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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치고개 집단살해사건➂

고마운 고향 사람들

  • 입력 2018.06.12 15:44
  • 수정 2018.06.21 18:12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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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이미 ‘구봉산 이야기’를 연재했던 필자 김배선(66)씨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의 저자이며 다음카페 '조계산 연구소' 운영자이다. 해양경찰 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향토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조계산 주변에서 6.25전쟁 직후 일어난 많은 이야가를 들었다. 산 속으로 피신한 민간인들과 이를 토벌하려는 군인들 간에 있었던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채록하여 메모로 남겼다. ‘빨갱이’라는 이름을 듣지 않으려는 증언자들의 기피도 있었지만 친근함과 꾸준함은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소설형태를 빌렸지만 그가 채록한 증언은 생생하고 역사기록물이기도 하다. 이제 김배선씨로부터 ‘조계산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현대사’를 한편 한편 들어보자.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이 영감님이 “질도 멀고 한디 싸게 넘어가셔야 제라! 여그서 내려주고 가시오“ 했으나 아주머니는 대답도 하지 않고 사위에게 마을길로 더 들어가자고 하여 마을의 첫 집에 해당하는 정자 옆에 차를 세웠다.

이 영감님이 서둘러 내리면서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하옥숙 아주머니도 이미 내리고 있었다.

“야~야, 저 뒤에 있는 거 모두 정자로 갔다 놓그라” 하더니 이 영감을 향해, “동네 계신 분들 전부 나오시라 그래가꼬 술 한 잔 하시라 그러시이소” 했다.

“다들 일가고 사람도 없을 것인디…”

사실 요즈음 시골이야 사람들도 없고 모두가 나이든 사람들뿐이지만 농사철이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들로 나가고 동네가 텅 비는 실정이다.

“있는 사람들이라도요.”

그래도 손님이 부르는 잔친데 자기 일이야 오늘 안 해도 그만이지만 모두 해봐야 스무 집에 혼자 사는 사람이 태반인데 일간 사람을 빼고 나면 몇 안 될 것이 빤하므로 체면이 서지 않을까봐 걱정을 앞세우며 저도 몰래 마을 주변을 살폈다. 가까운 곳에 누가 보이는지 둘러본 것이다.

이미 술과 음식을 날라다 놓았으니 하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람들 소리가 들렸는지 골목에서 나오는 몇몇 사람을 보고,

“어이 동네 있는 사람들 다 나오시라 그러소! ”

그러고는 90이 넘은 이 마을의 최고령자 이두일 영감님을 향해, 성님 여그 술 한 잔 하시라 그런다요, 하고 예를 갖췄다.

“뭐 헌다고 이렇게까지…”

꾸부정하게 뒷짐 진 허리를 펴며 그 나이에도 아직 한 잔씩을 하는 터인지라 싫지 않다는 표정이다.

접치재 학살 옛 국도 ⓒ김배선

승모 할머니가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오기도 전에 아주머니들 두 셋이 나왔고 사위와 하옥숙 아주머니가 생선이며 전이며 과일 과자 등을 1회용 접시에 담아 정자마루에 제법 그럴싸하게 차리기를 마치자, 노인 다섯에 아주머니 일곱이 모였다.

“이 동네서 살다가 어릴 때 부산으로 가서 아부지 묏을 찾아볼라고 왔다가 동네사람들 한데 이렇게 대접을 허고 가신다요.”

이종진 영감님의 생략된 안내 말이다.

말이 떨어지자 술병을 들고 남자들 쪽으로 가서 한잔씩을 따르며 눈으로 교감을 하며 사위를 향해, 바라, 음료수가 와 안 보이노? 하자 사위가 깜빡했다는 듯 차를 향해 뛰어갔다.

이때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던 정명완 씨와 이종기 씨가 경운기를 타고 들어오고 재만이 모친이 건너왔다.

이렇게 되니 평소에 노인정으로 나오는 사람은 거의 다 모인 편이 되었고 일을 하다가도 새참 생각이 날 시간이니 마침 잘 되었다 싶기도 하여 자연스런 분위기가 되어, 열심히 음식을 먹는 중에도 치사에 말들을 한마디씩 아끼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진짜 궁금해 할 하쌍수와 관련된 이야기는 꺼내려 들지를 않았다.

“야~야 저기 있는 것들 냉기지 말고 다 내 놓그라.”

“예 알았심더.”

이종진 영감 뒤에 있던 옥숙이 아주머니가 옆으로 다가앉으며, 두일이 영감을 향하여 아부지 말고도 이 동네서 몇 사람이나 돌아 가셨능기요? 하고 궁금했던 말을 꺼냈다.

“그때 우리 동네서는 네 사람이 끌려가갖고 아부지허고 이종석이 허고 오종호는 죽고 김영철이 혼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 말이 한산(외지)인부들만 죽였다 그러지마는 들어온지가 오래된 사람들은 지방인부나 다름이 없은께 지방인부 쪽으로 줄을 섰으먼 됐을 것인디 여그(주암) 사람들도 한산인부 쪽으로 줄을 서가지고 그렇게 된 것이여.

그래도 자네 아부지는 나슨(은) 편이여. 민길이(문길의) 한씨 성제는 대대로 여그 사람인디 한산인부 줄에 섰다가 한꺼번에 죽어 부렀응께 말이여.“

하쌍(상)수는 본래 외지인이었는데 해방 전에 이곳 행정저수지공사판으로 벌어먹으러 왔다가 해방이 되자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떠나지 않고 아예 접치마을에 눌러 앉았다가 공사가 다시 시작되자 일을 나갔기에 마을에 들어 온지 5년이 넘어 동네사람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래도 문길마을의 한 씨 형제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그렇게 묻는 말에는 대답을 했지만 아직까지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오랜 세월동안 금기로 길들여진 때문인지 한마디씩 거들 법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고 이종진 영감님이 당시 총살되어 있던 상황과 하쌍수를 그곳에다 묻었던 경위만을 설명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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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범 2018-06-13 09:53:38
모두 잘 알고 있듯이,자기가 가지고 있지않은 욕심나는 물건은 아름답고,좋아보이며
값 비싸게 보인다고한다. 그러나 소유자의 입장에서보면,노력하지않고 편하게 얻은
결과는 없으리라.....
남다른 소유욕과, 힘들게 흘린 땀과동시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했으리라.....
작가가 글을 쓴다는건, 그 어떤 소재에 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쉬임없는,발품을
팔며, 사실에 입각한,상상력과, 현장감있는,증언을 토대로 작품이 완성 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세번째 연재작품 자 ~알 산책 했으며, 건강한 필체의 다음호를 기대하며....
이명범 2018-06-13 09: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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