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가마에서 울리는 울밑에선 봉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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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가마에서 울리는 울밑에선 봉선화
  • 김배선
  • 승인 2018.09.2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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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어느 봄날이었다.

송광사 공마당 옆의 숯가마 앞에서는 주암의 복만이 아버지 유 씨와 춘곡스님이 두세 명의 젊은 스님과 몇몇 남자들에 둘러싸여 다투는 듯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말소리를 들어보니 숯을 반으로 나눠야 한다는 스님의 약간 고압적인 목소리와 그걸 왜 나눠야 하느냐는 유 씨의 지지 않으려는 대꾸가 반복되고 있는 중이었다.

한동안 입씨름을 계속하던 두 사람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잠시 수그러들자 구경하던 사람들도 시들해진 때문인지 하나 둘 몸을 돌려 먼산바라기를 하거나 고개를 숙여 발끝으로 땅을 헤집으며 곁눈질로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할 때였다.

어색하게 입을 다물고 있던 유 씨가 결심이라도 한 듯 연장을 들고 숯가마로 다가갔다.

반씩 나누겠다는 셈인지 아니면 얼마간 양보를 하겠다는 뜻인지 딱히 결론을 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말싸움만 계속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이제껏 다투던 춘곡스님도 말리려 들지 않자 다른 스님들도 굳이 나서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려면 제 놈이 모두 가져가지는 못하겠지, 하는 심산이 선 모양이었다.

그러자 눈치를 살피고 있던 유 씨가 데리고 온 젊은이도 삽과 괭이를 들고 주저앉은 숯가마의 지붕위로 올라가 유 씨와 함께 묻혀 있는 숯가마의 흙을 걷어내기 시작하였다.

이 숯가마는 송광사에서 가장 가까운 공마당 옆(현재 등산로가 선암사와 천자암으로 갈리는 농막 삼거리입구에 있던 것으로 6.25가 발발하기 직전까지 숯을 굽다가 조계산의 반란군들 때문에 굽던 참숯을 그대로 버려둔 채 숯굿쟁이들이 내려가 버려 꺼내지 않은 숯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지붕이 내려앉아 매몰된 상태였다.

송광사 공마당이었있던 농막 건물 뒤 숯가마 터

그런데 10년이 더 지난 뒤에 복만이 아버지가 누구에게 들었는지 가마 안에 참숯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알고 파내가려고 하자 춘곡스님이 나타나 그 숯의 본래 주인은 송광사이므로 반으로 나눠야 된다고 제지했던 것이다.

이윽고 덮여있던 흙이 점점 엷어지기 시작하자 새카맣게 잘 구워진 통 참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동안 작업을 하던 유 씨가 잠시 일손을 멈추고 허리를 폈다가 다시 잔 흙을 걷어 내려고 숯 더미 위를 바라보던 순간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가마 밖으로 뛰어내려오면서

“여기 사람이네 사람!”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스님들과 구경하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숯가마를 들여다보았다.

과연 자세히 살펴보니 숯 더미 위에 사람의 뼈와 두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잠깐 놀랐던 유 씨와 구경꾼 중 숫기 있는 젊은이가 합세하여 조심스럽게 인골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흙을 털어낸 유골들을 큰 뼈 위주로 차례차례 숯굿(숯가마) 앞에다 본래의 모습대로 대충 맞추어 놓았다.

십여 년을 참숯 위에 묻혀 있었던 때문인지 살은 이미 완전히 썩어 없어 졌으나 뼈는 노란 빛으로 조금도 상하지 않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상태였다.

유골을 살펴보던 유 씨가 “어이~ 이사람 여자네 여자!” 하자 모두가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그래 여자가 맞구먼 하고 유 씨의 말에 동조하며 놀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 하나가 사람들을 향해 어디가 여자요? 하고 자기는 알 수가 없다는 듯 질문을 하였다.

그러나 설명이 귀찮다는 듯, 이놈아 보면 여자지 그것도 몰라? 하고 고개를 숙인 채 말문을 막아버리는 어른이 있었다.

과연 어른의 뼈이지만 가늘고 짧으며 두골의 형태로 보아 여자가 분명했다.

“무슨 여자 뼈가 숯구뎅이 속에서 나온단 말이여.”

“누가 여그다 사람을 죽여서 묻어 분 것 아니여?”

“토벌 때 여자반란군을 잡아가지고 여기서 죽였단 말이 있었는디…”

모두가 한마디씩 분분하였다.

얼추 정리가 되는 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토록 숯을 반으로 나누자던 스님들은 어느 틈엔가 모두 사라져 버리고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어이 유샌, 이따 이 숯 모두 춘곡한테 져다주고 가세그려.”

입 걸은 사람이 한마디 하자 모두가 한바탕 웃어 넘겼다.

 

사실 송광사 인근마을에는 토벌 때 예쁜 처녀빨갱이 하나를 잡았는데 아무리 자수를 권해도 말을 듣지 않아 죽여서 숯굿막에다 묻어버렸다는 풍문이 있기는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도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어서 잊혀져버린 일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절 가까운 숯가마에서 여자의 뼈가 나오자 그날로 절과 외송 평촌 마을에는 소문이 퍼져 모이는 사람들 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되니 옛날에 잠시 떠돌다가 잠들었던 풍문을 마치 자기가 실제로 보기나 한 것처럼 부풀리는 사람들에 의해 살이 붙어 갖가지 과장된 이야기로 다시 살아나 마을을 술렁이게 하였다.

그러나 마을사람들 중에는 현장을 보았던 사람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때 들었던 사람도 빨갱이와 관련된 말을 잘못했다가는 죽거나 모진 시달림으로 폐망한다는 시대적 자위본능 때문에 아예 입을 열지 않아 묻혀버린 과거사가 되어 왔었다.

 

숯가마 사건이 난지도 몇 개월이 지나고 사람들 입에서 거의 잦아들 무렵에 송광사상가가 있는 외송마을의 박인규(17)군은 같은 마을의 마산이 고향인 최상도(31)씨와 송광사 뒷산으로 나무를 가고 있었다. 나무를 한 짐씩 해가지고 내려오는 길에 양지발 쉼바탕에서 지게를 받혀놓고 쉬는 참에 인규 군이 숯가마에서 보았던 여자 뼈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유샌이 판 숯굿막에서 나온 여자 뼈가 정말 노랗게 좋습디다. 그 여자가 처녀 발갱이였단디 혹시 최샌 그때 못 봤소?”

여자반란군을 잡아죽였다는 1952년도 당시에 20대이던 최상도씨가 절 일꾼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때 상황을 알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최상도씨는 묵묵부답으로 인규 군의 시선을 피했다.

눈치 빠른 인규 군은 아무래도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낌새가 느껴지자, 다 알고 묻는데 뭘 모른 척 하느냐는 듯 재차 물었다.

“그때 조계산에서 처녀빨갱이를 잡아다가 돌림빵(윤간)을 해불고 죽여서 숯굿막에다 묻어 부렀다고 다 소문이 나부렀는디 알고 있음서 뭘 그러시오?”

떠도는 소문을 되는대로 주워 맞춰 확실히 아는 양 몰아붙였다.

어이가 없다는 듯 힐끗 한차례 운구재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난 최상도 씨는, 돌림빵은 무신 돌림빵, 하고서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꼴이 되자 인규 군은 궁금증이 더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말하지 않으면 내려가지 않기로 작정을 한 사람처럼 은근한 미소를 띠며 바짝 다가앉으니 하는 수 없다는 듯 상도 씨가 무심한 표정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마도 6.25가 난 다음 다음해 가을이었을 것이다. 토벌대들이 삼밧등에서 운구재로 가다가 왼쪽으로 들어가는 봉대미골 앞에서 여자공비하나를 잡아가지고 끌고 내려 왔어.

송광사 채마밭과 봉대미골의 겨울

공마당(현재 농막)에서 취조를 한다고 그래서 절 사람들 몇이 가봤더니 신은 발이 다 나오고 옷은 말도 못하게 험해도 생긴 것은 참말로 이쁘게 생긴 처녀였는데 노래를 그렇게 잘 하더라이까.

토벌대들이 공마당에 모여서 대장이 앞에 의자에 앉아 뭘 물어봐쌌는데.

어디 사냐? 아부지가 누구냐? 물어봐도 입을 딱 다물고 말을 절대 안 해.

그러면 느그덜 잘하는 노래나 한자리 해보라고 시키니까 그때까지 딸싹도 안하던 것이 ‘울밑에선 봉선화’를 부르는데 그렇게 잘 부르더라고…

노래를 부르고 나면 박수를 치고 제창을 하면 또 부르고 하는데 참말로 눈물이 날것 같드고마. 그렇게 토벌대들이 노래를 시킴서 이쁘게 생겼고 노래도 잘한께 나하고 살자고 놀리고 그러는데 대장이 못하게 하고 자수하면 살려줄 꺼이니 마음 고쳐 묵으라고 아무리 달개고 그렇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을 하여도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던지 절대 굽히지를 안는 것이여…

그런디 토벌대에서 누군가가 “아무래도 자~가 이읍 사는 노 영감 손지 같기도 헌디 몰라보겄다.” 그럼서 아니냐? 그러니께 코웃음을 침서 인민해방 어쩌고 함시로 뭐라 그러는 거 갔든디 잊어부렀어. 막판에는 대원들이 폭력(고문)을 쓰고 그러길래 글안해도 나는 좀 떨어져서 보다가 뒤로 더 물러나 부렀제.

그런데 하다하다 해도 안 되니께네 대장이 턱짓을 하면서 “까부러라”(죽여라) 그러니까 그 앞에서 당장 죽여가지고 반란군들 때문에 숯도 안 꺼내고 버리고 간 개울 쪽에 있던 숯가마 속에다 집어넣고 지붕을 내려앉혀 버린 것이여.

나는 그런디 여자를 죽일 때 무서와서 내려와 부러 갖고 숯굿막 속에다 여분 것은 못 봤는디 그랬다고 허드라고.

그런디 뒤에 돌림빵을 했네. 이쁜께 대장이 델꼬 살라고 그랬네. 그런 것은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지어서 한 헛소리여…』

 

초겨울 햇살을 비껴 받으며 한 짐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딛을 때 숯가마에서 울려 퍼지던 울밑에선 봉선화의 슬픈 가락이 나뭇짐보다 더 무겁게 어께를 눌러 두 사람은 걸어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내… 끝.

2008. 1.

 

【이 이야기는 1952년 조계산(송광사)에서 있었던 실화로 2007년 외송마을의 박인규(62)씨로부터 당시 송광사에 일꾼으로 살며 현장을 실제로 보았던 최상도씨와 직접 나눴다는 이야기와 함께 마을 노인들의 증언을 청취하여 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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