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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돌바위 경찰차 습격사건③
젊은 네가 업어라
  • 2018.06.28 10:11
[편집자 소개글]

이미 ‘구봉산 이야기’를 연재했던 필자 김배선(66)씨는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의 저자이며 다음카페 '조계산 연구소' 운영자이다. 해양경찰 공무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경력이 있다. 향토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조계산 주변에서 6.25전쟁 직후 일어난 많은 이야가를 들었다. 산 속으로 피신한 민간인들과 이를 토벌하려는 군인들 간에 있었던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를 현장에서 직접 듣고 채록하여 메모로 남겼다. ‘빨갱이’라는 이름을 듣지 않으려는 증언자들의 기피도 있었지만 친근함과 꾸준함은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소설형태를 빌렸지만 그가 채록한 증언은 생생하고 역사기록물이기도 하다.   

폭음소리에 뛰어 나왔던 재진소년도 방으로 들어가 막 누워 잠을 청하려 할 때 밖에서 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은어머니가 문을 열고 내다보는데 큰방사람들의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재진이도 따라 나가보니 어둡기는 하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마당에 엎드려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어두웠을 때는 반란군인지 경찰인지 알 수가 없어 겁이 났지만 불을 켜고 말을 들어보니 조금 전 차에서 총에 맞은 그 경찰관이 분명하므로 안심이 되었다.

총을 맞고도 어떻게 여태 숨어 있다가 이곳으로 왔는지 놀랍기도 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친 사람을 뭣 모르고 도와줬다가는 상대편의 보복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에 일단 의심부터 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당시 사람들의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때 동기 아버지가,

“젊은 니가 업어라. 담배건장으로 가자“ 하면서 앞장섰다.

조포막 쪽에 있는 백형호 씨 집을 말하는 것이었다.

환자를 도와주기 싫어서 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작은 집에 두 집 식구들로 빽빽하여 도저히 눕힐 자리가 없는 것에 반해, 백형호 씨 집은 담배 건장이므로 넓고 따뜻한 방이 있기 때문이었다.

등을 내밀고 붙들어 올려주는 환자를 치켜 올리자마자 사립을 나서, 뒤따르는 동기 아버지와 함께 정신없이 달렸다. 잠시 멈출 시간도 없이 개천가에 있는 백형호 씨 집에 도착하여 불을 때서 담배를 말리느라 뜨끈뜨끈한 방에다 내려놓고서야 총에 맞은 또 한사람이 이웃 황일용 씨 집에 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엉겁결에 업고 오느라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그를 내려놓고 나서 또 한사람의 총 맞은 사람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그가 총을 맞고도 죽지 않고 숨어 있다가 두 시간이 넘도록 피를 흘리며 외딴 집까지 기어서 왔는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내려놓은 김 소년은 이제 작은 집으로 갈 필요가 없으므로 곧바로 노디를 건너 집으로 달려가 지친 몸을 눕히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등이 머들머들하여 옷을 벗어 보니 옷과 등짝에 검붉게 말라붙어 있는 피를 보고서야 그 사람이 배 어디를 총에 맞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진소년이 업고 간 사람과 먼저 황일용 씨 집으로 온 두 사람은 모두 소메(우산)마을 사람들이었다. 동기(작은어머니)네 집으로 찾아온 사람은 앞차를 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와 함께 총알이 쏟아지며 차가 처박히듯 멈춰서자 차에서누구 할 것 없이 서로 밀치며 뛰어 내렸다.

먼저 내린 사람들이 악을 쓰며 쓰러지는 것을 보고 총알이 날아오는 방향을 알아챘다. 그는 덕동 쪽을 보고 냅다 뛰다가 쓰러져 순간적으로 정신을 일었다. 정신이 돌아오니 피로 벌건 아랫배가 보였다. 일어나려고 움직였더니 통증이 오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서야 자기가 총에 맞은 것을 알아차리고 논둑을 의지하여 아픈 곳의 옷을 걷어 올리니, 아랫배 왼쪽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기에 옷을 찢어 피를 막고 배를 둘러 묶은 다음에 손바닥으로 누르고서 비스듬히 언덕을 기대고 동료들이 모두 구릉목재를 향해 도망치는 것을 보면서, 이러다가 나 혼자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릉목재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총소리가 멈추고 날이 어두워가자 죽든지 살든지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하고 구릉목재에 있는 집을 향하여 기기 시작했다.

300m는 되는 거리를 한손으로는 상처를 감싸고 오른손 팔꿈치와 팔목으로 땅바닥을 끌면서 발을 뻗어 낮은 포복으로 가다가 멈추고, 또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였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필사적으로 기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차가 있던 곳에서 느닷없이 불길이 솟아오르고 포 소리가 울렸다. 이제는 잡혀 죽는구나 싶은 생각에 자포자기 하고 누워버렸다.

그믐께 초저녁의 어두운 하늘에 눈을 맡긴 채 자신의 숨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불길은 점점 사그라들고 주위는 금시 적막해졌다.

그제야 상황을 짐작하고 다시 죽을힘을 다해 기기 시작하여 재준소년이 있던 동기 네 집 마당에 도착하여 생명의 구원을 얻게 된 것이다.

황일용 씨 집으로 간 사람도 혼자 죽을힘을 다해 그곳으로 가 목숨을 구했다.

그 후 두 사람은 모두 벌교병원으로 옮겨 치료가 되어 복귀하였으나 재진소년이 업고 간 사람은 항상 빨갱이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며 계속 토벌대에 있다가 훗날 지리산 전투에서 전사를 하였다. 황일용 씨 집에서 살아난 사람은 잠시 더 토벌대로 근무를 하다 마쳤는데 경찰로 근무했을 때는 물론, 일반인이 되어서까지 때때로 선물을 들고 황일용 씨 집을 찾아 당시의 은혜에 감사하였으며 90년대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증언들을 하였으나 그분들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한편 총알을 맞고 차에서 내린 전근만 씨는 뛰어 도망쳤지만 또다시 총을 맞고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목덜미와 허리에서 피가 흐르고 어디에 몇 발이나 맞은 건지 몸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에 우선 지혈을 하고 나서 산척사람인 선호아버지 내외가 하는 구릉목 끝의 주막집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기어갔다. 칠팔십여 미터를 기어갔을까. 발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약간 어둡기는 해도 습격자들임이 분명했다. 발각되면 죽는다는 생각에 논개울 쪽 길가에다 얼굴을 박고 엎드려, 숨을 죽인 채 몸을 늘어뜨렸다.

그러자 그는 “여기 한 놈 있다!” 하고 다가와서는 발로 툭툭 차며 전근만 씨를 살펴보고는 죽었다면서 후미차를 향하여 가버렸다.

숨이 막히는 순간이 지나갔다.

차가 있는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움직여 자리를 옮겼다가는 눈치를 챌 것이 분명하므로 일단 그 자리에 있기로 하고 엎드려서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차에 불을 지르고 나서 모두 돌아가버렸다.

이미 그때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전 씨는 다시 죽을힘을 다해 주막집을 향해 기어갔다. 천신만고 끝에 김옥석 씨가 하는 개천가 산비탈 주막집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소달구지에 실려 벌교로 옮겨 치료를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으나 전 씨는 그 후 평생 힘든 일은 하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고 한다.

 

-새벽에 현장을 서성이는 두 사람

전방 끝이 선도차 피격지점

다음날 새벽 동쪽하늘이 밝아올 무렵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그림자 둘이 선도차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차의 불타버린 짐칸을 넘어다보기도 하고, 쓰러져 있는 경찰관들을 뒤적이기까지 하면서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버리고 간 총과 실탄을 찾고 있었다.

찾은 실탄을 준비한 주머니에 담거나 몸에다 감고 M1총은 어께에다 들쳐 메고서 구시둠벙 아래 물이 얕은 곳을 골라 신정(현재 면사무소위치)으로 건너가 마을 뒷길을 따라 운구재를 향해 마치 승리자처럼 빠르지만 여유 있는 걸음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보는 눈이 있었다.

일찍 일어나 통샘 골목으로 나온 사람의 눈에 하천을 건너와 신정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샘 골목을 지나가는 동안 조용히 몸을 숨기고 지켜보니 양 어께에다 총을 들쳐 메었는데 앞장 선 사람이 상이읍의 이종구가 분명했다.

“종구는 작년에 조계산으로…” 하고 생각을 하니 훤하게 풀렸다.

‘저놈들이 그랬는 모양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주위에 보는 사람이 있나 싶어 겁이 나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새벽에 현장에 찾아와서 어제 미처 가져가지 못한 총과 실탄을 찾아 가는 이종구는 상이읍에 사는 삼형제 중의 가운데로, 스물아홉 살인 지난 여름 좌익청년들에게 이끌려 조계산으로 입산한 청년이다.

원래 이종구는 좌익이 무언지도 모르던 한낱 배움 없는 산골청년이었다.

그런데 1949년 여름 공산주의 사상을 맹신하여 조계산에 입산한 같은 마을의 구구선 등이 총을 메고 마을에 내려와 청년들 30여명을 모아 놓고 ‘운구재에 가서 할 일이 있다’고 속여 강제입산 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종구도 그때 끌려가 입산자가 된 사람이다. 처음에는 분명 좌익이 아닌 시골 청년이었으나 입산을 한 뒤에는 그들을 따라다니며 좌익으로 변했고 결국 뒷날 이종구는 양식을 구하러 내려왔다가 덕동마을 앞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만약 그날 오후부터 시작되는 토벌대의 관련자색출에서 이 사실이 밝혀졌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지 모른다.

이읍 노인당에서 이 사건을 증언하는 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랬으면 상이읍은 쏘(沼)가 돼 버렸겠지라!” 하였다.

소가 되었을 것이라는 뜻은 마을이 물보라의 소용돌이에 빨려들고 말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유주문 토벌대장과 대원들의 분노에 찬 보복의 관련자색출에서 목격자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빨갱이가 얼마나 무서웠기에 저승으로 안고 가버렸는지 그 뒤로도 최초목격자를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배선  「조계산에서 만나는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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