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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학교가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장소라고 생각하는가?
대한민국 교육은 죽은 지 오래다.
  • 2018.08.19 05:52
  ⓒ  김자윤

아직도 공부한다는 것을 국어, 영어, 수학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오로지 ‘국영수사과’만 잘하면 된다고 믿는가?

심지어 예체능도 점수화해서 순위를 정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음악과 미술 그리고 체육을 머리로 암기해서 서열화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점수가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공부라는 개념 속에는 온통 머리만 있지 가슴이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학생들의 ‘국영수사과’의 지수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문제는 바로 다음이다. 인성 지수는 세계 35위(사회성)와 36위(협력성)라고 한다. 36개 국가 중에서 마지막이다.

우리교육은 인성과 개성의 중요성을 간과해 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에는 차가운 피가 흐르는 지성인들이 많다. 겉보기에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서 지금 국가에서 이끌고 있는 교육의 방향이 올바른지 생각해 보자. 

요즘 사법파동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른바 국영수 지수가 높아 SKY 대학에 입학하여 출세가도를 달렸던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다. 그 똑똑하다는 지성인들이 검사와 판사 그리고 법관이 되어 사람들의 삶을 심판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의 판단이 양심이나 법에 의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나 돈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전 양승태 대법관의 주변에서 하나 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  김자윤

도대체 그들이 배웠다는 그 공부 내용이 무엇일까? 그 따복 따복 암기하고 기억했던 지식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유용할까? 진정 배워야 할 인성은 통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무엇으로 국민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판단한다는 것일까?

군기무사령부가 시국을 대처하는 방식은 또한 어떠한가? 군에서 엘리트 집단이라고 자부하는 사관학교 출신들이 군대의 핵심 보직을 도맡고 있다. 그들 또한 국영수 지수가 높아서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들의 양심지수나 인성지수가 높은지 낮은지는 알 턱이 없다. 그렇지만 그들은 정치군인이 되어 국민의 안위보다는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려고 계획을 세웠다. 더 놀라운 사실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할 총칼로 국민의 붉은 가슴을 겨냥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그들이 먹고 입고 생활하는 모든 자본은 바로 국민이 낸 세금이다. 국민은 그들에게 나라와 국민을 지켜달라고 임무를 부여했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라고 명하지는 않았다.

공자는 2000년 전에 공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배우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면 효로서 부모를 섬기고, 밖에선 어른을 공손히 섬기며, 언행을 가다듬어 남에게 믿음과 신의가 있어야 한다. 차별을 하지 않고 여러 사람을 두루 사랑할 뿐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그리고도 남은 힘이 있거든 그 때 지식을 익혀야한다. (子曰 弟子 入則孝 出卽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 자왈 제자 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 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다시 말하면 인(仁)을 바탕으로 모든 학문과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무엇보다도 ‘인간됨이 우선이다’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정의하면 혹자들은 말한다. 현실에 맞지 않은 이론이며 그렇게 공부했다간은 굶어죽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 그렇지만 그들의 일상은 상식과 인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언행 또한 합당하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  김자윤

이젠 공부의 개념을 재 정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유치원이나 학교, 학원에서 배우는 단순한 지식쯤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공부라는 것은 그러한 좁은 개념이 아니다. 매 순간 순간에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이다. 특히 공부는 지식을 익히기에 앞서 인성을 두 가슴에 따뜻하게 담는 과정이다.

이쯤 되었을 때 인성이 지성에게 “출세도 좋지만 나를 넘어 너까지 배려하는 삶의 태도를, 돈도 좋지만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를, 이기는 것도 좋지만 타인을 안아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애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교육도 분명히 변해야 한다.

혹 그 동안 여타의 이유로 교육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과감하게 고쳐야한다. 이젠 학교가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혁신의 검을 꺼낼 때가 되었다. 다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사회악으로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학교가 참 공부를 안내하는 장소로 거듭 나야할 것이다.

김광호  k86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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