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8 목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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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열 마지기 값 금시계 주워 돌려준 게 아버지 살려
  • 2018.09.28 13:44
뉴욕에서 23년간 살다 고향으로 돌아와 살고 있는 친구(오른쪽에서 두번째)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들른 지인의 집. 맨 가운데 계신 분이 지인의 부인(84세)으로 50년 전 금시계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다   ⓒ오문수

고향에서 만난 50년 전 추억담

추석을 맞아 고향 동네에 사는 친구 집을 찾아갔다. 농사 지으며 고향을 지키는 친구가 몇 명 있지만 이 친구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미국에서 23년간 사업하다 고향에 돌아와 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3개월 정도 결석했었다. 장기간 결석 이유를 알게 된 것은 2008년 박원순 시장(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일행과 함께 뉴욕의 지역재단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을 때였다. 필자와 40여년 만에 만난 친구가 결석했던 이유를 말해줬다.  

모두가 가난했던 당시 동네에는 장티푸스가 돌았고 병약했던 친구는 심하게 앓다가 죽었다. 친구 아버지는 그를 가마니에 돌돌 말아 앞산에 묻으려고 했지만 장손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의 할아버지가 "혹시 살아날지 모르니 3일만 기다려보자"고 했고 3일 후에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당시는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다. 고기 살 돈이 없던 그의 할아버지는 단백질 공급원인 쥐를 잡아 먹이고 정성껏 보살펴 그가 회복됐다.

가난해 야간 중고등학교와 야간 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뉴욕에서 조그만 건설회사를 운영하다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산다. 올봄 귀국한지 일주일 후 치매에 걸렸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것도 귀국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바삐 사느라 부모님께 불효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단다.

 

50년 전 길에서 주운 금시계를 주워 되돌려 준 지인...아버지를 살려주셨다 

친구 집으로 가는 길에는 지인이 살고 있었다. 지인의 대문간에서 집안을 살펴보니 지인과 며느리인 듯한 여성이 함께 음식물을 다듬고 있었다.

지인께 인사를 하며 소개를 해도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다. 허긴 고향 떠나 산 지가 50여년이 넘었으니 알 리가 없겠지. 돌아가신 어머니 얘기를 하고 50년전 금시계 사건을 말씀드리자 단박에 알아채고 손목을 덥석 잡으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지인과 우리 집안이 가까워진 것은 50년 전 가을추수가 한창일 무렵이다. 당시는 벼를 베면 논에서 말려 지게를 이용해 집으로 나르거나 리어카나 소가 끄는 수레에 볏단을 싣고 와 볏단을 높이 쌓아올렸다.  

높이 쌓아올린 볏단은 겨울이 오기전까지 일꾼들을 부르거나 이웃집 사람들과 함께 품앗이로 탈곡했다. 부잣집에는 탈곡기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홀태를 이용해 벼를 탈곡했다.  

거의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만 하던 시골은 바빴다. 특히 추수가 시작된 10월 농촌은 부엌에 있던 부지깽이도 뛴다고 했다. 10월 어느날 밤 섬진강가 기름진 '한들'에서 잘 익은 벼를 말린 식구들은 볏단을 싣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새벽부터 일했지만 일이 끝나지 않아 밤 8시 무렵에 리어카에 볏단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우리 논이 있는 '한들'에서 집으로 오려면 곡성읍내 주변을 흐르는 괴냇물이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있는 개울을 통과해야만 했다.  

집으로 오는 도중 만나는 가장 난코스 중 하나다. 그곳 개울에는 모래와 잔자갈이 깔려있어 바퀴가 모래속에 한번 빠지면 짐을 다시 풀었다가 물을 건너와 다시 실어야하는 난코스다. 상상이 안 되는 분들은 진흙탕에 빠진 자동차 바퀴를 연상하면 된다.  

심호흡을 크게 한 우리는 경사진 곳에서부터 가속을 해서 괴냇물을 건너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앞에서 끌고 중학생인 형과 내가 뒤에서 밀었다. 한번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거의 70도 경사로 몸을 숙여 있는 힘껏 리어카를 밀었다.  

간신히 개울물은 건넜다. 나는 신발 속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내고 물가에서 발을 씻으며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 괴냇물속에 금붕어가 있어요"

"민물속에 금붕어가 있다니 말도 안 된다"

"에이! 확실히 봤다니까요. 땅바닥만 보고 뒤에서 미는데 물속에서 반짝반짝거리는 게 있었다니까요"  

"정 그렇다면 한번 가봐라"라는 말에 발목까지 빠지는 물속에서 건진 건 선생님손목이나 책에서만 보았던 시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횃불을 든 두명의 사람들이 "혹시 금시계 못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동네에서 가장 잘사는 부잣집 머슴들이었다.

50년전, 금시계를 주워 시계주인인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지름 10여미터 높이10여미터의 볏단을 쌓아둔 볏단을 허물던 정원에는 예쁜 정원수가 심어져 있었다 ⓒ오문수

밤이 늦어 집에 가기 바쁜 우리는 집에 돌아와 밥을 먹으며 시계를 꺼내봤다. 반짝반짝 빛나는 시계다. 그제서야 우리는 그 시계가 그들이 찾는 금시계라는 걸 알았다. 금시계 주인에게 되돌려주기로 결정한 아버지와 내가 금시계를 들고 부잣집을 찾아가니 지름 10여미터에 높이 10여미터쯤 되는 볏단을 허물어 헤치고 모든 식솔들이 금시계를 찾고 있었다. 그 볏단을 다 풀면 수천개는 됨직했다. 부잣집인 지인 집에는 많을 때는 머슴이 일곱 명이나 됐다고 한다.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던 지인은 "금시계가 논 10마지기 값"이라고 말해줬다. 우리 전 재산이 논 다섯 마지기였으니 얼마나 비싼 시계인가를 알 수 있었다.

다음날 호롱불만 켜던 우리 집에는 전기가 가설되고 라디오도 없던 집에 스피커가 연결됐다. 그 부잣집 지인이 돈을 대 설치해준 것이다.

지인은 그 후 설날과 추석이면 항상 돼지고기 몇 근을 보내주셨다. 좋은 일하면 복을 받는다던가. 그 일이 있고난 지 2년쯤 지난 여름날이다.  

원두막에서 밤을 지샌 아버지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는 전갈이 왔다. 형과 나는 리어카를 끌고 원두막으로 달려가 아버지를 싣고 집으로 오던 중 그 지인의 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모시한복을 입고 대문 앞에 계시던 그분이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집에 돌아와 불을 땐 아랫목에 아버지를 뉘이고 따뜻한 물을 드시게 한 후 차도만 지켜보고 있었다.  

동네에 병원도 없었고 가족들 모두 병원문턱 한번 넘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호전될 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끙끙 앓고 계셨다. 그때였다. 밖에 인기척이 있어 방문을 열자 동네 의사역할을 하는 산파 아주머니가 오셔서 주사를 놓아주시며 약을 주셨다.

지인의 집에서는 100년도 더 된 우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우물 정( 井)'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우물이다 ⓒ오문수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어요. 급체라 손을 빨리 안 쓰면 죽을 수도 있었어요" 

해마다 명절이면 돼지고기를 보내주시던 그 지인은 병에 걸려 30여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지인의 부인께서 자세한 전말을 기억하시고 계셨다.  

지금이야 돼지고기가 흔해빠졌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엔 돼지고기도 명절에나 맛보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때 먹었던 맛있는 돼지고기와 이웃 간의 훈훈한 정이 그립다.

 

 

 

오문수  oms114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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