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8 목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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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이장의 죽을 고비
  • 2018.09.24 22:14

“김 선생 내가 그때 죽을 고비를 꼭 두 번 당했네.”

한 해 사이에 눈에 띄게 기력이 쇄진해진 구십을 목전에 둔 선암사입구 괴목마을 최선용 노인의 반가움을 붙드는 목소리이다.

나뭇잎들의 빛깔이 녹색으로 치닫는 2010년 5월 4일 오전 아홉 시가 조금 지났을 때 선암사로 들어가는 시내버스가 쌍암(승주)시장 삼거리에서 선암사 길로 머리를 돌려 정류장에 섰을 때 맨 뒷자리에 앉은 나의 눈을 반가운 얼굴이 끌어당겼다.

선암사입구의 괴목마을 최선용 노인이 무언가가 담긴 비닐봉지를 든 왼손에 지팡이를 함께 맡긴 체 오른 손으로는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파이프 기둥을 붙잡아 당기며 조금은 힘겨운 모습으로 앞문계단을 올라서고 있었다.

호주머니를 뒤적여 꺼낸 지폐 한 장을 요금 통에 넣고 나서 한 계단을 마저 올라와 몸을 가누더니 둬 발짝을 안으로 옮겨 기사님 뒤편 둘째 의자의 등받이손잡이를 붙잡고 엉거주춤 허리를 펴더니 종점이 가깝고 관광객이 없어 대부분 빈 좌석들인 차내를 둘러보았다.

시선이 제일 뒷좌석에 도달했을 때, 나는 기다리던 반가움에 아는 체를 하려고 상체를 들썩였으나 흐릿하게 느껴지는 시선이 마주침을 거절하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차가 곧 출발을 하자 그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앞으로 걸어 나가 얼굴을 디밀고는 어떻게 나오셨냐고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놀라며 고춧대 묶을 나일론 끈을 사러 나왔다고 비닐봉지를 열어 보였다.

“요새는 왜 그렇게 통 안 들렸어?”

비닐봉지를 든 채로 내손을 붙잡고 야윈 손마디에 힘을 주어 보지만 어루만짐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안타까움의 답례로 손에 지그시 힘을 실으니 사람 그리운 정에 잠기려는 듯 흐린 눈을 연신 껌벅거렸다.

몇 마디의 정담을 나눌 사이도 없이 버스는 선암사종점에 도착을 해버렸다.

댁에까지 모셔다 드릴 양으로 지팡이를 짚고 걷는 허리춤을 부축하며 걸을 때 얼마 가지 않아 힘에 겨운지 선암사상가에서 마을길로 들어서기 전에 지나는 조계산여관 뒷마당의 평상에 지팡이를 세우므로 이심전심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터앉았다.

 

오늘의 이야기를 글로 적기 전에 먼저 최선용 노인에 대한 소개를 해야겠다.

1923년 조계산의 동쪽계곡 깊숙한 선암사의 입구 괴목마을에서 태어난 최 노인은 여순사건과 6.25전란으로 극도로 혼란했던 시기에 이십대의 나이로 마을이장을 4년간이나 도맡아 하여 경찰과 반란군이라고 불렀던 입산활동 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난관의 경험을 하였던 80이 넘은 노령에도 기억력이 남다른 분이었다.

내가 2000년대 초 처음으로 최 노인을 만나 당시의 상황들에 대하여 증언을 듣고자 찾았을 때는 눈치만을 살피며 입을 열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빨갱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쉽게 털어 놓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3~4년에 걸친 만남으로 신뢰가 쌓이자 질문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 들을 터놓고 들려주는 친구처럼 정이 깊어진 사이가 된 증언자이시다.

등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은 최 노인은 자네가 묻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 여태 해주지 않은, 내가 죽을 라다 살아난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네. 하더니 곰삭은 미소로 조용히 입을 열어 두 사람 사이에는 그윽한 행복나누기가 시작하였다.

그때 우리 동네 잠복조가 네 사람이었거든, 해거름이 되서 잠복을 하러 나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기순이 그 사람이 집 앞에 있다가 뭉그적 뭉그적 하면서

“나 오늘은 안 가고 잪소.”

그러기에, 대차 뭐 땜시 그런가, 하고 물으니

“꿈에 아버지가 보여서~어.”

그럼시로

“꿈에 아버지가 보이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긴단 말이요 그래~에” 라더군.

“그러면 할 수 없는 일이니 우리끼리 가야제.”

그러고 갈라 그런데 기순이가 무엇인가 수건에 싼 것을 줌서, 회관에 갖다 놓으시오 그러더라고.

요것이 뭣인가? 그러니까, 엠왕 부속인데 지리산에서 갖고 온 것인께 얻다 잘 놔두라고 그래서 받았어. 그래가꼬 저는 안 나가고 봉근이 서샌 집에서 잠복을 하고 나는 사람들이 있는 회관으로 가서 덕석을 깔아 논 방에 받은 것을 안 보이게 넣어 놓고 누워 있으니까 그놈(반란군)들이 막 들이닥쳐.

괴목마을과 장군봉

그날이 낮에 나락 매상을 한 날이었어. 그런데 윤섭이 아버지라고 그 양반은 늘 당코 쓰봉만 입고 댕기는 사람이여. 그러니까 옷만 보고는 당신이 이장이지? 그래.

아니요! 그럼서 고개를 저으니까 그러면 이장 어디 갔어? 그러고 물어.

어디 가고 없는지 모르겠소. 그러니까 즈그들이 틀려서 그런지 괴비에서 공작담배를 꺼내더니 반란군 담배 한 대 피워보라고 주드라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보고 있더니 밖에 있는 놈들이 뭔 소리를 하는 것 같아.

그러더니 모두 어디로 가불드라고.

 

그리고 한 30분이나 되었을 것이여. 그때는 좀 어둑어둑해졌는데 한덕룡이란 사람이 요것 잠복부대한테 보고해야 할 거 아닌가? 그래. 그러니까 옆 엣 사람이 나는 야경 차롄께 누구 한사람 가라 그러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날보고 자네가 가 그러더라고. 못 간단 말도 못하고 있는데 갈라면 얼른 옷을 벗고 나서! 그러 길래 옷을 벗고(눈에 띄지 않기 위해) 딱 문을 열고 나선께 느닷없이 밖에서

“들어 갓! 이 새끼 지금 어디로 간다고?”

인민군들이 봉창밖에 감시자를 세워서 다 듣고 있었던 것이여.

겁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서 있으니 나를 방으로 밀어 넣더니 개머리판으로 내 등을 확 내리쳐 순간 잠을 씌어(기절) 버렸어.

그러고 나서 옆에 사람도 쎼례(때려)분께 전부다 겁먹고 구석에 가 고개를 처박고 있으니까 차근차근 패려고 그런 모양인데 이민석이란 사람이 죽으려고 맘을 묵어 버렸는지 대담하게 벌떡 일어서더니

“동무들 그러면 안 돼요! 우리도 살고 당신들도 살아야 할 거 아니요. 보고를 안 하면 우리는 내일 맞아 죽어요. 보고를 하드라도 당신들이 이 자리를 피해 가분 뒤에 하면 당신들도 살고 우리도 살고 그럴 것인데 여기서 하나 둘 죽여뿐다 해도 당신들도 승리가 없고 여기도 승리가 없고 그럴 것인데 뭐 헐라고 그러요? 그러지 마시오!”

그런단 말이여. 참말로 어디서 나왔는지 용기가 대단하드구만. 그 말을 듣고는

하~아! 이 자석 봐라.” 

그러더니 맞는 말을 해서 그런지 안 때리고 쳐다만 보고 있다가 그래도 보고 하로 간 놈은 용서를 할 수가 없다. 그래.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었다 싶어 눈앞이 깜깜하고 사지가 딱 옹그라져 버리드만.

그놈들은 인민들이 지서에서 시키니 할 수 없이 반동 질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지마는 본보기로 한사람은 꼭 죽인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지.

그런데 총소리가 나면 안 된다면서 독(돌)으로 찍어 죽여야 된다고 밖으로 돌을 가지러 나갔어. 그런데 그때는 한겨울이라 날씨가 추워 갖고 돌이 땅에 땡땡 얼어붙어 있어.

그러니까 독을 띤다고 막 그러고 있는 모양이드만. 그래서 속으로 독만 띠면 내가 튄다. 독 맞아 죽으나 총 맞아 죽으나 차라리 총 맞아 죽는 것이 나을 것인께.

그렇게 속으로 잔뜩 바우고 있기는 했어도 맘대로는 안 됐을 것이여.

방에서 도망가기도 그렇고 급하면 총으로 쏴버릴 것이니까 말이여.

그러면 할 수 없이 죽어야지. 하고 있는데 그때 하늘이 나를 살려 줄라고 그랬는지 건너편 봉근이 서 샌집 있는데서 총소리가 한방 빵하고 나 버리는 거야.

웬일이냐 싶은데 총소리가 나 놓으니 그놈들이 우리들은 넵 둬 불고 다 그리 건너가 버리는 것이여. 워~메 살았다 싶은 것이 춤을 추고 싶더구먼.

거기서 누가 알았으니 신호를 올려버린 것이겠지.

그놈들이 봉근이 서샌 집으로 가가지고 문 앞을 지키는데 동네에도 그놈들이 있었는지 몰라. 그런데 지랄 났다고 안에서 꿈지럭거리고 있었을 것이여?

총소리가 나면 그냥 산으로 내 빼버릴지 알았던 모양이여.

그런데 그놈들도 거리가 있으니까 총소리가 나자마자 금방 지서에서 못 온다는 것을 알아. 그런께 거가가 잠복 대들이 있는 가보다 그러고 맛을 보여주고 갈라고 그랬는가 싶어.

그놈들이 요 동네 잠복부대가 너이(넷)라는 것도 알아.

동네 누 집 수저가 몇 갠지도 다 안다 그러거든. 그래갖고 그놈들이 밖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안에서 총을 들고 나오는데 앞에 한사람 나오는 것을 안 잡았어.

뒤에 놈이 달려들고 도망 갈까봐 옴 싹 잡아 불라고 그런 것이지. 그런데 앞에 나온 잠복대가 뭣이 좀 이상하니까 보고는 총을 한방 쏘고 또 쏠라 그러지마는 구구식(단발장전식)이라 얼른 못 쏘지. 그러니까 이놈들이 잠복부대들을 보고 총을 막 쏴 대분께 첨에 총소리가 날 때부터 자빠짐서 피했는데도 한 사람이 맞아 버렸어. 유평사람 나형근이라고.

그래도 깜깜해서 다 숨어 버렸는데 다행이 그 사람도 직통으로 안 맞아서 죽지안고 살았어. 그러고 나서 그놈들이 신고한 놈(공포 쏜 놈) 잡아 죽인다고 막 설쳤지마는 이미 숨어 버렸는데 누군지 알 수 있어야 말이지.

그렇게 뒤지고 댕기다가 봉근이 서샌 집 쌀 찧어 놓은 것 세가마니만 홀랑 털어갖고 가버렸구먼. 그날.

사람 죽고 사는 것이 하늘에 달렸단 것이 참말로 맞는 말이더라니까. 그때 안 그랬더라면 나는 볼 것도 없이 죽었지 어쨌을 것이여.

그놈들이 반동이라고 허면 본보기를 헐라고 반드시 한 놈을 죽이는데 말이여.

그러고 참 지서에서는 아침에서야 올라 왔지 뭐야. 밤에는 무서워서 못 올라오고 말이여. 허 허…

그리고 또 한 번 고비를 만났어.

그날은 우리 집에 야경(밤 보초)이 있었어. 몇이 모여서 이약 이약 하고 있는데 그놈들이 들어오더니

“야경 서시요? 우리 반란군이요”

그럼서 양식 좀 구하로 왔다고 보고 하지 말라고 그래. 그런데 누가 보고를 해버렸어. 뒤에 알고 보니 이만수여.

그래 갖고 지서에서 출동을 하는지 공포를 막 쏘는 소리가 나. 그때는 출동은 안 해도 보고를 받으면 그쪽을 향해 총부터 막 쏴대거든.

그러니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한 놈이 나를 죽여 버리려고 그러는 거여.

총을 머리에다 들이 댐시로 이놈 하나 죽여 버리고 가자고 곧바로 쏴버릴 것 같아. 다리에 힘이 쭈~욱 빠져 저절로 주저앉아 짐서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더구먼.

그냥 당겨 버리면 그만 아니라고. 그래도 정신을 차려 갖고 사정을 했지

“나 하나 죽여 갖고 뭐 할 것이요. 생각해 보시요 담에 또 와야 할 것인데 나를 죽여 원수가 지면 어찌 되겠소?”

그랬더니 뒤에 있는 놈이 그냥 갑시다. 동무, 하니까 그때야 총을 내리면서 “어디 한번 보자.” 그러고는 산으로 올라 가버렸는데 일어나서 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더란 마시.

그 사람들이 웬만하며 그렇게 안하지. 우리도 밤으로는 그 사람들을 적당히 달래야 살 수 있으니까 할 수없이 그냥 좋게 지낼 수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반란군이라 그럼서 양식 좀 구하려고 왔다고 그러면서 들어 왔는데 신고를 해버렸으니 악질 반동으로 봐버린 것이여.

그래도 성질이 좀 죽었으니 천만다행이지 대뜸 쏴버렸으면 그만 아니라고.

그런데 나중에 며칠 있다 해가진 뒤에 또 우리 집으로 와갖고는 사람들을 모이라 그러더니, 물론 알고 피해버린 사람들도 있었지.

나를 앞에다 세워 놓고 그때 누가 보고 했냐고 안 나오면 죽인다고 그러면서 또 누가 잠복을 섰냐고 조사하면 다 나온다고 그러는데 그래도 그때는 겁이 좀 덜 나더구먼.

그래서 그 사람들한테 나하고는 그때 같이 안 있었소? 그런데 내가 언제 신고를 했겠소? 그럼서 내가 인자 본보기로 처벌을 받아도 할 수 없지마는 지나가버린 일인데 찾아서 죽인다고 무슨 소용이 있겄소? 그러고 있는데 뒤에 섰던 이만수가 내가, 그러면서 우물쭈물하고 있드라고.

그러니까 너 이리와! 그래 갖고 앞에다 세워 놓고는 인민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 하는 우리를 신고한 이런 악질반동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고 그래.

그러자 나이든 사람들이 너도 나도 나섬시로 무릎을 꿇고는 저 사람이 스스로 자수를 했으니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두 손을 싹싹 비비니까 마음이 좀 풀렸는가 어쨌는가는 모르겠는데 그날 저녁에 그 야단이 났지마는 다행이 사람은 안 죽었어.

 

그날 타작해놓은 콩 열너 말인가를 지(만수)가 짊어지고 갖다 주로 갔는데 아침에 보니 살아왔길래 어떻게 안 죽고 왔느냐고 물어보니 콩을 지고 작은 굴맥이 밑에 어디를 간께 거기 내려 놔라, 그러기에 인자 죽이려는가보다, 그러고 있는데

“수고했으니 돌아가도 좋소. 이제부터 동무는 우리의 훌륭한 동지요.”

그러더라고 해서

“예끼 이 사람아 행이라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말소! 경찰들 귀에 들어가면 그 날이 죽는 날이여!”

그런께 얼른 입을 다물어 버리더라니까.

그 난리 통에 너나 할 것 없이 죽을 고비 안당하고 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마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다 죽을 고비였지.

나도 생각해 보면 죽을 고비가 많았던 것 같은데 김 선생을 보니 이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먼.

최 노인이 원체 애연가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차장에 내렸을 때 슈퍼에 들러 ‘순’ 담배 두 갑을 사서 넣어 온 것을 내 놓으니 뭐 이런 것을 하면서 받아 넣지 않고 평상에다 밀어 놓으신다.

“좋은 것은 안 사드리고 담배를 사드려서,..”

하니 아이처럼 천진하고 흐뭇한 웃음을 감추지 못하면서 내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이라고…

십여 년에 걸쳐 친구가 되어 꽁꽁 간직하고 계시던 수많은 경험들을 들려 주셨던 최선용 어르신께서는 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듬해 초파일날 새벽에 이 세상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조용히 머리를 숙였다. 끝.

 

2010. 5. 4.

 

 

김배선  ㄹ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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