.

 

 

일행은 묘역에 들어서자마자 관리사무소의 안내로 순번에 따라 참배를 먼저 실시했다. 이날은 참배객이 많아 오전에는 순번을 기다리는데 20여분이 소요됐다.

 

묘역으로 이동하는 역사기행 일행들

 

5.18기념재단 전문해설사 박경순씨. 현장과 버스안에서 탁월한 언변과 식견으로 광주정신과 5.18의미를 최선을 대해 설명해주었다.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묘.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윤상원 열사와 그의 야학 동료교사였던  박기순 열사는 후에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그 결혼식에서 나온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아직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들의 빈 묘역이 안타깝고 쓸쓸하다.

신묘역인 국립묘지에 이어 구 묘역에 들렀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환영과 기념촬영 시간을 가졌다.

배 여사를 비롯한 광주 518유족등은 제 3묘원 앞에서 텐트를 쳐 놓고, 물을 서비스하는 등 참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배은심 여사는 "여수서 와주어서 고맙다. 여러분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아닌가? 광주정신을 이어받아 이제는 '통일'로 가자"며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국립묘지와 마찬가지로 3묘원에도 규모가 큰 노동단체를 비롯해 전국에서 찾아온 참배객으로 붐볐다.

박경순 해설사의 안내로 '전두환 묘비'를 밟고 3묘원을 둘러보고 참배했다.

참가자들이  제3묘원 입구에서 민주열사 가족 및 5.18희생자 유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영화 <1987> 에서 아들 역할을 한 강동원이 '어머님에게 대접을 잘 잗았다'고 말해 더 유명해진 배은심 여사는 춧불 정신과 광주정신은 같다며, 이제는 남북 통일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헤어지면서도  거듭 이제 "통일로 가자!" 고 했다.

 

제 3묘원 입구에서 박경순 해설사의 안내에 탐방단 일행이 경청하고 있다.

 

3묘원 입구 길에 박힌 '전두환 비석'를  밟고  참가자들이 묘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길에 박힌 '전두환 비'.  전두환이 전남 지역을 방문하고 기념으로 세운 비석을 시민들이 파쇄해 일부를  3묘원 입구 길에 묻었다.

 

퇴직교사 공문택 회원도 함께 했다.  당시 그는 교사로  재직중 업무차  광주의 도교육청을 방문했다가 군용차량등을 보고 부랴부랴 집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는 5.18역사의 현장을 찾아와 의미을 되새기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 3묘원에 있는 당시 전남대 학생회장 박관현 열사의 묘비가 보인다.  바로 옆에는 이한열 열사의 묘가 있다.

 

참가한 곽정자씨는 당시 광주버스터미널에서 안내 방송을 하다가 군인에게 쫓기는 대학생 2명을 방송실 안으로 대피시켜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해양경찰 퇴직한 김배선씨는 그동안 공직자로 5.18과 관련해 '방관자'였다며 이 기회에 상세히 설명도 듣고 참배도 처음 하게 돼 나름 '동참'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제 3묘원에는 최근에 모셔진 백남기 농민의 묘도 자리하고 있었다.

 

 여수  구봉중학교에서 전교조운동을 하다 고인이 된 참교사 엄익돈의 묘도 제 3묘원에  있다.

 

참가자인 현직 교사 이현종의 안내로  일행은  여수 구봉중 교사였던 엄익돈의 묘를 참배했다.  이현종은 여수시민협 공동대표이면서 <여수넷통> 이사를 맡고 있어 특별히 참가했다.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묘지. 그의 손톱과 머리카락이 묻혔다.

 

언론사의 행사인 만큼 참가자들은 특별히 독일 언론인의 묘지 앞에 고개 숙여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제3묘원 태극기가 멀리 조기로 나부낀다.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버스를 타고 전남대학교 정문, 광주역, 광주고 앞 거리, 녹두서점 앞,  대인동 거리, 당시 불난 광주MBC 등을 지나며 박경순 해설사 안내로 5.18 발발에서부터 최후 격전지까지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

구 도청 중심으로 5.18 사적지를 둘러보고 상무지구 자유공원에서 23개의 방에서 역사의 아픔을 느끼며 영창체험과 동영상 감상으로 광주역사기행을 마쳤다.

양사는 이번 행사를 의미있게 마쳤다는 평가와 함께 여순항쟁70주년을 맞는 10월 이전에 공동기획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구 전남도청으로 이동하고 있는 일행들.

 

각종 기록물이 전시된 구 도청을 둘러보았다.  각 전시실은 왜 유네스코에서 5.18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 웬트워스 공대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 1980년 5월 21일부터 27일 아침까지 해방광주는 시민들의 손에 있었다. 어떤 은행도 약탈당하지 않았고 강도, 강간, 절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외국인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했다.  전 도시가 하나의 대가족처럼 한데 뭉쳤다"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사진이 전시된 구 도청.   그가 말한다. "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최초의 엄청난  슬픔과 서러움이었다.  베트남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할 때도  이렇게 비참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상무지구 자유공원으로 이동하는 일행들. 이곳에는 시민군들중 남자들이 잡혀와 군 부대 영창과 군 부대 사법기관의 심판을 받았던 곳인데 군 부대는 이전하고 주택이 들어섰다.  시민들이 요구해  당시 군부대의 영창과 내부반등을 약간 옮겨  그 자리에 복원해  '자유공원'으로 남겼다.

 

자유공원에서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셨던 분들이 역설적이게도 '군인복장;을 하고 안내해 주었다.

 

복원된 당시의  상무대 영창. 시민군들이 잡혀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참가자들이 영창체험을 하고 있다.

 

참가자 여수넷통 회원 이태기씨는 " 5.18의 역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하고,  촛불 정신으로 살아난  '광주정신'은 우리가 꼭 계승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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