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텐트 치다 산산이 부서진 몽골 초원에서의 낭만

[몽골여행기 9] 독초인 할가이에 찔리면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프다

  • 입력 2018.07.26 10:39
  • 수정 2018.07.27 11:22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34명의 몽골답사단과 함께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다녀온 여행기 연재 중입니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던 일행이 초원에 텐트를 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 안동립

몽골여행을 떠나기 전 몽골에 대한 상상을 꿈꿨다. 꿈 목록이다. 한가로이 풀 뜯는 양떼를 따라 준마를 타고 대초원을 노닐기.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보드카를 마시다 게르에 들어가 멋진 꿈을 꾸기.

예의바른 유목민 게르를 찾아가 맘씨 좋은 주인장으로부터 마유주를 마신 후 기분 내키면 밀가루 같이 고운 사막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며 <어린왕자>가 되어 보기. 운 좋으면 나담축제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흙먼지를 남기며 몽골초원을 달려보기.

 

꿈은 깨지기 마련이지만 꿈꾸는 것도 행복

몽골을 여행하며 거꾸로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너무나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네 세상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문수
백두산 높이의 산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과 염소들 모습. 초원은 인간이 아닌 가축들의 몫이었다 ⓒ오문수

영화와 사진으로 본 몽골초원과 사막은 상상의 날개를 펴기에 충분했다. 4륜구동 차량을 타고 험준한 산과 고비사막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축들이 풀 뜯던 대초원을 밟아보기 전까지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실망했냐고? 실망한 건 아니고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그리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강인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경외심을 품게 됐다. 아울러 한국인의 피에 그들의 DNA가 숨어있을 거라는 막연했던 생각에서 벗어나게 됐다. 내 엉덩이에 파란 멍이 있는 몽고반점을 보며.

카라코룸 박물관, 울리아스타이 박물관, 몽골국립박물관 방문은 우리문화의 뿌리가 어디인가를 확인해주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3000㎞를 달리는 동안 길가와 고갯마루에서 가장 많이 본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서낭당과 똑같은 오보였다.

몽골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있는 오보로 우리의 서낭당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오문수

한국과 닮은 것들이 '오보'뿐인가? 전통혼례 때 신부 머리에 얹는 족두리, 옷고름에 차는 장도, 임금의 진지상인 '수라', 접미사에 붙는 벼슬아치, 장사치, 양아치, 자갈치, 꽁치 등의 '치'도 몽골에서 유래됐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노랫말... 꿈 깨시라

밀가루처럼 부드러울 것 같았던 고비 사막길에는 조그만 자갈과 울퉁불퉁한 길이며 갈갈이 찢어진 자동차 타이어가 험난한 길임을 증명해줬다. 장시간 몽골초원과 사막을 여행하려면 텐트를 준비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행이 초원에 대한 환상을 깬 것은 대초원에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하고 나서다. 오트공텡게르 산을 내려와 차강노르로 가는 길은 대초원길이다. 이따금 나타나는 야생화가 일행을 반긴다. 이름 모를 동네어귀에서는 말들을 묶어놓고 어린이들이 나담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담축제 '말달리기' 부문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 중인 어린아이들이 연습하고 있는 장면 ⓒ오문수
나담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말타기 연습을 하는 어린이들을 지도하던 어른들이 일행의 망원렌즈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오문수

몽골독립기념일인 7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나담축제에는 말타기, 씨름, 활쏘기의 세 가지 경기가 열린다. 몽골유목민을 상징하는 말타기 경주에는 5~12세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참여한다.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말 등에 올라탔다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는데 질풍같이 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초원을 호령한 칭기즈칸의 후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은 비포장 초원길을 쉼없이 달리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날이 어두워지고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일행뿐만 아니라 운전사도 휴식을 취해야 한다.

선두차가 초원으로 들어가 텐트칠 곳을 잡자 각 조별로 텐트를 치기 시작한다. 반반한 곳을 골라 텐트를 치려는 데 소와 말똥 천지다. 이리저리 옮겨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할 수 없어 비닐을 깔고 그 위에 텐트를 친 다음 침낭 아래에 에어매트를 깔아 허리가 괴지 않도록 했다.

치열한 생존현장? 밤늦게 대초원에 텐트를 친 일행이 소똥을 모아 모닥불을 피워놓고 양고기를 뜯고 있다. 맥주를 들고 있는 일행은 "한 점 달라"며 기다리는 걸까? ⓒ오문수
풀밭 인근에서 소똥을 주워 모닥불을 피우는 일행들. 여름밤이지만 추워 두꺼운 잠바를 꺼내 입었다 ⓒ오문수

평균고도 1580m인 몽골의 날씨는 여름밤이지만 싸늘했다. 일행은 추위를 막기위해 잠바를 갈아입고 소똥과 말똥을 모아 모닥불을 피기 시작했다. 선발대는 이미 호르헉을 준비했다. 소똥과 말똥을 주워온 일행이 모닥불 주위에서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소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ㅎㅎㅎ" 

 

초원은 가축들의 삶의 현장...그들에게 양보해야

밤은 깊어가고 수많은 별들이 초원으로 쏟아질 것 같다. 마냥 기분에 취해 노래만 부를 수는 없다.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용 침낭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지만 잠이 안 온다. 발이 시려 잠을 잘 수 없다.

할 수 없어 겨울용 내의로 발을 감싸고 잠을 청했는데 몽골 초원바람은 왜 그렇게 센지. 텐트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혹시 늑대가 나타났나? 하고 플래시를 침낭에 두고 잠이 들었다.

깜깜한 밤에 텐트를 치기 위해서는 불빛이 필요하다. 일행이 탔던 차량들이 빙둘러서 불빛을 비추고 일행은 텐트를 쳤다 ⓒ오문수
대초원에 텐트를 치고 자고 일어난 아침 풀밭을 가꾸는 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 오문수

아침이 되어 텐트 밖으로 나가니 기막힌 장면이 펼쳐진다. 1㎞쯤 떨어진 초원위에 몇 채의 게르가 보이고 말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차가운 날씨 때문인지 풀잎에 영롱한 이슬이 맺혔다. 그때다. 다섯 마리의 독수리 떼가 텐트 상공을 날고 있었다. 어젯밤 일행이 먹고 버린 양고기와 뼈다귀를 먹기 위해서다.

초원을 거닐며 생각해 보았다. 이곳은 가축들 삶의 터전이다. 인간이 가축 똥을 탓할 일이 아니다. 가축들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똥도 싼다. 똥은 유기질 비료가 되어 풀들의 영양분이 된다.

인간이 이런 가축의 삶의 현장에 들어온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 모른다. 대낮이 되면 모기와 파리는 왜 그렇게나 많은지. 울란바토르로 가던 도중에 일행과 함께 풀밭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근처 풀들이 이상하다. 근방의 풀은 가축들이 뜯어먹어 키가 작은데 쑥처럼 생긴 풀이 키가 크다.

자리를 깔기 위해 그 풀을 건드렸다. "아야야!" 벌에 쏘인 것처럼 아프다. 쑥쑥 아렸다. 일행을 안내한 몽골운전사 저리거가 다가와 대중요법을 알려줬다.

"'할가이'라는 독초입니다. 오줌을 싸서 손가락 부위에 바르면 좀 덜 아픕니다. 몽골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해요. 특히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요."

대초원에서 텐트를 치고 일어나 보니 하늘에 독수리떼들이 맴돌고 있었다. 어젯밤 일행이 양고기를 먹고 버린 뼈다귀를 찾고 있었다ⓒ오문수
몽골초원을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쑥과 비슷하게 생긴 독초인 '할가이'를 만졌다가 몇시간 동안 고통스러웠다. 벌에 쏘인 것 같은 아픔을 주는 독초지만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해 맥주 양조에 쓰이고 불면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기도 할뿐만 아니라 탈모에 좋다고 한다 ⓒ오문수

독초인 '할가이'는 가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지니고 있다. 독은 잘만 이용하면 약이 되기도 한다. 할가이는 어린 생장점과 잎에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해 맥주 양조에 쓰인다. 불면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고 탈모에 좋다고 한다.

다시는 그림 같은 몽골초원에 집을 짓지 않기로 했다. 몽골초원은 가축들과 유목민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