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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에 미쳐 지금도 시인 꿈꾸고 살아요"

[여수여행 다섯 번째] 별밤지기 펜션에서 시를 쓰는 금오도 시인 곽경자씨

  • 입력 2018.08.01 13:00
  • 수정 2018.08.04 08:54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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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를 닮은 섬 금오도(金鰲島)는 여수에서 가장 큰 섬이다. 동으로는 자전거 하이킹 코스와 서쪽으로는 비렁길 5코스로 유명하다. 금오도 비렁길에 전국적인 인파가 몰리는 이유는 딱 하나. 이곳에 오르면 남해안 일대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녀들이 승천 못한 '옥녀봉'의 전설 

금오도에 위치한 별밤지기 펜션 시인 곽경자씨와 남편의 모습

전설도 눈길을 끈다. 금오도 두모리 마을에 직포 해송림이 있다. 이 송림의 동쪽에 있는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짰다. 지금처럼 더웠을까?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밤새도록 목욕을 하고 놀다보니 승천하지 못해 훗날 소나무로 변했단다. 마을 이름을 직포(織布)라 한 것도 바로 그 이유란다.

금오도에 사람이 산 지는 150년도 채 안 된다. 옛날 금오도 소나무는 임금의 궁궐을 짓거나 관을 짜는 데 사용되어 일반인의 입산이 금지됐다. 황장봉산(黃腸封山)이라 불렸던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원시적인 자연과 생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1885년(고종22년)에야 민간인의 입산이 허락됐다. 올해로 딱 133년이 흘렀다. 앞서 이곳은 경신년(1860년) 안도 대화재로 300여 호가 전소되어 이곳 주민들이 금오도 등지로 이주하면서 남면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변 섬마다 친척들이 많은 이유도 다 그런 연유다.

전국적인 인파가 몰리는 금오도 비렁길의 모습

지난달 28일 여수여행 다섯 번째로 금오도를 찾았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곳은 금오도의 명동 우학마을이다. 주변에 면사무소가 소재한다. 장모님과 사위가 오순도순 운영하는 별밤지기 펜션이 있다. 이곳에는 아직도 소녀때 꿈을 버리지 못하고 칠십의 나이에 시를 쓰는 주인공이 산다. 바로 곽경자(72세)씨다. 그의 남편은 여수 오천공단에서 30년째 경리업무를 담당하다가 한 달전 정년퇴직 했다. 두 부부는 노후생활을 대비해 6년전부터 준비해 오다 귀촌했다. 

두 부부는 금오도가 고향이다. 19살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여수에서 아내는 의상실을 운영했고,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결혼했다. 이후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모두 출가시켰다. 펜션은 사위와 교대로 운영한다. 평일에는 이들 부부가 운영하지만 주말에는 사위부부가 섬으로 들어온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 빠지다

시와 별이 있는 별밤지기 펜션의 모습
너른 마당에는 10여 명이 동시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풀장이 있다
시원한 별밤지기 펜션 내부 모습

별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별밤지기 펜션은 방이 6개인데 주변이 1600평 규모다. 넓은 텃밭에 방풍, 깻잎 등을 심어놨다. 손님들이 즉석에서 야채를 따 먹을 수 있다.  윤동주에 미쳐 지금도 시인을 꿈꾸고 산다는 곽씨는 펜션도 그가 좋아하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으로 지으려다가 딸과 상의해 ‘별밤지기 펜션’으로 이름 지었다. 그에게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을 부탁했더니 수줍은 듯 시를 낭송해 갔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하략)

객실 액자에 곽경자씨가 직접 쓴 시 바람의 유언이 내걸렸다

곽경자씨가 지금까지 쓴 시만 100여 편이 넘는다.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 묻자 “시는 내 마음을 노래해 쓰는 글이 시인데 시를 쓴지 어언 20년이 되었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은 게 시를 쓰는 밑바탕이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시는 주로 이곳에서 쓴다. 어릴적 영금이 떠오르는데 자신이 쓴 시중 가장 좋아하는 시는 ‘바람의 유언’과 ‘방향’이다. 딸은 엄마가 쓴 시를 햇볕 공작소를 좋아한다. 이 시는 저녁에 바비큐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너무 행복해 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즉석에서 쓴 시, 햇볕 공작소의 일부다.
 

이름 아침

나는 부지런히 햇살을 쓸어 모은다

 

마당 한 가운데 화덕을 놓고

기다란 사리나무 빗자루로

둥그렇게 햇살을 쓸어 모은다

 

조금 있으면 들길을 걷고 산길을 걸어서

사람들이 햇살을 찾아

지친 걸음으로 이 공작소를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나는

앞마당 화덕에 불을 피울 것이다

 

화덕 위 솥뚜껑에서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에

소주 한잔씩을 달게 마시면

세상은 종이보다 더 얇아 보여

한손으로도 거뜬히 들것만 같을 것이다 (중략)

 

나는 또 햇볕을 날마다 쓸어 모아

봄의 따스한 햇볕공장소를 꾸며 놓을 것이다.

20년째 시 쓰는 곽경자씨.... "시집 낼터" 

소녀때 시인의 꿈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70대가 되어서도 시를 쓰는 곽경자씨의 모습

시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원래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내가 장문을 쓰면 맨날 그게 학교에 걸리고 글을 썼다하면 다 올라 갔어요. 하지만 살다보니 시인이 되겠다는 그 꿈을 버렸지. 이후 애들 다 키우고 대학까지 학교 보내고 여우살이(시집장가 보내는 것) 하고나니 50대가 되었지. 이후 남편이 전남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에 등록해 줘서 지금도 20년째 다니고 있어요. 53세부터 다녔으니 73살이 되었네요.”

처음 수필을 공부했다. 등단후 수필만 쓰다가 장르를 어릴적 꿈인 시로 돌렸다. 하지만 아직 시집을 못 냈다. 그는 "작품이 작품도 아닌 것 같고 여러워서 못 냈지만 조만간 시집을 펼 계획"이란다.

별밤지기 펜션은 뜰 앞 밭에서 채소를 맘대로 먹을 수 있다. 곽씨는 "엊그제는 함양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손님들이 삼계탕 두 마리를 주는 것에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모른다"라며 풍부한 감성을 드러냈다. 시인의 감성은 나이와는 상관없는 모양이다.

펜션은 사위인 건축설계사 박기찬씨의 작품이다. 아내의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금오도의 어릴적 기억을 손님들에게도 편하게 추억을 쌓고 갈 수 있는 컨셉으로 집을 지어달라는 아내의 요청을 반영했다. 

장모님과 사위가 운영하는 별밤지기 펜션. 사위 박기찬씨와 처갓집 식구가 둘러 앉은 모습

박씨는 “이곳은 랜드 스케이프 디자인을 본뜬 ‘풍경디자인’이 컨셉이다”면서 “산지 텃밭에서 야채를 뜯어 먹으며 내 별장에 온 것처럼 편하게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염두했다“면서 ”섬에 놀러온 사람들이 삼삼오오로 가족단위로 놀러오니까 예산을 고려해서 민박보다 조금 더 나은 부담 없는 가격이다“라고 말했다.

바가지 요금에 인상찌푸리는 시대지만 금오도는 아직도 청정하다. 이곳 펜션은 평일 2인 기준 7만원이다. 4인기준 복층은 11만원, 8인기준 18만원이다. 다만 주말에는 2만원이 추가된다. 평균 1인당 2만 원꼴이나 추가요금과 바비큐 값은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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