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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와 익수형제의 죽음①

접치재를 떠도는 광수와 익수 형제의 영혼

  • 입력 2018.09.22 13:30
  • 수정 2018.10.16 13:40
  • 기자명 김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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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의 비보

 

“광수어무니! 광수어무니! 큰일 나부렀소, 광수허고 익수가 죽어 부렀다요.”

상문이 조샌의 다급한 목소리가 문길 새터의 광수네 집 울타리를 마구 흔들었다.

“미친 사람 맹키로 뭔 뜬금없는 소리를 허고 있는 것이여어?”

광수어무니가 마당에서 뛰릿 헌 얼굴로 울 밖의 조샌을 넘어다 봤다.

어느 참에 샐밖에 도착한 조샌이 마당으로 들어 섬시로 말했다.

“고것이 아니라 진짜로 죽어부렀단 말이요. 어저께 지서주임이 행정저수지 공사판사람들을 빨갱이들 허고 내통했다고 접치재로 끌고 가서 몽땅 쏴 죽여 부렀단디 언능 가봐야 쓰것소” 

한광수 형제가 살았던 문길마을

사태를 짐작한 광수어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비틀거렸다.

여순사건이 나서 세상이 온통 시끄러워 사람들이 기를 못 피고 움츠리며 눈치를 살피던 1949년 늦은 봄 해가 서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창촌에 나갔던 문길의 상문이 조샌은 어제 지서주임이 행정저수지공사판인부들을 접치재로 싣고 가 몽땅 총살시켜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같은 동네의 광수와 익수형제도 잡혀갔다는 소리에 워~따, 이것이 대차 뭔 일이다냐. 를 되뇌며 허겁지겁 왔던 길을 되돌아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이내 장승이 서 있는 동네입구에 왔을 때는 등이 축축해오고 손등이 이마로 연신 오르내렸다. 부산스럽게 마을길로 들어서는 조샌을 보고 길가 밭고랑에서 지심을 매고 있던 여자들 중에 나이 지긋한 아래 똠 아짐이, 워~따 조샌은 금방 일보로 간다드만 숨도 안 쉬고 그렇게 되짚어 온 거 본께 혹시 소중한 것을 빠촤 불고 간 거 아닌게라?, 하고 농담처럼 물었다.

농담을 받을 여유가 없는 조샌이 히뜩 고개만 돌리면서 “어저께 광수하고 익수가 접치재서 총 맞아 죽어부렀다요.” 하고 알아듣지도 못할 대답을 건성으로 내던지고 지나가자 놀랍기도 하고 농담을 한 것이 무안하기도한 아주머니가, 고것이 먼 말이다요? 하고 다시 물어보지만 등 뒤로는 어떤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로 들어온 조샌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면서도 걸음걸이를 늦출 줄 모르고 벽에 부딪치기라도 할 듯 구부러진 길을 돌아 새 터 광수네 작은집인 장수네 집 앞을 그냥 지나치려다 말고 마침 헛간 앞에서 소매바가지로 두엄에 소매를 찍들고 있는 작은아버지를 보고는 걸음을 멈추고, 어저께 행정저수지 함바 사람들이 접치재로 끌려가 총에 맞아 죽어 부렀다요, 하고 소리를 쳤다.

그렇게만 말해도 알아들을 줄 안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를 못 알아들은 광수 작은아버지가 조샌을 향해 돌아서더니, 대체 고것이 뭔 소리단가? 하고 물었다.

“광수하고 익수를 접치재서 총살시켜부렀다 그런단께라.”

뜬금없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와락 밀려오는 심상찮은 느낌에, 아~ 그러덜 말고 알아듣게 얘기를 좀 해봐! 하고 장수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였다.

갑갑하다는 생각이 앞서면서도 상문이 조샌은 창촌서 들은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조 단 조단 일러주고 나서 광수네 집으로 가기 위해 서둘러 문을 나서는데, 이웃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이 휘둥그런 눈으로 넘어다보았지만 그대로 골목길을 빠져나와 단숨에 뒤편의 광수네 집 앞에 도착하여 비보를 전한 것이다.

환갑을 갓 넘긴 나이에 온몸이 깡마르고 오그라들어 한결 늙어 보이는 광수어머니가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무너지려는 발걸음을 겨우 잡아 세우며 비틀비틀 달아나듯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문고리를 걸고 나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 그 시간에 광수 처는 장동으로 넘어가는 언덕배기 밭에서 막 돌 지난 아들을 엉덩이에 매단 체 밭일을 하고 있었기에 험한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작년 가을까지 서울에서 장사를 하다 집으로 내려와 놀던 형제가 행정저수지의 공사판으로 돈벌이를 나간 것은 겨우 서너 달에 불과한데 느닷없이 빨갱이로 몰려 총살을 당했다니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곧 마을의 대소가와 이웃들이 허둥지둥 달려오더니 빨리 접치재로 가서 시신이라도 찾아오자고 재촉하며 웅성거렸으나 한번 방안으로 들어간 광수어머니가 요지부동 귀를 막고 입을 다물어버려 모두가 발을 구르며 한숨만 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두 눈을 부릅뜬 시체가 되어 헌 짚신켤레처럼 접치재 산비탈에 버려진 광수와 익수는 밤새도록 어머니를 부르다 지쳐 마지막 안간힘을 다하듯 기어드는 목소리로,

“엄니 엄니 얼른와서 우리 눈 잠 감계주시오. 눈 뜨고는 황천 가는 길이 안보여 오도가도 못 허고 둘이 손만 꽉 잡고 있은께 따땃한 엄니 손으로 눈을 잠 씰어 내래 주시오."

하고 마지막 애원을 부르짖고 있을 때였다.

 

반란군신고

 

행정마을이장이 바쁜 걸음으로 광천지서를 찾아온 것은 그저께 이른 아침이었다.

"주임님 기신가?" 

보초를 서고 있는 아랫마을 감성 청년에게 물어놓고는 대답도 무시하고 바리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서 사무실 문을 젖히고 들어갔다.

새벽교대를 하여 의자에 몸을 젖히고 책상 위에 워커 신은 발을 올린 채 졸음을 즐기던 차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허리를 세워 발끝에 눕혀둔 M1총을 당기며 귀찮다는 목소리로, 이 시간에 이장이 웬일이여. 동네 뭔 일이 생겼어? 하고 물었다.

“황 주임님은 안 나오셨는게라?”

“아직 숙소에서 자고 있으니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봐! 무슨 일인데 그래? ”

지서주임한테 직접 보고하려고 마음먹고 왔던 터라 아쉬웠지만 머뭇거리고 있을 수가 없어, 엊저녁에 그놈들이 우리 동네로 내려와서 곡식을 털어 가부렀단 말이요. 그래서 보고를 디릴라고 요렀게 달려 와부렀구만이라, 하고 은근히 칭찬을 기다리며 차석의 입을 바라보았다.

“잘했소, 사명감이 참 투철하구먼! 몇 놈이 와서 얼마나 털어갔는지 확인해봤어?”

목에 잔뜩 힘이 실린 권위로 몸에 밴 질문을 던졌다.

“다른 건 없고요, 곡식하고 건개(건건이) 반찬 그런 거 세 집이 털렸어라.”

보고를 받은 차석은 주임의 성질을 아는지라 지체를 할 일이 아니었다.

이때 광천(주암)지서주임은 별명을 황 몽둥이로 부르는 황영환이란 사람이었다.

빨갱이라면 그 자리에서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치를 떠는 무자비한 성격의 소유자로 좌익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무조건 혹독하게 다루고 거리낌없이 처단하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은 혹여 말꼬투리라도 잡힐까봐 전전긍긍하였고 주민들은 우연이라도 마주치거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피해 다닐 정도로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차석이 지서 안쪽에 있는 숙소로 뛰어가 주임에게 내용을 보고하니 그는 곧바로 사무실로 들어와 다짜고짜 목청부터 높여,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야 된다,고 소리치면서 이장을 향해, 털어간 집이 누집 누집이여? 빨갱이새끼들 집 아니야?, 하고 곡식을 털린 집이 입산자들의 집이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

 

그때는 6. 25 발생 전으로, 여순사건이 터진지 대여섯 달이 지난 때라 밤이면 입산자들이 비교적 손쉽게 마을로 숨어들어 가족이나 동료를 만나고 이를 안 사람들도 보복이 두려워 쉬쉬하였다. 경찰도 그런 것을 알고 있었다.

이장은 잔뜩 주눅이든 목소리로 누구누구네 집이라고 보고했다.

계속해서 몇 시경에 어떤 새끼들이 몇 놈이나 왔었느냐고 이것저것 물으면서 왜 이제야 신고를 하느냐고 윽박지르자, 더욱 겁을 먹은 이장은 알자마자 곧바로 달려왔다면서 허리를 연신 굽혀 조아리고 있을 때, 복다에도 반란군이 내려와 두 집을 털어 갔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그제 저녁에 공비들이 접치에서 전봇대를 잘라 버려 전봇대보초들을 작살을 내고 잔뜩 열을 받아 있는 터에 마을을 털어 갔다는 신고를 받으니 참고 견딜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히 내통자가 있을 것이니 얼른 차를 타고 가서 털린 놈들을 전부 잡아 오라고 차석에게 지시했다. 이장들이 아니라고 애원을 해보지만 자칫 더 하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물러서고 말았다.

여기서 전봇대보초란 산속의 공비들이 군경의 통신망을 차단해버리기 위하여 밤이면 외진 곳의 전봇대를 자르고 전선을 탈취해버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세운 보초를 말한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일반가정에서 전기를 사용하던 때가 아니므로 양 뼘 아름보다도 약간 큰 정도의 통나무를 세워 만든 전봇대는 주로 관공서에 공급하는 전기와 통신선로로 이용됐다. 그러므로 전선을 절단하려고 전봇대를 타고 오르는 것보다 톱으로 잘라 눕힌 다음 끊는 것이 손쉬웠고 많은 양의 전선을 끊어버릴 수가 있었다.

밤만 되면 산간 외진 곳의 취약지역을 통과하는 전봇대가 공격을 받아 어떤 취약지는 밤만 되면 잘리고 낮이 되면 복구를 하는 작업이 거의 매일 반복되는 곳도 있었다.

특히 그들이 작전을 앞두고는 반드시 전화선부터 먼저 잘랐으므로 전봇대를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방어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경찰들은 의용소방대나 향토방위대 등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마을과 떨어진 곳에 좌우로 인접한 전봇대끼리 조를 편성하여 밤마다 총도 없이 전봇대 밑을 지키다가 공비들이 나타나면 신호를 하여 지서나 인근에 대기 중인 치안대가 출동을 하도록 하였으며, 만약에 뚫리기라도 할 때는 해당 조는 물론 다른 보초들까지도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했던 일이 전봇대 보초일이다.

 

 

내통자

차석이 의경을 대리고 떠나고 나자 황주임은 자기가 직접 가지 않아 속이라도 끓는 듯 서성이더니 주임실로 들어가 벽에 걸어 둔 니본도를 내려 칼날을 비껴보면서 밖으로 들고 나와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몇 차게 휘두르고 나더니

“이놈들하고 내통한 것이 틀림없어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 것이여.”

하고 중얼거리며 이빨을 앙다물었다.

 

황주임이 말한 이놈들이란 접치고개 아래 행정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 축조중인 저수지공사장의 인부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한 시간 반쯤이 지날 무렵 차석이 반란군(당시의 호칭)들에게 털렸다는 집 남자들 다섯 명을 데리고 지서로 돌아왔다. 황주임은 그들을 보자마자 빨갱이들하고 내통한 놈들이 누구냐고 소리 지르며 이장들과 함께 취조실로 데리고 들어가 늘 세워져 있는 몽둥이를 질질 끌어 짚고 서서 “다 알고 있으니 거짓말 할 생각은 말아!” 하면서 몽둥이를 쿵쿵 짚어 살벌하게 대하자 모두가 설설 기며 한목소리로 “예 예” 만을 반복하였다.

 

사실 산에서 밤으로 보급투쟁을 내려올 때면 대부분 그 마을 출신이나 동네를 잘 아는 입산자가 인솔을 하지만 만약 알려지면 뒤에 자기 가족친척들이 당할 고문을 염려하여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앞으로 나서지 않고 입구까지만 안내를 하고 밖에서 기다렸으며 입산자가 가족이나 친척을 찾아와 식량 등을 구해 가는 경우에도 가족들은 감출 수밖에 없으니 이장도 알 수 없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접치재 전봇대절단공격에 이은 신고로 악이 받쳐 부리는 성질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자 평상시 수족처럼 부리는 이장들인지라 성질을 누그러뜨려 아는 놈은 없었느냐 어느 쪽으로 갔느냐 등 특히 입산자가 많은 복다 이장에게는 더 꼬치꼬치 캐물으면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저수지공사장의 인부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황주임은 주암으로 부임을 해오면서부터 행정저수지공사장인부들이 몹시 거슬렸다.

외지인들이라는 거부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이곳이라면 반드시 빨갱이가 숨어 들 수 있을 곳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밤만 되면 반란군들이 마음대로 활개를 치는 때에 저수지를 막는 곳이 조계산의 줄기가 내려앉았다가 다시 오성산으로 솟아오르는 주암과 쌍암을 넘나드는 접치재의 골짜기아래여서 맘만 먹으면 접근하는 것은 일도 아닌 곳이니 자기가 좌익이라면 그곳에다는 당연히 인부를 가장하여 침투시켜야 될 적임지로 훤히 보이는데 공사장에서 먹고 자며 부딪는 그들의 거친 행동은 늘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그러던 터에 밤이면 끊임없이 반란군들이 산간마을에 내려와 사고를 저지르니 눈이 뒤집혀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곳 행정저수지는 해방되기 이태 전 가을에 (1943년 9월 1) 수리조합에서 착공을 하여 반 이상이 진행된 상태에서 해방으로 잠시 중단이 되었다가 다시 공사가 이어져 날마다 적어도 60명 이상이 일을 하던 곳이다.

공사가 처음 시작되면서부터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그들은 주로 공사장 함바에서 숙식을 하며 생활을 하였으나 지방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하면서 시간이 흐르자 가족들을 데려오는 사람도 생기고 착실한 총각들 중에는 중매를 받아 처녀와 결혼하여 가까운 접치 등 주변마을에 살림을 차려 정착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반면에 이 지방 사람들이라도 집과 거리가 조금 멀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경우 함바 생활을 했다. 공사판의 함바란 분위기가 그렇듯이 언제나 시끌벅적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조계산줄기에 접해 있는 이곳이 황주임에게는 늘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판단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는 믿음에 반드시 걸려 들것이라는 확신으로 계속 주시하고 있었지만 어떤 꼬투리가 잡히기도 전에 폭발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침나절이 되어 행정과 복다 이장을 돌려보내고 오후가 되자 황주임은 분노가 치밀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정자나무가 있는 장소가 당시 광수와 익수가 잡혀간 저수지 둑 아래 함바자리이다

“이 새끼들을 그대로 가만둬서는 절대 안 돼!”

눈빛을 번뜩이며 직원들에게 비상을 걸어 차를 접치재 방향으로 몰았다.

잠시 후 행정저수지공사장에 도착한 황주임은 인부들을 모두 함바로 집결시켰다.

영문도 모르고 모인 인부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안절부절 하였다.

카빈총을 치켜들고 앞에 선 황주임이 큰소리로 지방인부는 우측 한산(외지)인부는 좌측으로 줄을 서라고 지시했다. 인부들이 어리둥절하고 긴장하여 우왕좌왕했다.

“이 새끼들 다 죽고 싶어! 빨리빨리 서지 못해!”

소리를 지르자 후다닥 정렬을 하였다. 양편으로 나누어 서라고 했을 때 우왕좌왕 한 것은 갑작스레 영문을 몰라 눈치를 본 때문도 있지만 이곳에 와서 살림을 차리고 정착한지 육칠년이 된 사람은 지방 사람이 다 되었으므로 어느 쪽에서야 될지 망설이기도 했고 느닷없는 상황에 영문을 몰라 과연 어느 쪽에 서는 것이 좋을지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황주임이 말하는 한산인부라는 의미는 외지에서 건너와 함바에서 숙식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방인부와 한산(외지)인부의 수는 거의 반반 이었다.

일단 지방인부 줄에 선 사람들은 신원을 확인하여 돌려보내고 한산인부 줄 사람들만 차에 싣고 지서로 내려갔다.

광천지서에 도착하자 사무실 앞에 줄을 세우고 총을 들이 대며 반란군과 내통한 놈들은 좋은 말로 할 때 자수 하라고 엄포를 놓으니 모두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리고는 신원확인을 시작했다. 신원확인을 경찰관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건너편에 있는 면사무소의 주암 토박이인 스물네 살 먹은 김종민 재무계장을 시켜 골라내라 내도록 하였다.

황주임은 처음부터 함바(식당)에서 기거하는 외지인부들을 처단의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그들 중에는 충청도같이 먼 곳에서 온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순천여수에서 온 사람도 있었고 면내 사람도 있었으므로 지역 사람들을 잘 아는 재무계장에게 신원확인을 맡겼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역사람의 여부를 막론하고 재무계장의 고갯짓 여하에 생사가 좌우되고 말았다.

 

선별을 마치고난 한산인부들은 취조실로 몰아넣고 밤늦도록 이놈들은 모두 빨갱이하고 내통한 놈들이라고 혹독한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내통한 사람이 없으니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황주임은 이미 그들을 처단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으므로 아침밥을 먹고 나와서는 이십여 명을 차에 실어 접치재로 끌고 갔다.

훗날 증언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때 김종민의 안면으로 살아난 사람이 십여 명은 된다는 말이 있었거든.

-동네마다 올라간 사람들이 여기사정을 더 잘 아는데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 뭣을 알아서 내통을 할 것이여.

-황 몽둥이가 그냥 보복을 해버린 것이지.

-그 사람들 참말로 억울하고 불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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