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호주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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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호주 부부
  • 오문수
  • 승인 2018.12.18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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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기1] 더 이상 전쟁은 안돼

필자의 오랜 소망 중 하나는 남미여행이었다. 다른 지역은 배낭과 패키지여행을 통해 대부분 다녀왔지만 남미여행을 선뜻 나서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멀고 경비가 많이 들기도 하지만 소매치기와 강도를 만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하여 I여행사가 모집한 자유배낭여행팀과 함께 33일간(11.9~12.12)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후기를 작성한다. - 기자말

 

나리타행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안나씨와 케빈 보크씨 부부 ⓒ 오문수

11월 9일 새벽 4시 반, 사위 승용차를 타고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하니 동행할 분들이 보인다. 티켓을 가져온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공항서점에서 심카드 상담을 나눈 후 나리타행 비행기를 탔다.

혹시 모를 도난에 대비해 여권은 복사했지만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해놓으라는 가이드 말이 생각났다.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들고 여권 사진을 촬영하려고 했지만 자꾸 미끄러져 내리고 초점이 맞지 않는다.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있었는데 옆 좌석에 앉은 여성이 "도와드릴까요?" 하며 여권을 잡아줬다. 여인의 도움으로 사진 촬영을 마친 후 대화를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일본인입니까?"
"아니요. 호주인입니다."
"동양인인데 호주로 이민 가셨나요?
"예! 베트남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호주에 정착했어요."

 베트남 전쟁 피난민과 호주 이민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나 일본 나리타공항까지 가는 길은 대화의 연속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안나 누엔(Anna Nguyen)은 푸근하게 보이는 아주머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 어선 선장이었던 아버지 배를 타고 이웃 주민 20여 명과 함께 남지나해를 2주간 떠돌 때 16개월이라고 하는데 벌써 오십이 다 된 나이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남부 '라치기아'라는 곳에서 고기를 잡고 살던 아버지는 이웃주민 20여 명과 함께 남지나해로 나갔대요. 이른바 보트피풀이었죠. 

2주간 바다에서 떠돌다 미국 배를 만나 필리핀 난민수용소에서 살다가 뉴질랜드를 거쳐 현재 멜번에 살아요. 

당시 저는 16개월 된 아기라 기억이 없지만 엄마가 전해준 이야기에 의하면 미국 배가 고기잡이용 그물에 저를 담아 갑판으로 끌어올렸대요. 필리핀 피난민 캠프에서 2년간 미국으로 가기를 희망했지만 무산돼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에 정착했어요. 지금 와서 보면 호주에 정착하길 잘한 것 같아요."

머리를 빡빡 깎고 수염을 기른 남편 이름은 케빈 보크(Kevin Boc)다. 그의 아버지는 중국인이고 어머니는 베트남이다. 케빈이 베트남전 이야기를 해줬다. 8살 때 하노이에 살던 시절 미군이 하노이에 수많은 폭탄을 떨어뜨려 지하실에 숨어 살았다고 한다.

나리타 공항에서 또 다시 만난 안나와 케빈 보크 씨 부부. 베트남전이 끝난 후 피난민 신분으로 호주에 정착해 은행원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 오문수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1년 후 중국과 베트남 사이에 국경분쟁이 일어나 양국 사이에 전쟁이 났어요. 어머니가 베트남인이지만 중국인들은 중국으로 강제 귀국해야 했어요. 

부모님 손을 잡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갔지만 하노이 도시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농촌에 살 수가 없었어요. 조그만 보트를 사서 홍콩으로 탈출하려했지만 해안경비대가 상륙을 막았습니다. 

배를 타고 한 달간 머물다 간신히 홍콩에 상륙해 2년간 살다 호주에 정착하고 아내를 만나서 은행원으로 살고 있습니다."

부부는 부산을 거쳐 한국여행을 하는 동안 잊을 수 없는 충격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들이 방문한 곳은 DMZ. 남편이 한국의 비무장지대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의 모습이었다. 그는 총 든 군인들을 보았을 때 40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울었단다.

안나 씨 남편 케빈 보크 씨가 DMZ를 방문한 소감을 적어준 글로 총을 든 군인들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 오문수

"내가 DMZ를 방문했을 때 옛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어요. 비록 40년 전 일이지만 베트남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넘어 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되돌리는 것 같았죠. 야간에 국경을 넘을 때 총을 든 군인들이 생각났거든요."

일본 도쿄와 오사까를 거쳐 부산과 서울 DMZ를 2주간 여행한 부부는 나리타 공항을 거쳐 호주로 되돌아갔다. 그들과 대화하는 동안 필자의 생각도 베트남 전쟁이 끝나던 1975년 4월 30일로 되돌아갔다.

강원도 전방사단 수색중대에 근무하던 필자는 4월 1일에 일등병으로 진급했고 훈련 중 김일성이 남한을 적화 통일하겠다는 방송을 들었다. 베트남이 적화 통일되자 고무된 김일성이 제2의 한국전쟁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한국군은 모든 훈련을 중지하고 전투준비를 완료한 상태에서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마치고 공항에서 헤어진 후 힘없는 국가의 국민이 얼마나 험한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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