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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더듬어 총살당한 성진이 이샌

  • 입력 2018.08.27 18:50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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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6.25전후 조계산 남쪽 상이읍 마을에 살았던 이성진(42)씨가 억울하게 경찰관으로부터 총살을 당한 현장에 공범으로 함께 있었던 당시 김삼봉(16) 소년이 60년이 흐른 뒤 꺼낸 생생한 증언이다-

상이읍 사람들의 소개지와 입산자 가족 수용소였던 이읍마을 입구 천변

그때는 동네가 다 불타버리고 아무것도 없는데 저어 밖에 나가서 살아 버렸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일인데 그냥 뭣 났다고 꼭 여기서 살 것이라고……

좀 먹고 살만한 사람은 동네다 막을 치고 살고 그럴 때이니까 49년 여름이었을 것이여.

우리 동네(상이읍) 중간에 닭장터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누가 살았냐면 이한호 아니, 그 사람은 산에 들어가 버렸고 나하고 갑장인 그 동생이 거기(닭장터)서 늘 같이 놀았어. 그때는 어디 갈 곳도 없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반장이 와서 날 보고 이읍에 심부름 좀 다녀오라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내려가면 알게 될 것이다, 그래.

반장이 누구냐면 그 건너편에 사는 우리 사촌형님이여.

보니까 우리를 데리고 가려고 산에 들어간 개바구(홍광식)와 재구 둘이 내려와 있었어. 지게를 지고 가자 그래서 박삼주(18)하고 장흥사람인데 머슴을 살고 있는 이영기(20) 세 사람이 지게를 지고 따라 내려갔지.

내려가서 그때 막 지서가 있는 이읍 다리 밑으로 내려가 살던 봉환이 양샌 집으로 따라 들어가니 성진이 이샌(42)이 와 있더라고.

보니까 뜰방에 보리쌀 세 가마니가 포개져 있는데 봉환이 양샌이, 하나씩 짊어지고 가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한테는 광범이 즈그 아버지 보댕(동)이 이샌 집으로 갖다 주라 그러고 성진이 이샌은 장호 즈그 작은 아버지 이주 박샌 집으로 가고 또 한 사람은 종구 즈그 상하 채 판동이 이샌 집으로 져다 줘라 그래.

모두가 지고 나서는데 다른 두 사람은 외등 앞 아뭇골 쪽으로 이불하고 상을 짊어지고 올라가드라고. 그래서 나는 따끌 길(개울 쪽 옛길)로 짊어지고 올라가 내려 주고는 피잉 허니 집으로 가버렸지.

그러니까 그 사건이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은

 

북한군이 물러나고 아군들이 진주해 가지고 창고 쇠통을 끄르고 열어보니 창고에 있던 보리쌀이 없으니까 어디로 가버렸는지 차근차근 조사를 하니 면당위원장인 박장호가 봉환이 양샌 집으로 가져간 것이 나타난 것이여.

봉환이 양샌하고 박장호가 어떤 사이냐 하면, 봉환이 양샌 어머니 나주댁이 봉환이를 데리고 인주 박샌에게 계가를 하여 장호를 낳았으니 씨 다른 형제간인데 장호만 그쪽으로 물들어서 산으로 갔지만 말이여.

그러니까 봉환이 양샌을 불러다 조사하니 장호가 이만저만 누구누구한테 가져다 줘라 그래서 누구누구에게 져다줘라 그랬소, 그런단 말이여.

그러고나서, 아마 그때가 두 번째 소개를 내려가 살 때 정월 스무날이 넘었을 땐데 내가 해온 나무를 집에 부려 놓고 막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왔더니 느닷없이 입산을 하였다가 자수하여 당시 반장을 하고 있던 사촌형 학렬이 그 양반이 와서 걱정스런 얼굴로,

“이전에 보리쌀 져다 준 일로 너를 지서에서 부른다” 그러면서

“가서 물어보면 모개나무 거리에다 져다 줬다 그러고 누가 있더냐 그러거든 아무도 없는데다 져다 놨소. 그래야 될 것이다”

그럼서 내려가라 그러더라고.

그때는 소개를 하여 집이 없어서 한 집에 세 집 네 집이 살 때라 성진이 이샌과 우리는 한 집에서 이쪽 방 저쪽 방에 살았을 땐데 성진이 이샌이 그 말을 듣고 나이를 자셔 놔서 그런지 “언 발에 오줌 싸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리쌀을 한 숟가락이라도 먹었어, 어쨌어? 그냥 어디다 갔다 줬소 해버렸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지 모르는데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서로 가니 그때 보리쌀을 나른 사람들을 다 불러들였는데, 삼주는 없었고 먼저 잡혀온 봉화 양샌이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얼굴에 뻐얼건 물이 막 나오고 여기 저기 퍼렇게 멍들어 거의 초죽음이 되어.

그래 가지고 모두 방도 아닌 쪼그만 감방에가 갇혀 있는데 봉환이 양샌이 한쪽에 있는 오줌통에다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고 있더라고. 왜 그러고 있소, 하고 물으니까 오줌 진을 쐬면 부기가 얼른 빠진다고 계속 그러고 있더라고.

그날은 조사도 안 하고 저녁에 우리 넷이를 무조건 그대로 가둬버리드만.

자는 둥 마는 둥(잠이 올 것이여) 아침에 일어나 시간이 되니까 하나씩 불러서 나도 나갔지.

“니 보리쌀 어디다 져다 줬어?”

-모개나무거리에다 져다 줬어라.

“거기 누가 있더냐?”

-아무도 없었어라.

“달이 있었어, 없었어?”

-달이 훠~언 했어라.

“그런데 임 마! 아무도 없는데다 져다 놨단 말이야?”

아무 말을 안 하니까 몇 대를 때리고는 그냥 보내버려. 아마도 내가 제일 어리니까 그랬는지 몰라.

들어와 있으니까 차례차례 조사를 받고 그렇게 일차는 끝이 났어. 오후 두세 시나 되니까 또 다시 불러내더구먼.

“너희들 여기서 자진해서 말하지 않으면 죽는다.”

“사실대로 말해야지 거짓말 하면 모두 다 총살이다.“

하나씩 불러다가 조사를 받고 감방에서 이틀 밤을 잤어. 정월 그믐께.

아마도 갖다 준 사람을 말하면 그 사람들이 당할까봐 그런지 다 이름을 대지 않는 모양이여. 그렇게 감방에서 두 밤을 자고 조사를 하는데 갑자기 소장이 고개를 까딱하니까 차석이 우리를 줄줄이 몰고 나오면서 모두 총살을 해버린다고 그러더군.

그때 소장이 그 독한 사람, 정철모였는 것 같고 차석은 양서감인가 수감인가 키도 크고 코도 덜렁하니 고약하게 생긴 사람이었어.

정문 앞에 나오더니 보초를 서고 있는 소장과 차석 두 사람을 보고 “한 사람 따라와!” 그러니까 고향이 고흥인 순사가 따라나서 순사 둘이서 우리들 넷을 몰고 다리를 건너 횟돌바위 쪽으로 가는데 정말 겁이 나드만.

횟돌바구 못가서 용옥이네 집 위에서 도로가에 줄지어 세우더니

“너희들 여기서도 바른대로 말 안 하면 죽을 것이다” 그래.

그래도 속으로는 설마했지.

그런데 하필이면 성진이 이샌이 제일 앞(첫번째)에 섰어.

원래 성진이 이샌은 말을 똑똑 떨어지게 못하고 어물어물 좀 더듬어. 그런 사람을 총부리로 탁 치면서(개머리판으로 밀어치는 흉내를 내며)

“어디다 져다 줬어?“

그러니까, 누구한테 져다 줬다 그래 버렸으면 될 텐데 더군다나 놀래가지고 말이 안 나와 어물어물하니, 대번 가슴에다 대고 두 발을 쏴 버리네. 볼 것도 없이 두 발이나 쏴 버리더라니까.

그대로 떨어져 죽어버리고 말았지. 정말 눈 깜짝할 시간이었어. 얼마나 억울한 일이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나이 먹은 이샌을 본보기로 죽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

그러니까 다음사람은 “예 나는 뉘 집에다”, 다음에도 모두가, “뉘 집에다 져다 줬습니다” 하고 물어 보기도 전에 대답이 막 튀어나와 버려.

그러니까 우리는 다행히 안 죽이데.

한 사람이 죽어 있으니 모두가 혼이 나가 버렸지.

지서로 돌아와서 “돌아갓!” 그러는데 눈물이 나서 발이 떨어져야 말이지.

상이읍 사람들의 소개지와 입산자 가족 수용소였던 이읍마을 입구 천변

다음날 점심때가 조금 못돼서 지서에서 다시 불러 나갔더니 어저께 보리쌀을 져다줬다 그런 판동이 이샌, 보댕(동)이 이샌, 이주 박샌 세 사람을 불러들여놨어.

우리가 가니까 그 사람들을 감방으로 들여보내고 우리는 내보내 줘서 무사조치하고 나왔지. 그 사람들한테 우리가 다 불었다고 했던 모양이여.

집으로 오니까 아버지가 죽을 것을 살아 왔다고 “막둥이 하나 새로 낳다” 그래.

그 사람들은 귀댕(동)이 짐샌한테 부탁하여 지서주임한테 꿀단지를 줬던지 어쨌던지 금방 나와 버렸어. 그때는 후원회장인 귀댕이 짐샌이 나서면 다 살았거든.

생각해 보면 성진이 이샌이 참말로 불쌍해. 말만 더듬더듬 안 했으면 안 죽었을지도 모른데 말이야. 허기야 그때는 사람목숨이 짐승 목숨보다 못한 때 아니었다고… 끝

<이상은 2010년 3월 23일 11:30~14:00 상이읍노인당에서 김삼봉(76) 노인으로부터 녹취한 내용을 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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