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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그 이후... 거듭 '여순항쟁'인 이유

'여순항쟁'은 "반민족 이승만 정부와 친일부활세력에 대한 민족항쟁"

  • 입력 2018.11.23 17:06
  • 수정 2018.11.24 08:17
  • 기자명 양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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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여순사건 희생자를 추모하는 합동추념식장 이순신광장에서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분향하고 있다.

1948년 10월 20일 여수 인민대회가 열린 중앙동에서, 그 자리에서 올해 10월 19일 여순항쟁 70주년 합동추념식이 있었습니다. 

도지사가 참석하여 국가를 대신해서 학살된 분들 넋을 위로하고 유족에게 사과했습니다. 추념식에서 유족대표가 지금까지 세월동안 비통한 세월을 보내왔음을 토로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빨갱이 자식으로 낙인찍어 시민으로서 기본 권리조차 박탈 당 한 채 통한의 세월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어떤 유족은 이제 조금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 당시 여수MBC 뉴스 바로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9Tcd_fv-P_A

비로소 등대불이 켜진 것 같았습니다. 이제야 역사 바로 세우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되어 뜻 깊게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주항쟁과 여수항쟁이 제대로 평가받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단지 지역과 유족의 명예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왜곡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 험한 것 같습니다. 화합을 강조한 합동추념식에 ‘반란’이라는 주장이 튀어나와 잠시 소란이 있었나 봅니다. 예상할 수 있는 소란이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각자 서 있는 자리와 입장에 따라 반란이라고 주장 할 수 있습니다.

반란, 이승만 반민족 정부와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반란이라고 규정해 놓고 강요해 왔습니다. 민족을 분열하여 남한만이라도 정권을 잡아 다지기 위해서는 여순민족항쟁을 반란이라고 규정해야 했겠지요. 그래서 자신의 정권을 위해 동포를 학살한 군경에게 기념메달까지 주었겠지요.

                   <전남반란참전 기념메달>

 

이런 메달을 받은 사람들은 동포를 학살했다는 죄책감보다 나라를 반란무리로부터 지켰다는 자긍심이 생겼을 것입니다. 

반민족 분열주의에 의해 엄청난 동포 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망각되는 것이지요. 이러면서 하나의 역사에 두 개의 역사관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여순 민족항쟁은 공산주의 폭동으로 동일시되고, 친일친미 반민족 분열주의자들의 학살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로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전도된 의식을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부르스 커밍스Bruce Cumings ‘시차관점’이라고 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덮어쓰기’가 될 것입니다. 그 시차에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이 있고 이후 북한의 무력민족통일 정책과 냉전이라는 긴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런 차후 발생한 시간을 민족이 완전히 분열되기 이전인 1948년 제주와 여순에 덮어씌우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순사건이라고 칭했던 칠십 주년 합동추념식에서 보훈단체 대표가 14연대 반란군이 동료와 경찰을 사살하고 인민군을 끌어들인 것이 반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고 주장을 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봤습니다. 

반란이라고 주장한 당사자도 의식하지 못하는 시차관점에 의한 오인발언이거나, 아니면 사적 입장에 따른 대립된 반민족 역사관에 입각한 것이겠지요. 이거저거 다 떠나서 기억에 있어 공적 도덕성이 없음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민족적 도덕성이 결여된 기억이나 역사관은 학살을 정당화 시키는데 전혀 인간성 회의를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칠십 년 세월동안 끔직한 고통 속에 지내야 했을 유족들 앞에서 당당하게 반란이라고 말 할 수 있었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여순민족항쟁 반대편에 서서 반란이라고 규정짓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 따지거나 비난 할 생각은 없습니다. 화해와 상생을 억지로 권유할 것도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마취된 절대반공 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하거나, 아니면 사적이익에 반하는 것을 강권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지금도 친일파에 뿌리를 둔 뉴라이트 학자들은 김구를 항일무력독립운동가가 아닌 테러리스트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친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국가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정권이익에 복무하여 유무형 사적 이익을 얻었거나 또는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한 국가를 위해 헌신한 명예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순민족항쟁을 반란으로 주장하는 것이 자신의 사적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요. 

다만 정치권력이 바뀌면 역사도 바뀌게 되면서 왜곡된 역사관도 바로 세워야 할 뿐입니다.

정작 안타까운 것은 여순민족항쟁을 항쟁이라고 제대로 부르지 못하고 오히려 ‘반란’ 이라고 내심 여기는 사람들이 여수에 많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유족 중에도 ‘항쟁’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까지 빨간불만 들어와서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파란불도 켜지니 건너야 할지 말지 불안 한 것입니다. 이를 심리학에서 이중구속二中拘束이라고 부릅니다. 혼돈상태인 것이지요.

이렇게 이중구속 되는 요인 중에는 반란이라고 주장하거나 항쟁이라고 부르기 꺼려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이것을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이들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우익학살입니다.

14연대는 동포의 학살을 거부한다고 해 놓고 왜 먼저 경찰과 우익인사를 학살했냐는 것입니다.

둘째, 양민학살 원인제공입니다.

14연대 군사봉기는 항쟁도 반란도 하지 않는 양민대량 학살 비극을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셋째,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항쟁 정명입니다.

항쟁이라는 정명은 과거 반성보다는 이념 갈등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그리하여 항쟁이라는 정명보다 화해

좌우이념대립갈등을 또다시 불러 일으켜 지역반목조장을 하는 항쟁 정명 보다는 사건으로 칭하여 화해 상생하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논리는 크게 아둔하거나- 당시 미군정 지배 하 남한사회 몰이해 - 아니면 그럴 듯하나 어설픈 교활함- 당시 친일반민족세력에 복무- 하는 것입니다.

여순항쟁 당시 경찰과 우익에 대한 처단을 학살이라고 오히려 전도합니다. 이 부분은 본지에 앞서 기고한 미군정과 이승만에 의해 부활한 친일순사출신에 관해 충분히 언급하였기에 생략하고자 합니다만, 해방된 나라의 치안권을 맡은 민족자치 인민위원회 치안대를 무력으로 내몰고 (당시 여수인민위원회 여수경찰서장은 김수평으로 친일경찰에게 여수 치안권을 빼앗긴 채 행방불명되었다) 친일순사 출신 경찰을 부활시킨 반민족 이승만과 미군정에 기인한 것입니다.

(관련기사 : 해원이 이루어지려면 낱말의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http://www.netong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535

친일순사 출신이든 친일파든 청산하지 못하고 부활시킨 것이 오늘날까지 이런 어설픈 논리를 펴게 만든 근간으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미군정으로부터 쌀 공출 수훈으로 친일경찰 출신이 미군정으로부터 훈장을 받는 장면입니다. 

당시 여수 순천은 쌀 공출 팔십 프로 달성(이혜수 저 미군정기 비배구조와 한국사회 참조) 했는데 전국에서 가장 높은 목표량을 달성 한 지역입니다. 그만큼 쌀 공출을 담당 했던 친일순사 출신 경찰들의 학정은 극에 달했습니다.

                  <미군정으로부터 표창장 받는 경찰>

또 14연대 봉기군에 의해 처단된 친일파 인사로 대표되는 천일고무 사장 김영준은 여수 상인들로 구성된 여수 임전보국단 회장으로 일본 천황에게 제로센 전투기를 헌납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프랑스 반민족주의자 처단을 예로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지배당하고 있을 때 민족독립투쟁을 했던 드골은 프랑스가 1944년 독일로부터 마침내 해방되자 맨 먼저 했던 것이 민족반역자 처단이었습니다. 

국제사회에 탁월한 과거사정리 방식을 제공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에 합류한 법적 정치적 근거를 제시한 나치협력자 처단은 이른바 '프랑스의 대숙청' 으로 불립니다.

                     <프랑스 민족반역자 처벌 사진>

 

프랑스는 그것도 모자라 1964년 12월 상하원 만장일치로 ‘전쟁범죄에 관한 시효’를 제거했습니다.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 후 20년 세월도 모자라 나치협력자 청산을 위해 소급입법하기 위해 시효자체를 없애 버린 것입니다. 

그 이전에 프랑스 나치협력자 처단 공식 숫자만 11.200명입니다. 물론 프랑스도 해방된 지역에서 나치협력자를 체포해 군사재판을 통해 즉결처분 하는 행태가 빈번했습니다. 

그래서 드골은 민족반역자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위해 최고 재판소를 설치해 나치괴뢰정권 비시정부 지도부와 각계각층 나치협력자를 응징했습니다. 특히나 시민법정을 각 지역에 개설하여 일반시민이 나치협력행위를 재판한다는 훈령도 발표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부일협력자. 민족반역자. 전범. 간상배를 조사 처단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친일잔존세력이 한민당과 이승만 공작에 의해 와해되고 말았습니다.

       <친일 부역자 신고 사진. 이승만 반민특위 와해 지시 기사 사진>

 

본디 국가가 청산해야 할 대상인 친일순사 출신 경찰과 우익이라고 교묘한 단어로 위장한 친일파가 부활하여 해방된 이 나라를 또다시 지배하여 민중들을 핍박한 것은 프랑스와는 너무나 대조되는 현상입니다. 

프랑스는 나치협력 반민족행위자를 처절하게 처단함으로써 <프랑스가 외국인에게 점령당하는 일은 있어도 내국인에게는 더 이상 점령 당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프랑스에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관용’에 해당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드골정부가 하도 처절하게 반민행위자를 처단하기 때문에 그만 관용하여 화합하자는 취지로 모리아크(François Mauriac)라는 언론인이 내세운 것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에게도 유명한 작가 알프레드 까뮈는 정의론을 내세워 프랑세즈라는 문학 주간지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게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

14연대 봉기군이 친일순사출신 경찰과 친일파 인사들을 먼저 학살하였기 때문에 양민학살이라는 비극을 불러 왔다는 교묘한 논리는 이승만 정부 진압군의 여수 순천 시민 집단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승만 반민족 독재 권력의 논리를 그대로 갖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교활한 논리입니다. 다만 정말 아둔한 것인지 아니면 반민족지배세력 이익에 복무하고자 하는 것인지는 알 길 없습니다.

물론, 인간의 모든 죽음은 ‘좋은 죽음’ 이든 ‘나쁜 죽음’이든 ‘이편’의 죽음이든 ‘저편’의 죽음이든 애도와 위로를 받을 절대적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14연대 봉기군에 의한 친일순사출신 경찰과 친일파의 처단으로 인한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인간적 애도와 위로를 해야 할망정, 그것이 결코 그들의 반민족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거나,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죽음은 부조리한 시대를 살면서 잘못된 반민족 국가권력을 지키기 위해 안타깝게 희생 당 한 것이지, 결코 민족과 나라를 위해 희생 당 한 정의로운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14연대 봉기군이 먼저 학살을 했으므로 더 큰 비극을 불러왔다는 엉터리 논리는 이제 그만 써먹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항쟁’이라는 정명이 과거반성 보다는 이념갈등을 야기 시킨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올해 70주년 추념식을 준비하면서 최대공양수와 교집합으로 항쟁이나 반란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사건으로 부르자며 합동추념식을 준비 했었나 봅니다. 항쟁이나 반란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여수말로 해서 신간 편하게 ‘사건’으로 하자고 했나 봅니다.

이것은 분명히 보수의 불평을 그대로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보수라는 것은 친일부활세력과 이승만으로부터 시작하여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미국과 군사독재정권의 향수에 몸서리치는 집단이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항쟁’이라는 정명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으므로 교묘히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식으로 사건으로 부르자고 하는 것은, 앙리 루소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것은 극우파의 향수병 때문이다.’ 라고 단정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순항쟁 당시 친일반민족주의자들 처단을 끊임없이 쟁점화 시키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정권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가치관을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건으로 치부하여 화해상생하자는 것은 친일반민족주의자들을 재등장시킨 이승만 정권에 대한 존경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비극이 현재 여수 순천 남부동북부지역 집단의식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겼는데, 그 상흔 아래에 아직도 곪은 상처가 남아서 괴롭히는데, 아직도 유족들의 피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상처를 열어서 사회, 정치체제를 세척하고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건으로 치부 하자는 것이 진정 화해와 상생을 하고 해원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맹목적 화해는 보수의 음모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올해 추념식처럼 또다시 갈등을 야기시킬 뿐입니다.

 

얼마 전 여수 엠비시 초청강연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은 '낡은 인식 틀'이라는 표현을 하더군요. 그간 세월동안 군사독재정권과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 까지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강화해 왔던 절대 반공이데올로기 틀이라는 것이지요. 

*도올 말하다 '여순민중항쟁' 특강  유튜브 바로 가기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_FPvW6lxgHM
2부 https://www.youtube.com/watch?v=y5kW3czM2AI
3부 https://www.youtube.com/watch?v=1FCqLffD73U&t=1704s

촛불정권과 남북화해시대를 열어가는 지금에 냉전시대 틀로 국민을 틀어쥐던 자들에게 “너희들은 이미 졌다”라고 선언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이미 시대는 냉전을 탈피하고 남북화해 시대로 접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냉전시대 군사독재정권 유지 발판으로 써 먹었던 절대반공 이데올로기는 이제 낡고 유해한 것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냉전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여순민족항쟁에 덮어씌워봤자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냉전에 복무하면서 얻어진 명예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수의 보수주의자들은 여순항쟁을 반란으로 묶어두려고 합니다. 아직도 여순민족항쟁을 좌우익 이념대립 사건으로 치부하려고 합니다. 

아직도 좌우이념대립이라는 낮은 차원인 수평적 갈등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사건으로 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친일순사출신 경찰과 친일파 처단을 내세워 쟁점화 시키려고 합니다. 

항쟁의 본질을 흐리게 하기위해 반민족정권과 민중이라는 수직적 대립관계를 좌우이념대립이라는 수평적 관계로 묶어 두려고 합니다. 엄연히 반민족 이승만 정부와 친일부활세력에 대한 민족항쟁인 여순항쟁을 말입니다.

그러나 여수에 호국과 보수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반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는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주장에 대해 반대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 이 글에 대해 반론하고자 한다면 본 신문사를 통해 글을 실어주시면 그에 대해 답은 성실히 하고자 합니다. 

또한 공개토론을 원한다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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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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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2018-11-23 17:03:50
친일 경찰만 죽였다구요???????????
어떻게 아세요??????????? 앙영제님은
과거에서 사셨어요?????? 보수만 나쁜것이 아니구요.
마찬가지로 역사를 마음대로 평가하시네요 ㅋㅋㅋㅋㅋ
나쁜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