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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전 여순항쟁 당시 계엄령은 ‘위헌’이다

여수MBC 여순70주년 특집 '가려진 시간, 고여있는 눈물' 방송에서 제기

  • 입력 2018.10.06 17:48
  • 수정 2018.10.06 21:05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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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MBC, 여순70주기 특집 과감한 편성 주목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특집 5부작 10월 한달 편성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수립 후 국가권력에 의한 첫 번째 국가폭력이었다"

당시 계엄법 제정 전인데, 여.순지역에 군 계엄령 내려 진압

계엄령 선포 후, 3일 지나서야 계엄선포 국무회의 추후승인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심각한 위헌이었다”

다음 주는 2부 ‘추석 없는 마을’편, 당시 살상피해 실태 보고

방송 시간은 월요일 ~ 목요일 저녁 7시 5분부터 10분간 방영 ~ 11월 1일까지.

여순사건 주제의 10분 분량 다큐멘터리 연속 재방영이라는 파격편성이 지역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여수MBC는 여순사건 70주년 특별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연출 이동신PD. 아래 ‘가려진 시간’) 제1부 <그해 10월,버림받은 국민들>편이 지난 한 주 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반복 재방영해 ‘파격편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0월 한 달 동안 5부작 연작씨리즈 다큐멘터리를 매주 한편씩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연속재방영한다. (관련기사 : 여수MBC ‘여순70주년 특집’ 5부작 10월 1일부터 방영 )

지난 1일부터 방영된 ‘가려진 시간’ 제1부 <그해 10월,버림받은 국민들>편에서는 여순사건의 실상과 불법계엄의 문제점을 상세히 전했다. 

아래 클릭하면 제1부 <그해 10월,버림받은 국민들> 유튜브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인터뷰에 나선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여순사건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가 설립된 후에 (정부가) 첫 번째로 행사한 대규모 폭력이었다”고 규정했다.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인터뷰  여수MBC 캡쳐

또한 <그해 10월, 버림받은 국민들> 방송에서 여순사건은 혼란기인 1948년 혼돈의 대한민국은 남한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제주4.3항쟁에서 촉발했다고 규정했다.

이승만 정부는 ‘제주4.3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 여수주둔 제14연대 병력중 일부(2천여 병사)가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한다’며 제주도 파병 명령을 거부했고, 3일만에 전남 동부 전역으로 확산되자 정부는 22일 계엄령을 선포했다.

동국대 법학과 김상겸 교수. 여수MBC 방송 캡쳐

방송에서 당시의 계엄령은 위헌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국대 법학과 김상겸 교수는 “계엄법이 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아니라) 지역을 담당하는 군 책임자가 계엄을 선포하고 나중에 국무회의의 승인을 받은 것은 법적인 하자가 있다”고 말하고, “계엄으로 인해 발생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문제는 심각한 위헌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사령관이 여수.순천에 계엄을 선포한 날자는 1948년 10월 22일이다. 이승만 정부는 정작 10월 25일에 국무회의에서 계엄령을 추후 승인했다. 계엄권자는 대통령인데 지역사령관이 선포를 한 것에 대해서 이견이 분분하자 3일 지나서 추후 승인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남동부지역을 비롯한 지리산남부권 전역에서 국민들이 호응한 것은 해방은 됐으나 더 나아지지 않은 민중들의 고달픈 삶 탓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김득중 편사연구관은 인터뷰를 통해, 많은 지역민들이 호응한 이에 대해 “해방된 이후에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들, 토지개혁 문제나 친일파 척결의 문제가 3년이 지난 1948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런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고 주장했다.

한홍구 교수는 제대로 권력을 형성하지 못한 초창기 이승만 정권이 국민을 위압적인 자세로 제압함으로써 국가의 권위를 세우려 하는 데서 진압과정에 많은 희생이 많은 희생이 따랐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국가저항에 '본때'를 보여준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이 생긴 정치공동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동조한다면 앞으로의 통치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 ‘초전박살, 일벌백계로 다스리자’ , ‘우리에게 저항하면 어떻게 된다, 국가에 저항하면 어떻게 된다’를 보여준 겁니다”

실제 민간인 희생자 95%가 진압군에 의해서 죽었다.

 인터뷰 증인 김득중 연구관.  여수MBC 방송 캡쳐

국사편찬위원회 김득중 편사연구관의 설명이다.

"민간인 희생자의 95%가 진압군에 의해서 죽었고 14연대 군인과 좌익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5%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순사건이 뭐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14연대 군인들과 좌익이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한 사건이라고 (사실과 다르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진압 작전 당시에 선전했던 논리가 7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 주는 2부 ‘추석 없는 마을’ (8일 ~11일 방영)편이 방영된다.  당시 3세부터 60대까지 하루아침에 살상을 당한 피해실태가 소개된다.  역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7시 5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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