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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포 미군폭격 68년, 한맺힌 눈물의 추모식

[피난선 수중탐색 체험기] 이대로 묻힐 수 없는 집단 학살....조속한 진상규명과 평화공원 조성 촉구

  • 입력 2018.08.19 23:16
  • 수정 2018.08.21 15:57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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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사람을 아는데

아군인가 우군인가 그렇게도 몰랐을까(중략)

바람소리 자갈소리 울지마오

우리들의 억울한 울음소리

파도소리에 묻힐까 두려우네

섬마을에 일어난 최대 양민학살인 일명 ‘여수판 노근리 사건’이라 불리는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이 발생한지 68년에 울려 퍼진 추모시의 한구절이다.

하늘도 울었나? 추모시에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

자신이 직접 쓴 이야포 미군폭격 추모시를 낭송중인 안도출신 김성수 시인의 모습

참으로 슬픈 추모시었다. 안도 출신 지해 김성수 시인은 “추모시를 부탁받고 새벽에 급히 '이야포 미군폭격 추모시'를 썼다”라고 말했다. 이상한 일도 일어났다. 그가 추모시를 낭독할 때 조용하던 몽돌밭에 갑자기 알 수 없는 바람이 일어 행사용 천막이 들썩였다.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흐느낌이었을까?

시인이 읽어간 ‘이야포의 아픔’은 몽돌밭 해안가에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메아리쳤다. 이내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16세 때 참변을 당해 이제 90세가 다 되어버린 이춘혁 할아버지는 말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설움에 북받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굵디굵은 손바닥으로 닦더니 더 이상 얼굴을 들지 못했다. 주름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68년을 참고 살아왔던 그의 설움을 씻어내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으로 180여명이 희생당한 억울한 영혼들에게 제사상이 차려진 모습

근현대사의 아픔이 남아 있는 남해안의 마지막 섬 안도. 이곳은 전남 여수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68년 전 180여명이 죽어간 폭격의 상흔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않은 채 그대로 멈췄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이야포 몽돌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은 마치 언제 그랬냐는듯 잔잔하기만 했다. 멸치가 많이 잡혀 멸치막(멸막)이 즐비했던 이야포 자갈밭은 한때 멸치잡이의 전지기지였다. 일명 '들망배'라 불리는 멸치잡이 선단이 멸치를 잡아오면 즉석에서 멸치를 삶아 말리는 건조장 시스템을 갖췄다. 이곳에서 잡힌 멸치는 전국으로 팔려 나갔다. 지금도 전남과 경남소속의 수많은 멸치잡이 선단이 안도와 소리도 앞바다에서 멸치잡이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 주민에 따르면 “당시 들망배가 9틀이 있었는데 1틀당 5척의 배가 뒤따르니 45척의 멸치잡이 선단이 무리를 이뤘다“면서 ”조기잡이와 갈치잡이 선단이 있어 고기잡이가 가장 활발했던 어촌이 바로 이야포였다“라고 설명했다.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으로 피난선이 침몰한 수중탐사 현장에 다다른 모습

여수 안도에서 일어난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은 1950년 8월 3일 일어났다.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을 경계로 하는 부산 교두보의 방어선을 구축할 시기에 부산을 출발한 피난선 두 척이 욕지도를 거쳐 거문도로 가는 도중 한 척이 기관고장으로 안도 이야포에 정박했다. 400여명의 피난민이 탄 피난선을 향해 주한미군 전투기가 폭격한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이다(관련기사: 여수판 노근리 학살, 이야포 미군 폭격을 아시나요)

세월이 흐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덮어질까 싶었다. 하지만 피난민을 폭격한 반인륜적인 천인공노할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은 68년만에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당시 갑자기 4대의 미군전투기가 폭격을 가해 평화롭게 아침식사를 하던 피난선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바다로 뛰어내린 사람과 총에 맞아 물에 떠있는 사람들을 싣고와 자갈밭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미군공격으로 180여명이 사망했다. 또 누군가의 지시로 총살된 시신들은 이곳 바다에서 피난선과 함께 불태워 수장시켰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마을사람들의 배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멸치잡이 잼마선에 많은 사람들이 타서 배가 뒤집어져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자갈밭으로 옮겨진 일부 시신들은 빈지라 불리는 앞산에 파묻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시신을 파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연고 묘지가 되었다. 비바람에 휩쓸리고 초목이 짙어 이제는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변해버렸다.

미군에 침몰당한 피난선을 찾아 나선 수중탐색

수중에서 찍은 미군폭격 피난선 수중탐사 펼침막의 모습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68주년을 맞아 지난 14일 <여수넷통뉴스>와 <한국해양구조단여수구조대>가 합동으로 미군기에 격침된 피난선 잔해 및 피해자 유류품 수색을 위한 수중탐색에 나섰다. 또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에 대한 추모행사도 가졌다. 그동안 어떤 추모행사도 없었다는 마을주민 이사연씨의 말이다.

“68년 만에 처음 있는 추모식이라 마음이 애잔합니다. 그동안 동네에 찾아와 추모행사를 해달라는 사람도 없었고 동네에서 해주자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지요. 단지 이춘혁씨와 춘송 형제가 재판을 하고 미국 의회까지 찾아간 것 외에는 없었고 해마다 그분들이 부모가 떠났던 곳이라 옷 사다 던지고 술사다 과일 놓고 제를 지낸 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오늘 이렇게 추모식과 수중탐색 하는 걸 보니 감동입니다."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 생존자인 이춘혁씨와 주철희 박사에게 목격자인 마을주민 이사연씨에게 당시 피난선 침몰현장을 가르키고 있다

추모행사를 위해 이른 아침 여수에서 배를 띄웠다. 안도에 도착하기전 수중탐사를 알리는 퍼포먼스도 가졌다. 이야포에 도착해 당시 생존자인 이춘혁씨와 마을주민 이사연씨가 동행한 가운데 침몰지점에서 배를 세웠다. 수중탐사는 필자를 비롯 여수해양구조대 박근호 대장과 박정우 대원이 나섰다. 이들은 모두 15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다이버들이다. 피난선이 격침된 이곳은 예전부터 기가 사나운 곳이다. 갑자기 친구 얼굴도 떠올랐다. 비명횡사한 죽마고우를 이곳 고향 바다에 뿌려 잠든 곳이기 때문이다.

바다는 샛바람의 영향으로 파도가 약간 일렁였다. 어탐으로 바닷속 지형을 찍으니 수심 13미터의 완만한 지형이다. 수중탐색이 시작되었다. 내심 펄밭을 기대했지만 바닷속은 온통 모래밭이었다. 수중에 어구들이 널려 있었고 시야가 좋지 않았다. 모래밭에는 용치와 불가사리가 즐비했다. 펄에 파묻히면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수천년이 흘러도 신안바다에 침몰된 도자기를 실은 보물선이 잘 보존된 이유는 펄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펄밭이 아니어서 예상대로 68년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미군의 공격으로 피난선이 침몰한 바닷속에 다이버들이 투입되자 너울이 일고 있는 모습

수중 탐사에 나선 박근호 대장은 “수심 13미터 정도 바닥이 펄밭이 아닌 모래 위주여서 68년 전의 잔해가 남아있기 어려운 바다 밑 상황이었다"면서 "미군이 폭격한 이야포 피난선 사건’이 이 기회에 널리 알려지고 역사적으로 제대로 밝혀졌으면 좋겠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수중탐색이 끝나고 오병종 국장의 사회로 추모식이 열렸다. <여수넷통뉴스>가 최초로 주관한 이번 행사에 다양한 이들이 참석했다. 엄길수 이사장을 비롯해 여남고 학생과 교사, 여수해양구조대 박근호 대장과 대원들, 주철희 박사, 부산에서 온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 진상규명에 발벗고 나선 이야포 주민 이사연씨 그리고 손민호 이장과 김성수 시인을 비롯 마을주민들이 함께 했다. 특히 안도출신의 한 독지가는 억울한 망자를 위해 추모행사에 쓸 제사음식을 후원해줘 훈훈한 감동을 선사했다.

이야포 미군 폭격 사건 "조속한 진상규명과 평화공원 조성하라!"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 추모식을 기획한 여수넷통뉴스 엄길수 이사장이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엄길수 이사장은 “이 사건은 피난선을 미군 전투기가 폭격한 대표적인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으로 주한미군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면서 “이승만 정부는 무고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를 조장하며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을 왜곡했다. 이는 의도적인 축소은폐라고 밖에 볼 수 없고 우방인 미국의 책임론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쟁 피난민들은 한 맺힌 죽음을 당했다”면서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억울할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이야포 미군폭격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라며 "사회각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야포 미군폭격 생존자인 이춘혁씨가 사건 발발 68주년을 맞아 추모식후 절을 하고 있다

생존자 이춘혁씨는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면서 "서울에서 피난을 떠나 대전과 통영 그리고 거제도를 갔다가 정부의 지시로 피난선을 타고 이야포 앞바다까지 왔다. 미군 폭격기 4대가 폭격해 일곱식구중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명의 동생이 피살당했지만 그동안 명예회복에 따른 진상규명과 보상을 받으려고 나섰지만 안됐다"라며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으니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라며 무심한 정부를 원망했다.

자신의 가족사는 아니지만 추모식은 눈물바다였다. 김성수 시인의 이야포 폭격 추모시에 이어 여남고 3학년 김수연 학생의 추모사는 심금을 울렸다.

여남고 대표로 참석한 교사와 3학년 김수연 학생(좌측 첫번째)과 친구들이 미군폭격 사건에 희생당한 고인들을 애도하고 있다

추모사를 준비한 여남고 3학년 김수연 학생은 “이야포 폭격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하신 피해자분들과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면서 "하지만 68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실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우리의 아픈 역사인 6.25전쟁 속에 또 다른 가슴앓이를 하게 한 이야포 폭격사건이 있은 지도 68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진실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폭력의 가해자인 미국과 이를 묵인한 지난 정부,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관심 갖지 않았던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렇게 아픈 역사이지만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던 제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세상에 알려야합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200여분의 묘지 앞에서 그들의 넋을 기릴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여순사건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는 "노근리 사건은 미군의 학살로 인해 2002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자료로 발굴이 되었기 때문에 사과를 했다"면서 "우리 지역 남면 이야포와 횡간리 두륙여 그리고 여자만에서 미군폭격이 있었지만 진실규명이 안된 부분은 역사학자인 저부터 게을렀던 부분이 있었고 자료발굴이 쉽지 않았다. 우방인 미군에 의해 학살을 당했지만 그동안 말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향후 역사를 논할 시간이 갖겠다"라고 반성했다.

이야포 미군 폭격 사건의 핵심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이다. 증언에 따르면 미군의 오판으로 400여명이 탄 피난선에 기총사살로 180여명이 참사 당했고, 시신을 수장시켰다. 하지만 국가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법원에서 조차 공소시효가 넘었다고 기각시키는 작태를 보였다.

수중탐사를 마친 다이버들이 헌화하는 모습
여남고 학생들이 국화꽃을 바다로 던지며 추모하는 모습

수많은 피난민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공소시효를 따질 일이 아니다. 4대의 미군전폭기가 무엇 때문에 피난선에 총격을 가했는지?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밝혀야 한다. 이것이 지금시대가 요구하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아울러 너무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이야포 폭격 사건'과 '횡간도 두륙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마지막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국가는 억울한 원혼들을 달랠 수 있는 평화공원을 조성하라! 또 피해자 유족들에게 정당한 피해보상을 실시하라! 이것이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과 지역민들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다. 전쟁이 일어나면 섬과 육지에 안전지대가 따로 없다. 모두가 불행해진다. 그래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의 참혹함을 보고 배울 수 있는 산교육장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전남도와 여수시는 미군폭격에 희생당한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와 횡간도 섬마을의 아픈 역사를 더 이상 눈감지 말라.”

 

이야포 미군폭격 추모시                                       

                                        地海 김성수

바람따라 구름따라
거친파도의 물결따라 안전한 섬
안도로 떠밀려왔네

산천초목 푸르른 고향산천
그리운 내 고향집 영혼이라도
돌아가게 하여주오

하늘도 사람을 아는데
아군인가 우군인가 그렇게도
몰랐을까

억울한 영혼들은 안식처도 없이
지금도 망망대해를 떠다니고
있다네

참으로 억울하고 분하도다
오뉴월 땡볕에 뜨거운 바닷물속
몇 개 남지않는 뼈조각이라도 거두어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려주오

한반도의 평화는 무르익어 가는데
우리들 영혼은 중천을 맴돌고 있네
한 서린 이야포여!

바람소리 자갈소리 울지마오
우리들의 억울한 울음소리
파도소리에 묻힐까 두려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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