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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발견한 28수 별자리, 어디서 본 건데

[몽골여행기 5] 몽골과 임실 무덤 앞에 세워진 별자리 비석은 동양천문학의 연결고리 반증

  • 입력 2018.07.14 10:03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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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소개글]
오문수 기자는 몽골알타이 답사단의 일원으로 12일간(6.17~6.28) 사막과 초원의 바다를 건너 거친 대자연이 어우러진 땅 몽골을 다녀왔다. 척박하고 불편한 땅에 살면서도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유목민들.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 3000㎞ 이상의 긴 여정을 함께한 34명의 답사단 이야기를 연재중이다. 5번째 글이다.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이 비석 탁본을 뜨고 있다
▲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이 비석 탁본을 뜨고 있다
ⓒ 오문수

 


몽골알타이 답사단이 하루에 300㎞를 달려 밤늦게 초원에 텐트를 치거나 게르, 70년대 한국여관 비슷한 호텔에서 쪽잠을 자며 몽골서부 알타이 지역을 답사한 이유가 있다. 우리 고대문화가 알타이 또는 바이칼호, 시베리아에서 남하했다는 설이 있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고조선은 요서지역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고구려 장수왕이 천도한 후기 수도가 정말 평양일까? 몽골 서부 알타이 지역의 수많은 적석총은 누가 만들었을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

답사단이 돌아본 지역은 몽골이 서역을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지나간 초원길이다. 행군하는 길에는 끝없는 초원이 펼쳐지고 좌우측 넓이가 수킬로미터에 달해 대군이 행군하기에 안성맞춤인 지형이었다. 

험한 초원길과 사막을 달려온 차량 냉각수가 끓어올라 할 수 없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후미에 뒤따르던 운전사들이 합세해 차를 고쳤다. 험한 길을 달리는 6대의 운전사들은 수시로 고장여부를 확인한다. 때론 길을 잃어 초원을 몇 시간씩 달리다 뒤돌아오기도 하고 고장수리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몽골 초원에서 만난 동양천문학
 

큰사진보기 탁본을 뜬 비석이 서서히 말라가자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말 2마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  탁본을 뜬 비석이 서서히 말라가자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말 2마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 오문수

 

 

 비석 앞에 만들어진 적석총 규모를 측량하고 있는 답사단원들. 중앙부분이 움푹패여 발굴이나 도굴이 이뤄졌던 흔적이 보였다
▲  비석 앞에 만들어진 적석총 규모를 측량하고 있는 답사단원들. 중앙부분이 움푹패여 발굴이나 도굴이 이뤄졌던 흔적이 보였다
 

 


고장수리를 마친 필자가 탄 차량이 30여 분을 달리니 일행이 탄 차량이 길가에 서있고 길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초원에서 적석총 앞에 세워진 비석을 살펴보고 있었다. 일행은 초원길을 달리며 수백 개의 적석총을 보았고 10여 개의 적석총을 조사했지만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에 유의미한 그림이 새겨진 걸 못 보았다.

그런데 답사팀 단장 이일걸 박사와 답사단 안동립 대장,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이 "의미 있는 비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의미 있는 발견이란 비석에 28수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상부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는 것.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큰사진보기 좌측면 탁본을 뜨고 해가 기울 때 촬영한 사진으로 사슴, 양, 멧돼지와 별자리들이 보인다.
▲  좌측면 탁본을 뜨고 해가 기울 때 촬영한 사진으로 사슴, 양, 멧돼지와 별자리들이 보인다.
 

 


"뭐라고요? 28수 별자리와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다고요?"

필자가 비석을 조사 중인 답사단들 사이로 비석을 살펴보니 비석 9부 높이에 빙 둘러 움푹패인 구멍들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말과 사슴뿐만 아니라 동물 형상의 그림들이 보인다. 별자리를 세어보다가 흥분됐다.

몽골 초원에서 만난 동양천문학... 임실 소충사에도 있다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 산 130번지에는 흥미로운 비석이 안장되어 있는 소충사가 있다. 소충사는 구한말 호남의병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정재 이석용과 그를 따랐던 28의사를 모시는 사당이다.

소충사 맨 위에는 이석용 의병장 묘가 있고 그 아래에 28의사 합장묘가 있다. 28의사 비석 전면을 보면 의병 하나하나의 이름과 함께 28수 별자리를 각각 하나씩 배당해 그려놓고 있다. 이는 의병들의 숭고한 기개와 희생을 천문의 질서 속에 안치해 영원한 별들처럼 기려지기를 기원함이다.

[관련기사 : 영원한 별처럼 뜻이 기려지기를 바란 소충사 28수 천문비]
 

  전라북도 임실소재 소충사 28수비 전경. 맨 중앙에 가장 높이 세운 비석이 이석용 의병장의 비석이다. 이석용의병장은 구한말 호남지방에서 명성을 떨친 의병장 중 한 명으로 동양천문학에 능통했다. 이석용비석 전면에는 '북극'이 뒷면에는 '남극'이 좌우측에는 일월화수목금토의 7요가 적혀있다
▲  전라북도 임실소재 소충사 28수비 전경. 맨 중앙에 가장 높이 세운 비석이 이석용 의병장의 비석이다. 이석용의병장은 구한말 호남지방에서 명성을 떨친 의병장 중 한 명으로 동양천문학에 능통했다. 이석용비석 전면에는 '북극'이 뒷면에는 '남극'이 좌우측에는 일월화수목금토의 7요가 적혀있다
 

 

 

큰사진보기 임실문화원에서 발행한 <임실항일운동사> 220페이지에는 28수 중 '동방7수비'에 새겨진 별자리들의 사진을 활영해 놓아 비석에 새겨진 별자리들을 살펴볼 수 있다.
▲  임실문화원에서 발행한 <임실항일운동사> 220페이지에는 28수 중 '동방7수비'에 새겨진 별자리들의 사진을 활영해 놓아 비석에 새겨진 별자리들을 살펴볼 수 있다.
 

 

 

큰사진보기 소충사 28수와 사신도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  소충사 28수와 사신도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28개 비석의 맨 중앙에는 다른 비석보다 높게 세워진 비석이 있는데 의병장이었던 이석용 비석이다. 이석용 비석의 앞면에는 '북극'이라 새겼고 뒷면에는 '남극'이라 새겨 지축의  남북극을 구현했다.

28수는 적도 주변에 포진된 수많은 별 중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28개의 별자리를 특별히 만들어 천문을 관찰하는 지료로 삼았던 천문체계이다. 서양에서는 태양이 지나는 길 위에 관찰되는 12개의 별자리를 지표로 삼아 황도 12궁 체계를 만들었다. 반면 동양 고대천문학에서는 지구의 북극점이 가리키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삼았다.

사마천은 28수 별자리를 사방위로 나누어 사신도(四神圖) 이미지로 중첩시켜 이해하도록 했다. 동방 일곱자리는 '청룡7수'로, 서방 일곱자리는 '백호7수'로, 남방 일곱자리는 '주작7수'로, 북방 일곱자리는 '현무7수'로 분속했다.

탁본 후 선명하게 드러난 28수 별자리와 몽골동물들
 

  비석의 사방 탁본을 뜬 후 연결한 모습
▲  비석의 사방 탁본을 뜬 후 연결한 모습
ⓒ 안동립

 

 

 알타이 답사단 안동립 대장이 탁본뜬 자료들을 특수한 기법으로 본을 떠 보내왔다. 해와 달, 28수 별자리, 양, 사슴, 말 2마리, 새, 멧돼지 등이 보인다
▲  알타이 답사단 안동립 대장이 탁본뜬 자료들을 특수한 기법으로 본을 떠 보내왔다. 해와 달, 28수 별자리, 양, 사슴, 말 2마리, 새, 멧돼지 등이 보인다
ⓒ 안동립

 


답사단은 탁본을 떠서 한국에 돌아가 연구하기로 했다. 바로 탁본 준비에 들어갔다. 탁본은 전문가인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이 맡았다. 탁본하는 걸 처음 본 필자를 위해 임실군문화해설사 강명자씨가 탁본 재료를 설명해줬다.

먹, 한지, 좁쌀방망이, 스프레이, 솔, 광목천, 종이테이프, 신문지, 먹물그릇, 칼, 화장지로 10개가 넘는다. 신문지는 먹물 농도측정용이라고 한다. 높이 1.35m, 앞뒤면이 각각 30㎝, 측면이 각각 26㎝인 비석에 탁본을 뜨는 동안 일부는 가운데가 움푹 패인 적석총을 조사했다.

가운데 돌들이 밖으로 헤쳐져 있어 도굴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알 수 없었다. 탁본 뜨느라 비석 앞에서 한 시간 이상 조사하고 있는데 현지 유목민이 차를 몰고 와 항의하는 것 같은 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어 한국에서 3년간 일하다 돌아와 운전하는 '자야'를 통해 우리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안동립 대표가 "탁본만 뜨고 비석을 전혀 훼손하지 않을 테니 이해해 주세요"라고 하자 투르토르(25)가 "알겠습니다"라며 말했다. 
 

 몽골초원의 적석총 앞에 서있는 비석에서 탁본을 뜬 후 기념촬영하는 답사단원들.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몽골초원의 적석총 앞에 서있는 비석에서 탁본을 뜬 후 기념촬영하는 답사단원들. 굉장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몽골초원의 적석총 앞에 세워진 비석의 탁본을 뜨자 현지 유목민(투르토르)이 찾아와 "무슨 일인가?"를 물었다. 답사단 안동립대장(맨왼쪽)과 이일걸 답사단장(맨 오른쪽)이 "단지 탁본만 뜰 것이며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해주자 "알았다"며 돌아갔다.
▲  몽골초원의 적석총 앞에 세워진 비석의 탁본을 뜨자 현지 유목민(투르토르)이 찾아와 "무슨 일인가?"를 물었다. 답사단 안동립대장(맨왼쪽)과 이일걸 답사단장(맨 오른쪽)이 "단지 탁본만 뜰 것이며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해주자 "알았다"며 돌아갔다.
ⓒ 오문수

 


"20년 정도 이곳에서 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비석에 몰려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왔어요. 저 무덤은 20년 전에도 저런 형태로 있었기 때문에 도굴된 것인지 발굴된 건지는 알 수 없어요." 

탁본을 들고 한국에 돌아온 동아지도 안동립 대표가 탁본에 새겨진 그림 자료를 보내왔다. 그림에는 28수 별자리외에도 말 2마리, 사슴, 양, 멧돼지, 독수리, 해와 달, 칼 등이 보였다.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어느 시대인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커다란 무덤의 규모로 보아 권력자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겠지만 답사단이 커다란 의미를 발견한 것은 동양천문학이 한국과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몽골에도 있었다는 점이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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