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황씨 일가②
  • 2018.09.06 11:24

그러나 그런 행복도 잠시잠깐이었다.

자수를 한지 몇 달 되지도 않아 6.25가 터졌고 인민군들이 마을로 들어온 어느 날 갑자기 산수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6. 25가 난 직후에는 여순사건으로 입산한자들이 토벌대에 의해 기세가 꺾여 잠시 수그리고 있던 중에 인민군이 도착하자 관망하고 있던 좌익성향의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다시 기세를 올리며 일어나 상황을 바꾸어 버렸다.

그러니까 산수도 인민군들이 내려온 상황에 갑자기 마음이 변해 다시 입산을 하여버린 것이다. 

그처럼 갑자기 마음이 변한 것은 지난번에 1차로 강제입산을 하기 전부터 박장호, 김형수 등으로부터 인민해방에 대하여 들었던 이야기들과 입산하여 지리산까지 갔다오는 동안 머지않아 반드시 인민군들이 온다는 선전과 선동을 반신반의 하였으나, 정작 인민군들이 내려와 마을을 장악하고 박장호가 지금 같으면 면장에 해당하는 면당위원장이 되어 그를 따르던 청년들을 세포조직원으로 새로운 세상이 왔다고 휘젓고 다니자, 그동안에 믿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자책을 하며 남몰래 다시 그들 편으로 돌아서 또다시 조계산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또 빗나가고 말았다. 고작 두 달여 만에 인민군들이 후퇴를 해버리자 이번에는 정말 빨갱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되자 정말로 빨갱이의 아버지가 되고만 인기 황샌 부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인민군들이 점령했던 2개월여의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인지 주민들이 지서에 대한 공백의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을 때 지서가 다시 문을 열고 본격적인 토벌도 재개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인기 황샌은 당장 지서로 붙들려갔다.

지서에 들어서자마자 욕설과 발길질이 날아들었고 고문과 취조가 시작되었다.

 

“산수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지난번에는 누가 시켜서 거짓으로 자수를 하였느냐?”

“그동안 누구와 어떻게 연락을 하였느냐?”

 

등등 어느 것 하나 기가 막히지 않은 질문이 없었다. 몽둥이로 패는 것을 그저 손장난을 하듯 하였고 허벅지와 장단지 사이에다 장작을 끼워 꿇어 앉혀놓고 무릎 위로 올라서서 구둣발로 짓밟고 굴리는가 하면,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때마다 짐승에게도 할 수 없는 고문들을 쉴새 없이 혹독하게 가했다.

불려간 지 3일째 되던 날 오후 마을 사람이 축 늘어진 황샌을 업고 집으로 들어왔다. 이미 정신을 놓아버린 상태로 마루에다 내려놓는데 이미 바지에는 시커먼 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몸을 씻기려고 옷을 벗기니 온몸이 상처와 멍투성인데 다리에서 엉덩이까지는 멍이 아니라 바로 시퍼런 잉크를 부어 발라놓은 꼴이었다.

황샌댁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몸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선실이는 눈을 돌리지도 못한 채 겁에 질려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황샌의 정신이 돌아왔지만 운신은 말할 것도 없이 앓는 소리조차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고 누워있었다.

약풀뿌리를 찧어 바르며 십여 일을 누워있자 겨우 변소에나 갈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몸이 나아 갈수록 걱정이 머리를 짓눌렀다.

몸이 좋아졌다는 소식이 지서에 알려지면 보나마나 다시 불려가 고문 받을 것을 생각하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더 이상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보름쯤 되었을 때 황샌은 산수어머니를 불러 앉히고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이보게 암작에도 여그 더 있다가는 맞아 죽겄응께 차라리 산으로 들어가서 숨어서 살세.”

고민고민 하다가 비장하게 내린 결심이었다.

그렇게 하여 밤이 되자 부부는 열댓 살 된 딸 선실이를 데리고 둔배 뒷산 골짜기에 있는 숯가마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죽은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 한 차례의 앞뒤 가림도 없이 일가족입산이라는 기록으로만 남아 사상의 올가미에 묶여있는 것을 가엾은 영혼들은 모를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미리 챙겨두었던 이부자리와 양식 그리고 간단한 부엌살림을 이고 지고 미리 생각해 두었던 둔배 골짜기의 숯가마를 향했다.

황샌부부와 딸이 숨어 살던 숯가마

그곳은 마을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오히려 천자암에서 돌아 내려가기가 쉬워 인기 황샌이 암자에 있을 때 가보고 숨어 살기에 알맞다는 것을 알아 선택한 곳이었다.

세상이 무섭기만 한 선실이는 제 몸뚱이 보다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말없이 부모의 뒤를 따랐다.

인기 황샌이 그때까지도 몸이 온전치 않아 모녀가 더 많은 짐을 일수밖에 없었다.

그런 딸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린 딸까지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느 곳에다 마음을 두어야 좋을지 몰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을 향한 힐난이 멈추지를 않았다.

다음 날로 나무를 베어 하늘을 가리고 피신 은둔이 시작되었다.

산속의 가을밤은 싸늘하였으나 숯가마 안은 그런대로 포근하여 견딜 만은 하였지만 동물이 사는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인기황샌 가족이 모두 사라졌다는 소식은 즉시 지서에도 알려 졌다.

그래서 지서주임은 약이 올라 그놈들도 모두 빨갱이라 아들한테로 간 것이 분명하다면서 지난번에 잡아와서 취조를 하였을 때 차라리 죽였어야 했다며 당장 잡아들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마을사람들 대부분은 인기 황샌이 고문이 무서워 산으로 피신한 것과 딸을 데리고 그리 멀리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고 있었다.

겨울을 지내는 동안 황샌 댁이 가끔씩 내려와서 먹을 것을 구해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산에 숨어서 해를 넘기고 봄이 무르익어 날도 풀렸다. 이때는 지서주임도 바뀌고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무렵 조계산에 입산활동 중이던 한마을의 이재신 청년이 산에서 내려와 자수를 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인기 황샌이 둔배 어느 골짜기 숫굳막에서 살고 있더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같은 마을의 의용경찰과 청년 몇이 숯가마로 황샌을 찾아가서 자기들끼리만 온 이유를 설명하고 일단 마을로 내려가자고 권유를 했다. 이미 자포자기상태의 황샌과 황샌 댁은 지칠 대로 지쳐 거부할 기력조차도 없어 따라나섰다.

동네에 도착하자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어 지서주임이 전에 있다간 좋은 사람 오주임이 새로 왔다면서 자수를 하면 되니 너무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수가 되게 하자고 앞장서서 함께 지서로 내려갔다.

하지만 산수는 빨갱이로 알려져 있고 어찌되었거나 가족들도 자진입산 한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자수로 인정받기가 매우 불리한 상태였다.

그러나 사실과 다름없는 마을사람들의 변호와 무엇보다도 새로 온 오주임의 온유한 성품의 덕으로 자수를 인정받아 다시 마을에서 살아 갈수 있게 되었다.

이때 산수는 조계산의 반란군으로 토벌에 쫒기며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입산자들에게 지도자들이 북쪽에서 우리를 구하러 올 것이니 용감하게 투쟁하며 기다리자고 하였으나 이시기에는 점차 인민의 해방을 위해 최후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자는 말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산수 혼자서 몰래 마을로 내려와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작은아버지 황보경은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으로 자기 집과는 달리 할아버지로부터 동산 옆의 논과 마을 서쪽의 제법 큰 산도 물려받아 먹을 만큼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같이 있던 입산자들이 만약 보급투쟁을 하려면 여러 사람이 작전을 해야 되지만 그렇게 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되므로 산수를 작은아버지에게 보내면 양식을 얻어올 수 있을 것으로 믿고 혼자 내려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작은아버지가 출타하고 집에 없으므로 만나지를 못하고 그대로 누워 자면서 기다렸다.

아침에야 돌아온 작은아버지가 산에서 내려온 조카를 붙들고 자수하면 살수 있다고 간곡히 부탁 하였으나 산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고 빈손으로 집을 나섰다.

두 사람이 골목에서 당기거니 밀거니 하는 소리가 시끄러우므로 사람들이 넘어다보게 되었고 이것을 본 누군가가 아랫마을 지서로 뛰어 내려가 산수가 내려왔다고 알려주니 경찰들은 기관단총으로 무장을 하고 즉시 출동을 하였다.

그때 산수의 친구 삼봉이가 나무를 한 짐 해가지고 집에 와 바깥이 소란하여 담을 넘어다보니 산수가 자기 작은아버지와 손 씨름을 하며 올라가고 있기에 자기 자형이랑 함께 쫒아 올라가서 지금 자수하면 살려 준다고 산수의 손을 붙들었지만

“자수해가지고 산다는 보장이 어디 있다냐?” 하면서 손을 뿌리치고 올라가 버렸다.

친한 친구라고 진심으로 달려가서 권유하는 말도 안 믿고 양식도 구하지 못한 체 올라가는 산수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은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총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놀라 내려다보니 경찰들이 마을입구 동산위에 도착하여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달아나는 산수를 향해 쏘아 대는 소리였다.

산수가 달아나다 총에 맞은 서낭고개 길

사람을 보고 쏘는 건지 하늘을 향해 쏘는 건지 마구 갈겨대자 서낭고개를 향해 달아나던 산수가 갑자기 왼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참샘 뒤편 감낭골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찰들이 마을 양쪽으로 시커멓게 달려 붙었다.

처음에 가던 대로 서낭고개를 넘어 장안 아홉딩이로 돌아가 버렸으면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훤하게 보이는 마을 뒤로 돌아 붙이고 있으니 총을 피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아마도 밑에서 쏘는 총소리가 산에 막혀서 쾅쾅 울려가지고 서낭고개에서 나는 소리로 들려 갑자기 돌아서 버린 것으로 보였다.

총도 없이 빈 몸뚱이로 도망가는 사람을 기관총으로 쏘아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현재까지도 서있는 대밭위의 큰 소나무 근처를 벌벌 기어서 도망을 가고 있는데 그곳에다 대고 기관총을 마구 갈겨대니 소나무 가지가 총을 맞고 툭 툭툭 부러져 떨어지는 모습이 총알을 실감하게 하였다.

얼마나 쏘아 댔을까 산비탈로 달아나던 산수가 총에 맞았는지 갑자기 보이지를 않았다.

순경들이 올라가서 찾아보니 총에 맞아 쓰러진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얼마 가지를 못하고 재만이 까끔(산) 바위 밑에 옹글고 죽어 있었다.

경찰들이 산수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 잡아버려서 속 시원하다는 듯 전공을 자랑하며 모두 철수를 해버렸다.

그러나 시체는 누가 어찌해라 말도 못하던 때였으므로 어른들 몇 사람이 묘도 아니고 그 작 저작 파묻어 버리는 것으로 황샌의 가족 중에 제일 먼저 산수의 일생이 끝을 맺었다.

이렇게 산수 하나를 잡기 위하여 온 동네가 총소리로 뒤덮이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담장 뒤에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니 산수네 부모도 경찰들이 총을 쏘아대는 것이 빤히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집 뒤의 산등으로 올라가 반대편을 향해 주저앉아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러나 총소리가 빗발치듯 울리는 동안 가끔씩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으며 그때마다 상상하기조차 싫은 광경이 떠올라 눈을 질끈질끈 감아야 했다.

드디어 총소리가 멈추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황샌 댁이 그대로 쓰러졌다.

총소리가 그친 것은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소리의 막이 내려지는 순간이라는 충격에 머리가 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사람들이 황샌과 황샌 댁을 부축하고 집으로 내려오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아들이 난사 당하는 충격에 사로잡혀야 했던 부모들은 이미 세상을 등져버린 넋 나간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 후 며칠사이에 황샌 댁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으나 찾지를 못하다가 둔배 숯가마에서 이재신 총각에 의해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이것이 산수어머니가 해룡에서 상이읍 인기 황샌에게로 시집을 와 아들과 딸을 낳고 황샌 댁으로 25년간을 살다가 40대 중반의 아직 젊은 나이로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상전쟁에 휘말려 한 많은 인생을 숯가마에서 억울하게 마감한 황 씨 일가의 두 번째 죽음이었다.

이제 남은 가족은 인기 황샌과 딸 선실이 두 사람 뿐이었다.

산수와 황샌 댁이 죽고 나자 인기 황샌은 세상이 텅 비어버렸다.

토벌은 남의 일이 되어 총소리는 목탁소리로 들렸고 빨갱이는 허공으로 떠내려가는 구름이 되어 칼날 같이 살을 에던 빨갱이라는 소리도 물속에 뜬구름이 꼬리치는 소리로 들렸다.

삶의 의욕마저 잃어 버렸지만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으니 딸 하나를 위해서라도 살아야 했다.

조계산에서는 토벌이 힘을 내고 전선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인기 황샌은 제구실도 못하는 암자이지만 마음을 둘 곳이라고는 그곳밖에 없는 천자암을 오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였다.

어느 날 건너편 덕동마을 스물여섯 살 먹은 노총각의 부모로부터 중매가 들어왔다. 어른들 간에는 본래부터 아는 사이였고 사위가 될 총각을 인기 황샌도 잘 알고 있었다. 덕동은 원래 농토가 많은 유가의 전통이 깊은 마을이었다.

그래서 중매가 들어온 총각의 집도 형편이 먹고 살 만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혼사를 치르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버린 것이었다.

홀로 딸을 돌보는 인기 황샌으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열여덟 들꽃 같은 딸을 박씨 집안 노총각에게 허락하고 그 봄으로 식을 올려주었다.

그런데 시집 간 지 한 달 만에, 정확히 말하면 한 달에서 하루가 모자란 날 남편이 징집이 되어 군에 입대를 해버리고 말았다. 한 달 만에 생과부가 되어 시집살이를 해야 되었으니 앞이 캄캄하였다. 그보다도 그때는 전쟁에 나가면 모두가 죽는 줄로 알 때인지라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을 온 선실이는 잠시의 생과부가 아니라 평생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한 여자로 지아비를 만나 새 인생을 꿈꾸던 그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감히 표정으로 들어내지도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쟁에서 비롯된 자신에게 찾아올 인생의 또 다른 수난의 시작임을 까마득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박 총각의 집에서는 아들의 영장이 나올 것을 알고 서둘러 중매를 넣었다.

전시에 군에 가서 죽은 사람들을 하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군에 입대하기 전에 짝을 맺어 죽어도 몽달귀신은 만들지 말자고 총각의 어머니가 남편을 붙들고 늘어져 사정이 어려운 인기 황샌의 딸을 골라 서둘러 혼인을 시킨 것이었다. 딸은 그런 영문을 알 턱이 없지만 인기 황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딸이 감수해야 하는 운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여 선실이가 덕동 박 씨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어 한 달 만에 과부 아닌 생과부가 된 삶이 시작되었다.

박 씨 내외는 새 아이에 대한 측은함에 가끔씩 다독거리는 품을 보이기도 하지만 하루하루의 삶은 외로움과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그럴수록 말리는 것도 마다하고 집안일과 들일에 매달렸다. 그러면서도 선실이의 눈은 시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수시로 아버지가 있는 건너편 높다란 산기슭의 천자암에 매달리기 일쑤였다.

조계산의 토벌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선실이 동네 상이읍은 대부분 소개에서 돌아왔으나 늘 주시의 대상이고 천자암 역시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이므로 홀로 된 인기 황샌은 낮에는 천자암에 올라갔다가 저녁이 되면 마을로 내려와 자고 그런 생활을 이어 가고 있으니, 사돈이 인기 황샌에게 마을에 방을 마련해주며 비교적 안전한 덕동으로 내려올 것을 권해 이사를 하였다.

딸을 시집 보낸 연으로 마흔 중반을 넘어선 황샌이 사돈 동네로 이사를 하여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되었으나 그래도 대부분은 천자암을 오가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사돈네의 계획은 맞아 떨어지지가 않았다. 입대 전에 대를 이을 씨를 맺기 바랐던 고대는 어그러졌다. 조상의 음덕이 모자랐는지 5년이라는 전시 복무기간 동안 몇 차례 휴가를 나왔다 갔어도 며느리에게 손자가 들어서지 않았다. 세상일이라는 게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남편이 입대를 하여 훈련소를 마치자 포병으로 배치가 되어 광주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연락이 왔다. 시부모님이나 마을 사람들이 포병은 안전하다고 잘 빠졌다고들 하였으나 산심이는 무슨 말인지를 모르고 위로하는 말이겠거니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광주포병학교로 면회를 오라는 연락이 왔다.

정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지만 표를 낼 수는 없어 사람들의 얼굴을 피했다.

시동생 등과 함께 면회를 갔다. 그러나 그도 복이라고 전날 저녁에 긴급하게 전선으로 부대 배치가 되어 떠나버렸다고 면회를 할 수가 없어 기막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어떻든 그렇게 외로운 시집살이로 나날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5년이라는 세월은 흘러갔다.

당시에는 군생활이 만으로 5년을 근무하던 때였으므로 햇수로는 6년 만에 남편이 제대하여 돌아왔다. 그 기쁨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아마도 그때가 선실이에게는 생에 가장 희망에 부푼 날이었을 것이다. 이때부터 정작 부부생활을 시작하여 이듬해 첫 번째 딸을 낳고 이어 13년 동안에 줄줄이 6남매를 낳았다.

전장에서 남편이 무사히 살아오고 이렇게 자식들까지 얻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하고 부처님과 조상님의 보살핌 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호사다마라던가 선실이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불행이 닥쳐왔다.

막내의 돌을 얼마 남기지 않았을 때였다. 마흔 네 살 된 아직 젊은 남편이 갑자기 죽고 말았다.

선실이의 입장에서 보면 어린나이에 오빠 잃고 엄마 잃고 황 씨 집안을 출가하여 자기의 성을 새롭게 한 남자에게 맡겼으나 18년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13년 만에 주인 된 남편마저 떠나보내고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고 말았으니, 운명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가혹하여 어찌 보면 부모형제간이 죽은 것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그대로 생을 마감할 수만 있다면 백번이라도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고 머릿속은 온통 하얀 빛깔과 까만색깔이 교대로 가득할 뿐이었다.

그러니 순간순간 모진 생각들이 오락가락 했지만 나약한 것이 인간인지라 자식들을 보면 자신의 생각이 끔찍했음에 누가 볼세라 체머리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애비의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막내를 붙들고서 말라버린 눈물을 펑펑 쏟아내야만 했다.

이때는 사람의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목숨에 몸을 내어 맡긴 채 하루하루가 아닌 그저 시간 시간을 흘러 보내야만 하였다.

인간이 육신을 동물처럼 본능에 내맡기고 영혼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는 것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 같았다. 그러나 황 씨 일가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어디까지가 잔인한 운명의 끝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해를 넘기고 남편의 첫 기일인 소상 날이 돌아왔다.

이미 중년의 부인이 된 선실이는 자식은 물론 남편에 대한 서러움을 느낄 짬도 없이 제사준비에 열중해야만 했다. 그런데 유기 황샌에게 큰사위의 첫 제삿날이 생의 마지막 날이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딸 선실이가 남편제사 뒤처리로 바쁘던 오전에 친정 아저씨가 숨 가쁘게 달려와서 전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선실이는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새벽에 아버지가 천자암으로 가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부처님 조상님 어찌 이토록 가혹하실 수 있습니까? 세상을 원망해야 합니까? 아니면 내 신세를 한탄해야만 합니까?‘

점심때가 지날 무렵에 작은집 식구와 몇몇 사람을 따라 천자암 길의 등넘에 입구 개울가에 도착하니 그늘에다 뉘어 놓은 아버지의 시신이 보에 덮여 있었다.

뛰어들어 이불보를 젖히며 아버지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아무리 세상물정을 모르는 중 놀이로 살았어도 자식하나 지키지 못하고 각시 하나도 돌보지 못하다가 이 꼴이 무엇이냐,고 죽은 애비와 제 가슴을 함께 쥐어뜯었다.

오빠가 총에 맞아 죽었을 때 원망하던 이후 두 번째로 아버지를 향해 터트리는 분노의 원망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마저 지쳤을 때 사람들이 말려 떼어놓자 작은어머니가 이왕 가셨으니 빨리 장사나 지내 드리자고 위로를 하며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본래 같으면 스님이었으므로 화장을 하여야 하나 그럴 처지가 못 되어 황샌 댁이 묻혀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다 조촐하게 장사를 지내니 인기 황샌의 한 많은 60평생은 이렇게 마감되었다.

 

사위의 첫 제사에서 술이 거나하게 된 황샌은 첫닭이 울기 전에 눈을 좀 붙이려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며 자신의 한평생이 활동사진처럼 되살아났다. 운명이라고 여기고 털어버리려고 해도 그럴수록 더 또렷해지며 자신의 죄라면 제발 이 목숨을 거두어 차라리 불 연못에라도 넣을 것이지 가족들의 생명과 감내할 수 없는 시련을 쉬지 않고 안기는 것은 무슨 업보이냐고 불호를 외어보기도하고 조상을 불러 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핏줄에서 벗어난 딸에게도 이와 같은 수난이 계속되는 것은 스스로 지은 업보가 그림자를 통해 딸에게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살아 있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워 누웠다 앉기를 반복하였다.

창문이 부옇게 밝아오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옷을 챙겨 입고 아직도 술기운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로 방을 나섰다. 자신의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인 천자암으로 가기위함이었다. 휘적휘적 조포막 앞 개천 옆을 지날 때 구시둠벙 깊은 물에 어스름하게 비치는 자신의 그림자가 산수어미와 산수로 흔들리며 손짓을 하여 하마터면 발을 내디딜 뻔하였다.

상이읍을 지나 천자암으로 올라 갈 때는 날이 환하게 밝아왔다.

‘등넘어’ 입구 못미처 길을 가로질러 흐르는 제자리에서 보폭을 넓혀 건너뛰기에는 조금 버거운 개울 앞에 다다랐다. 그러나 늘 다니던 것처럼 물 가운데 내밀고 있는 돌 머리를 가볍게 밟고 보폭을 길게 늘여 건너편으로 껑충 내디뎠다.

미끄~덩.

그것으로서 그만이었다.

굳이 뛰어 넘을 필요도 없는 평생을 다녔던 길이건만 술기운 때문인지 잡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런 것인지 발을 헛디디고 만 것이다.

천자암의 쌍향수 뒤편 하늘에서 산수와 산수 어머니가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손을 내밀어 잡으려 하자 빨리 오라는 듯 애절한 눈길을 보내며 멀어져 갔다.

뒤를 이어 제발 함께 가자고 애원하며 뒤따르던 정철모가 인기 황샌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너 이 노~옴!”

정철모를 붙들어 잡으려고 했지만 역시 멀어지며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그래, 너도 불쌍한 중생인 것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늘이 하얗게 내려앉았다

인기 황샌도 그들의 뒤를 따라 훨훨 날아갔다. 끝.

2010. 7.

<이 글은 2008~2010 수차례에 걸쳐 상이읍 노인당을 찾아 김영환(86) 김삼봉(78) 노인과 황선실(76 가명) 본인으로부터 어렵게 청취한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김배선  netongs@daum.net

<저작권자 © 여수넷통,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배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