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유럽 '대항해 시대'로 세계사 역전, 동양은 꽁꽁 문 닫아

'바다로 보는 세계사' 강의, 강봉룡 원장 "세계 중심축 아세아로 이동"

  • 입력 2018.10.13 10:24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1일 오전 10시, 해양경찰교육원에서 교육생들에게 강의하는 강봉룡 교수 ⓒ오문수

11일 오전 10시, 여수시 해양경찰로 소재 해양경찰교육원 강의실에서는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원 강봉룡 원장의 '바다로 보는 세계사' 강의가 있었다. 두 시간 동안 계속된 강의에는 300여명의 교육생이 참석했다.

바다 관련 산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국민의 해양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바다의 날'을 제정한 시기는 1996년이다. 이에 더해 세부사항을 구체화한 것이 '섬의 날'이다.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이 중심이 되어 2018년 8월 8일을 '섬의 날'로 제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섬의 날' 제정의 중심에 섰던 강봉룡 원장의 강의내용이다.

항해술이 발달되지 못했던 고대인들에게 바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대양의 끝에는 천 길 낭떠러지가 있거나 괴물이 살고 있다고 추측했다. 따라서 고대인들의 활동범위는 육지 가시권이었다.

하지만 해양은 호기심과 상상력의 대상이었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양인식이 변화됐다. 즉 해(海)에서 양(洋)으로. 부연설명하자면 해(海)는 '작은 바다(sea)'를, 양(洋)은 '큰 바다(ocean)'를 의미한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해양과 대륙이 연결된 지중해 단위로 독특한 문명이 형성됐다. 유럽에서는 그리스반도와 이탈리아반도, 동양에서는 중국 서해안과 한반도 일본에 이르는 문명이 형성됐다. 7세기 서아시아에서 이슬람문화권이 형성되면서 유럽은 이슬람세력과 자주 충돌했다.

1492년 이슬람의 마지막 거점인 그라나다를 점령한 유럽은 새로운 항로개척에 나섰다. 포르투갈의 인도양항로, 에스파냐의 대서양항로 개척은 유럽을 대항해 시대로 이끌었다. 권력자의 강력한 지원으로 의미 있는 발견이 계속됐다. 바스코 다가마의 희망봉 발견, 컬럼버스의 서인도제도 발견, 아메리코 베스푸치의 대서양횡단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유럽은 대항해시대가 열렸지만 동양은 오히려 문을 꽁꽁 닫았다. 14세기 후반 명 태조 주원장이 명령한 '해금정책' 때문이다. 통상과 신문명에 눈을 뗀 유럽이 대양으로 나갔지만 해금정책으로 문을 닫은 동양문명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16세기 이후 명(청)과 일본은 해금정책을 부분적으로 해소했지만 조선은 해금정책을 더욱 강화해 역사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해양경찰교육원생들에게 강의를 마치고 기념촬영한 목포대학교 강봉룡 교수(중앙). 좌측은 교육지원과장 양동신 총경. 우측은 인재개발과장 서영교 총경 ⓒ오문수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영국은 18세기 산업혁명으로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됐다. 20세기 들어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절대강자가 된 미국에 의해 세계의 중심부는 태평양으로 이동했다.

'세계체제론과 대양'이라는 말로 결론을 말한 강봉룡 원장의 얘기다.

"세계의 중심축이 아세아(중국, 인도) →18세기 유럽 →20세기 미국 순으로 이동했지만 21세기에는 아세아로 이동한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으로 두고 볼 일입니다. 해양경찰교육생 여러분들은 바다가 문명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우리 바다를 지켜주십시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