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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영혼에게 밥을 주자
내 맑은 영혼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 2018.09.05 10:54
ⓒ김자윤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권하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인 반응은 이렇다. 동안 ‘시나 소설을 읽지 않고도 잘만 살았다’라고 우쭐댄다. 맞는 말이다. 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이 황폐화되고 자아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종종 '문학은 밥이다', '문학은 빛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면 임은 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나 소설이 밥을 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만 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영혼에게 순결한 밥상을 기꺼이 차려줄 것이다. 또한 세파에 찌든 마음을 정갈하게 닦아줄 것이다.

잠깐 그들을 만나보자. 그들이 하는 말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정리하다보면 어느새 영혼도 맑아지고 마음도 하얗게 될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나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노래한다.

삶을 가볍게 보지 말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가슴이 있다는 의미일까. 알쏭달쏭하다. 순희랑 손꿉장난을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너랑 나랑은 아픔도 기쁨도 함께 하자는 소박한 대사도 아른거린다.

연탄재에게 ‘삶은 겸손과 이해 그리고 사랑으로 엮어나가는 씨줄과 날줄이 아닐까’라고 묻고 싶다.

ⓒ김자윤

정호승 시인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중략>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중략>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라고 '수선화에게'라는 시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우린 나날 말 못할 사연을 갖고 산다. 만남, 사랑, 이별, 명예, 출세, 정의 등 삶의 파편과 앞을 다투어 경주한다. 때론 그 경주에서 소외당해 온몸에 외로움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시인은 충격적인 말을 한다. 전지전능한 신(神)도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아! 외로우니까 사람이란다. 그러니까 참고 견디란다. 삶은 고통과 고독을 벗하는 숨결이란다.

신에게 “삶은 즐거움과 기쁨만으로 충만하지 않는다. 항상 고통과 고독까지도 동반한다. 그것을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묻고 싶다.

어디선가 포레스트 카트의 자전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책장을 펼친다. 주인공‘작은 나무’가 대화를 청한다.

주인공인 '작은 나무'는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탈콘 매를 보며 슬퍼한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한다.

"슬퍼하지 마라, 작은 나무야. 이게 자연의 이치라는 거다. 탈콘 매는 느린 놈을 잡아갔어. 그러면 느린 놈들이 닮은 느린 새끼들을 낳지 못하거든. 또 느린 놈 알이든 빠른 놈 알이든 가리지 않고, 메추라기 알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땅쥐들을 주로 잡아먹는 것도 탈콘 매들이란다. 말하자면 탈콘 매는 자연의 이치대로 사는 거야. 메추라기를 도와주면서 말이야."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을 생각하게 한다. 약육강식은 자연의 이치에 따라 먹고 먹히는 일상적인 현상이다. 그렇지만 승자독식은 다르다. 말 그대로 오직 승자만 다 먹는 것이다. 승자는 그 누구도 배려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인간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탈콘 매가 메추라기를 잡아먹는 것은 생존을 위한 행위일 뿐 독식을 위한 횡포는 아니다. 때론 탈콘 매가 메추라기의 천적인 땅쥐를 잡아먹기에 메추라기 또한 살아간다. 생존과 공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김자윤

계속해서 할아버지의 말을 경청해보자.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또 다시 자아를 대면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삶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탐욕이라는 마차에 탑승해서 하늘까지 올라가려고 한다.

문제는 왜 그 마차에 탑승했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존적 자아는 온데간데 없고 현실적 자아만이 탐욕의 늪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내 맑은 영혼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부터“문학을 가까이 하지 않아도 생활에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지 말자. 연탄재와 신(神), 탈콘 매, 꿀벌과의 만남을 통해서 상처받은 영혼을 약간이나마 치유했으리라 믿고 싶다.

이젠 우리 모두가 문학을 사랑할 시점이다. 문학을 사랑할 수 없으면 삶을 이해할 수 없고, 삶을 이해할 수 없다면 문학을 사랑할 수 없으니 우리 지친 영혼을 위해서라도 문학을 가까이해야 한다.

 

 

 

김광호  여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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