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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해학살자 유족들, 전국 위령 순례 나서

백비(白碑)순례단, 만성리 형제의 묘에 원혼비 세워

  • 입력 2018.07.18 11:58
  • 수정 2018.07.18 13:46
  • 기자명 곽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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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주철희 박사의 안내로 여순항쟁 발발지 찾아

백비순례단, 10월까지 전국 순례 후 판문점에서 기자회견 예정

형제의 묘에 원혼비를 세우고 있는 유족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상임대표 윤호상)가 '백비(白碑)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위령순례단(이하 백비순례단, 단장 정명호)'을 결성했다.

이들 전국 유족회는 팔십의 고령으로 폭염, 혹한을 견디며 현재 390일 넘게 청와대 앞에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과 특별법 제정과 과거사 기본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족회는 자신들의 외로운 이 투쟁을 전국에 알려 내고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자는 뜻을 모아 ‘백비; 가야할 땅, 되찾아야 할 이름들’을 슬로건으로 순례단을 꾸리고 전국 순례에 나섰다.

유족회가 폭염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선 데는 이들의 외로운 싸움을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사회적공론화미디어 투쟁단’이 함께 하면서 비롯됐다.

백비순례단은 앞서 지난 16일 오전 7시,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집결출정식을 가진 후 1차로 제주를 진압하라는 출병 명령에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며 봉기에 나선 1948년 10월 19일, 여순항쟁 발발 지역인 여수를 첫번째 순례길로 택했다.

이날 오후, 여수를 찾은 백비순례단에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피학자자 전국유족회 관계자를 비롯해 ‘사회적공론화미디어 투쟁단’ 외에도 여순사건여수유족회 황순경 회장, 김천우 전 유족회장, 순천유족회, 보성유족회를 비롯해 서경원 전 국회의원,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옛 14연대 주둔지였던 여수 한국화약을 찾은 순례단

여순항쟁을 연구하고 있는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의 안내를 받아 여순항쟁이 발발했던 신월동 옛 14연대 주둔지에서(현 여수한국화약)를 시작으로 여순항쟁 당시 토벌에 나선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중앙초등학교와 만성리 ‘형제의 묘’를 찾았다.

이들은 이 두 곳에서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낸데 이어 만성리 형제의 묘 앞에 원혼비를 세웠다.

이들은 형제의 묘역 옆에 원혼비를 세운 이유에 대해 “여순항쟁 이후 유족들의 손에 세워진 형제의 묘 묘비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겼다가 다시 덮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참담함을 사람들에게 알려내고자 하는 마음과 희생자들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원혼비를 세웠다”고 전했다.

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중앙초등학교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여수지역 민간인 학살지역 위령 순례를 마친 순례 단원들은 일정의 마지막으로 신기동 노마드 갤러리(관장 김상현)에서 주철희 박사로부터 여순항쟁이 발발했던 과정을 듣고 1948년 10월 19일에 일어난‘여수 순천 지역 사건’을 왜 항쟁으로 이해해야 하는지 이해했다.

주 박사는 항쟁을 ‘지배 권력의 부당한 억압 또는 불법적 행위에 대한 집단적, 대중적인 실천이다’고 정의했다.

그는 항쟁의 성격을 세 가지로 나눴다.

첫째, 다수 또는 복수의 주체들이 함께 행위를 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대중적 의미를 가진다.

둘째, 집단적 저항실천이 역사적 정치적으로 널리 의미가 확산되어 기록될 만한 사건임을 의미한다.

셋째, 대중이 지배적 담론 질서에 대항에 집단적이고 전면적으로 저항을 실천하고 나아가 지배질서의 일상적 작동을 정지시킨 사건을 말한다 라고 설명했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그는 “제주도민들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내린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고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며 궐기한 당시 여수14연대 봉기군들과 그들과 뜻을 함께한 여수 지역민들의 행동은 항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주철희 박사가 신기동 노마드 갤러리(관장 김상현)에서 여순항쟁의 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양민 학살에 대한 정의도 새롭게 내려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주 박사는 양민 학살을 놓고 1951년에 발생한 거창 양민 학살의 경우 당시 이승만 정권이 군인들에 의한 양민들이 학살당했다고 인정하면서 양민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음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 ‘양민’이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선량한 사람들이 학살당했다는 뜻' "이라 설명했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서 군,경 그리고 그들의 비호 아래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서북청년단들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은 선량한 사람들이 아니다며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했던 것이 이승만 정권이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희생당한 이들은 말 그대로 빨갱이, 통비분자, 불순분자, 좌익가족들은 죽여야 되는 존재로 만든 이승만 정권의 자국민을 향한 무차별적 학살을 용인해주는 셈이 된다.

이에 주철희 박사는 양민 학살이라는 말이 아닌 민간인 학살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그 이후 들어선 역대 정권 또한 아직도 그들의 죽음을 외면하면서 진실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질타했다.

백비순례단이 신월동에 위치한 14연대 무기고를 찾았다

백비순례단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을 공론화하고 국회에 과거사기본법제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와 '사회적공론화 미디어투쟁단'이 공동으로 운영한다.

이들은 한국전쟁 전후 국가 폭력에 의한 일방적 학살이 이뤄진 지역을 돌면서 당시 시대 상황을 듣는 한편 유족들과 민간인 학살현장 위령제를 봉행해 아픔을 공유하고, 민간인 학살의 역사 알리기에 나서면서 또 각 지역사회단체와 기관을 방문해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운동에 온 국민이 함께해 줄 것을 호소할 참이다.

순례단은 10월까지 8차에 걸쳐 전국을 순례한 후 마지막으로 판문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백비 관련 내용을 청와대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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