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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봉 청년 6일간의 조계산 입산체험②

제2일 - 국골에서 선암사로

  • 입력 2018.07.30 11:40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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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골군당 골짜기최상단 장박골능선에 가까운 은신처 암자터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입산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어디 있다가 나타났는지 이재신이가 보초 보러 간다고 하였다.

엊저녁의 실망과 후회는 어디로 가버리고 그저 반가운 마음만 들었다.

“어디로 가는가? 호령봉 쪽인가?”

“장박골 쪽인데, 거기 올라가면 주암이랑 쌍암이랑 다 보이는구만요.“

“그래, 올라가 보소.”

어제 아침 삶은 보리쌀 한 사발 먹고 여태 물만 먹었으니 배가 등짝에 붙어 있을 만도 하지만, 공포와 긴장 때문인지 배고픔이 일지 않았다.

점심때가 가까워서야 주먹밥 한 덩이를 얻어먹고 하루 종일 골짜기에서 보내다가 어둑어둑해지자 붉은 띠 모자를 쓴, 처음 보는 인솔자를 따라 장박골 등을 향해 일렬로 올라가는데, 우리 두 사람을 중간에 세웠다.

 

장박골 등에 올라가니 주위는 완전히 캄캄해졌다. 그 사람들은 익숙하게 잘 가는데 우리는 아무리 잘 걸으려고 눈에 쌍심지를 돋워도 발이 자꾸 터덕거렸다.

하는 수 없이 앞에 가는 회준이에게, 이 사람아 나 아무것도 안보이네, 그랬더니

아~ 그래요, 하더니만 하얀 털수건을 꺼내가지고 자기 뒷골마리에다 질끈 묶고 나더니

“어째 좀 보인가? 요놈만 보고 따라 오소, 웨~에.”

하고 할머니처럼 인정스럽게 말을 하고서는 앞장서서 다시 걸었다.

아닌 게 아니라 희끗희끗 보이는 것이 한결 따라가기가 쉬웠다.

선암사방향으로 가는가 싶더니 산줄기를 한없이 오르고 내리다가 다시 캄캄한 골짜기를 끝도 없이 내려가더니 물소리가 철철 났다. 선암사 뒤인가 보다, 라는 희준이의 말이 들렸다.

선암사라는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타악 놓이면서, 여기서 도망치면 집 하나 못 찾아 갈라드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뒤에 생각해 보니 그곳이 냉골이었다.

선암사를 향해 좀 더 내려가 평지 같은 개울 옆을 가는데, 비가 말도 못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뜯어가지고 왔는지 이불보 같은 것을 끄집어내더니만 포장을 쳐주는데, 그 밑으로 들어가니까 비는 피할 수가 있어 여기서 또 한 가지를 배웠다.

날이 희뿌옇게 밝아 오자, 나하고 학규만 그곳에 있으라, 하고 모두 내려가 버렸다.

 

 제3일 - 두월 이장의 참형과 신전 보급투쟁

 

주먹밥 하나 먹은 뒤로 어제부터 쫄쫄 굶고 아침이 될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비를 맞으면서 3일째 아침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날이 완전히 밝았는데 하얀 옷을 입은 중 한 사람이 보자기에 싼 무엇인가를 들고 올라오더니 내려놓으면서, 이거 먹고 있어라데요, 하고는 내려가 버렸다.

재빨리 열어보니 수수와 쌀을 반반 섞은 밥과 장아찌였다. 너무 배가 고파 그냥 보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제법 많은 밥을 두 사람이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는, 그대로 계속 앉아 있으려니 비가 조금 숙(잦)기는 했어도 계속 내리는데, 내려간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꿩 구워먹은 소식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이대로 도망을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다가도, 선암사를 한 번도 와보지 않아 가다가 잡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점심때가 한참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더니 갑자기 아래서 와글와글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학규가, 이 아래가 절인갑소. 내가 얼른 내려가 보고 올 것인께 성님은 여기 있으시오, 하고는 얼마나 답답했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 내려갔다.

낮에는 좀처럼 돌아다니는 법이 없는데 이렇게 오래 내려가 있으니 더욱 궁금했다.

하는 수 없이 혼자가 되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누워서 기다렸다.

그러고 있는데 석양 무렵이 되서 학규가 숨 가쁘게 뛰어 올라오더니

“성님! 나 이아래 절에 가서 못 볼 것을 봐 부렀소.”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뭣을 봤길래 그런가?”

“참 눈뜨고는 못 보겠습디다.”

“아 글쎄 사람들이 나무를 치로 왔는디. 그 사람들을 인솔하고 온 이장이라든가? 그 사람을 반동이라고 끌어내서 총소리가 나면 안 된다고 정문 앞 큰 마무에다 묶어놓고 낫으로 찍어 죽여 붑디다.”

“경찰관이 따라 왔을 것인디.”

“순사들은 겁이 나서 따라 오간디요.”

반란군들 숨지 못하게 한다고 마을 사람들 동원해다가 토벌대들이 다니는 길 옆의 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거의 매일 시키는데, 아침에 내려간 동지들이 인솔자를 잡아다가 반동의 본보기라하여 잔인하게 죽였을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산으로 들어간, 좌익이라는 사람들이, 인민이라고 하는 마을사람들에게는 그토록 잘해주면서도 경찰가족이나 적대행위를 하는 사람 중에 대표로 지목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응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어 갔을 이장을 생각하니 그 사람도 우리 동네처럼 양쪽을 다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일이 하도 유명해서 죽은 이장이 쌍암서 접치재로 올라가는 곳 두월의 이장이었다는 것을 뒤에 알았다.

학규가, 우리도 절로 내려갑시다, 해서 갔더니 우리 식구들이 모두 저녁밥을 먹고 일주문 앞에 모여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하나 죽어 있는데 학규 말처럼 범벅이 된 시체가 커다란 나무에 묶여 머리를 떨구고 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그를 보고 공양간으로 가보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공양주가 하얀 쌀밥을 수북하게 한 사발 담아 주었다. 낮에는 수수밥을 주더니 이 사람들도 하는 수 없었든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언제 보았냐 싶게 단숨에 비워 버렸다.

보급투쟁마을 신전리 당산나무

밥을 다 먹고 정문으로 나가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모두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서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산비탈과 고개를 넘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보급투쟁을 나간 것이다. 한 시간나마 산길로 뒤를 따라가니 쌍암 어느 마을이라는이읍처럼 큰 마을이 나오는데,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당산나무가 서 있었다. 뒤에 생각하니 그곳이 마을의 신전이었다.

당산나무 밑에 모두 집합시키고 지시를 하는데, 그 지시라는 게 집집마다 들어가서 무엇이든지 한 짐씩 짊어지고 빨리 나오되, 나오면서는 꼭 불을 질러버리라는 것이었다.

‘아~ 이제 보니 이 동네를 털러 왔구나! 보급투쟁이라고 했던가?’

그렇지만 불을 질러버리라고 한 말에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 비는 완전히 그쳤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소개를 해버려 집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때의 소개는 야간에만 하는 소개였으므로, 나갈 때는 귀중한 물건이나 소와 같이 몰고 가기 쉬운 큰 짐승만 데리고 나가고 다음날 아침이면 들어오는 닭이나 토끼 같은 작은 짐승들은 그대로 두고 다닐 때였다. 물론 짐승들도 별로 없을 때이지만 말이다.

 

각자 흩어져서 집집마다 들어가는데 그는 마당이 넓고 나무비늘을 높이 쌓아 놓은 큰 집으로 들어갔다.

방이나 광을 뒤져봐도 곡식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안방 시렁 위에 상자처럼 생긴 커다란 옛날식 가방 하나가 얹혀있었다.

마당으로 들고 나와 열어보니 말린 고추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옳지 됐다! 이놈이라도 짊어지고 가야지’

줄로 묶어서 짊어지니까 빈 지게를 짊어진 것처럼 가벼운 것이 더이상 안성맞춤일 수가 없었다.

나올 때는 불을 지르라고 지시를 받았으니 불을 질러야겠는데, 방안에다 불쏘시개 하나 보이지 않아 가슴이 떨렸다.

그래도 불을 지르지 않으면 뭐라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아 마당 한쪽에 있는 나무비늘(더미)에다 불을 지르려고 마음 먹었다. 비가 와서 잘 타지도 않을 것 같았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는 짚을 한 다발 갖다 밑에다 쑤셔 넣어놓고 불을 붙인 뒤 가방을 짊어지고 나와 버렸다.

 

나와 보니 여기저기서 뭔가를 짊어지고 나오는데 가마니도 있고 포대에 무엇인가 담은 것도 있고 가지가지였다.

이후 여기저기서 불길이 오르면서 펑펑 소리가 나길래, 누가 신고해가지고 지서에서 쫓아오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옆 사람이, 불탄 곳에서 대가 터지는 소리,라고 하며 그것도 모르겠느냐 하는 말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훤히 알 수 있는 일인데 혼자서만 겁먹은 것이 창피한 마음이 들어,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불타는 곳은 모두 오두막집이었다.

그는 눈길이 자꾸 자기가 나온 집으로 갔으나 거기에는 불길이 오르지 않아, 누가 물어 볼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은근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동네를 털어가지고 다시 선암사를 향해 고개를 오르니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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