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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파라이소에서 네루다의 향기를 맡다
[남미여행기17]벽화 천국 발파라이소
  • 2019.01.31 17:00

 

발파라이소 항구 모습. 파나마운하가 완성되기 전 남미에서 가장 번성했던 항구 중 하나이다   ⓒ오문수

산티아고에서 140㎞ 떨어진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 갔다. 발파라이소는 태평양을 향해 코뿔소 코 같은 앙헬레스 곶이 삐죽이 튀어나와 태평양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는 양항이다. 상상이 안 되면 포항 호미곶을 연상하면 된다.

호미곶이 동해를 향해 튀어나왔다면 발파라이소 앙헬레스 곶은 태평양을 향해 뻗어나가 방향이 정반대다. 항구는 앙헬레스 곶 반도까지 펼쳐진 해안산맥의 반원형 지맥 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만 쪽으로 불어오는 남풍과 서풍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는다.

칠레 와인으로 유명해진 카사블랑카 계곡

칠레 수도 산티아고를 떠나 발파라이소로 가던 도중 현지 가이드가 칠레 와인으로 유명한 카사블랑카 계곡을 들러 와인을 맛보자고 한다. 일행이 가이드의 권유에 동의한 이유가 있었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좋은 점 중 두 가지는 값싸고 맛있는 와인과 놀랄 만큼 싸고 맛있는 소고기를 들 수 있다. 가이드가 칠레 와인이 유명해진 이유를 설명했다.

칠레와인으로 유명한 카사블랑카 계곡의 포도농장 모습 ⓒ오문수
칠레와인으로 유명한 와이너리에서 적포도주와 백포도주의 맛을 비교 평가해보라며 따라주는 와인을 시음해보는 일행들 ⓒ오문수

"칠레는 일조량이 풍부하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에 서쪽으로는 태평양,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이 가로막아 색깔이 진하고 단맛이 풍부한 포도가 생산됩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화이트 와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은 유명한 와인입니다."


칠레 해군의 중심 발파라이소

필자가 남미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던 가이드북에는 발파라이소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와 있었다. "파스텔 톤의 아름다운 집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항구도시"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낡고 지저분한 도시로 과대평가된 도시"라는 악평도 있었다.

하지만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떠났다. 다른 또 하나의 이유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만나는 것이었다.

발파라이소 시는 1536년 정복자 후안 데 사아베드라가 스페인에 있는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다. 해적들의 습격, 심한 폭풍우, 화재, 지진 등이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에 식민지시대 건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거리 곳곳 벽면이 있는 곳마다 멋진 벽화가 널려 있었다.

네루다가 살았던 집 인근의 카페와 레스토랑을 겸한 집 모습. 벽면의 빈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오문수
발파라이소 거리 곳곳마다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오문수

도시 대부분이 1906년의 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재건되었으나 1971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다시 큰 피해를 입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지진피해를 많이 입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이 내진설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쁘랏부두와 가까운 소토마요르 광장 주위에는 행정기관이 모여 있었다. 광장 중앙에 있는'이키케 영웅 기념탑'은 쁘랏부두와 칠레 해군 총사령부 건물 사이에 있었다.

칠레 발파라이소 지역 명물 중 하나인 아센소르(Ascensor)로 나무 케이블카이다. 스페인어로 엘리베이터를 의미하지만 발파라이소에서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으로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오문수
소토마요르 광장 중앙에 이키케 영웅 기념탑이 보인다 ⓒ오문수

'이키케 해전'은 칠레가 치른 태평양전쟁(1879∼1883)으로 볼리비아·페루 연합군에 맞서 싸운 전쟁이다. 동상 속 군인들은 해군 중령 아르투로 프라트(Arturo Prat) 중령과 그 부하들로 이키케 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해 칠레인들이 영웅으로 모시는 군인들이다. 칠레는 태평양전쟁 승리로 기존 영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영토를 획득했고 이는 국운을 바꾸는 전기가 됐다.

발파라이소는 특히 상업과 공업이 활발하다. 화학제품·직물·설탕·페인트·의류·가죽제품 및 식물성 기름 등이 생산되는 공장과 주물공장이 있으며 가까운 콩콘에는 정유공장이 있다. 수입물자의 대부분은 발파라이소 항을 통해 이루어진다.

수출은 칠레의 총수출량에서 볼 때 적은 양만 취급하지만 발파라이소가 국내 해상수송로로서 지니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 국내 해운항의 종점이며, 몇몇 국제 해상운송로의 종착지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발파라이소 북동쪽 태평양 연안에 자리한 칠레의 대표적 휴양도시 비냐 델 마르로 향하는 도로와 해변모습 ⓒ오문수
이스터섬에서 가져온 실물 모아이 석상 앞에서 기념촬영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오문수

발파라이소 지역 명물 중 하나는 나무 케이블카인 아센소르(Ascensor)이다. 아센소르는 스페인어로 엘리베이터를 의미하지만 발파라이소에서는 가파른 언덕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상하로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이다. 만든 지 100년이 넘었지만 꾸준한 관리를 통해 현재도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시인 네루다가 던진 말 "불의한 자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마주 앉는다'는 뜻은 통상 믿음, 공유, 소통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필자가 발파라이소 방문을 희망했던 건 참지성의 표상인 파블로 네루다의 흔적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인이자 외교관, 정치인이었던 그의 삶은 격정의 연속이었다. 스페인에서 공화파를 지지하다 외교관직을 박탈당하고, 칠레 공산당에 가입해 도피와 망명생활을 일삼았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한참 돌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네루다가 세 번째 부인인 마틸다 우르띠아와 함께 살았던 '라 세바스티아나'가 나왔다.

네루다가 살았던 집. 벽에는 네루다의 상징인 원형 물고기 마크가 그려져 있다 ⓒ오문수

산티아고 생활에 싫증이 난 네루다는 친구에게 "조용히 글쓰기에 적합하면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 너무 높거나 낮지도 않은 집, 외곽에 있지만 항상 이웃과 교감할 수 있는 위치, 모든 것과 멀리 떨어져 있지만 버스 등 교통이 좋은 위치, 독립적이지만 상업시설과도 그리 멀지 않은 집'을 원했다.

친구는 네루다가 원하는 집을 선택해줬다. 집 이름이 '라 세바스티아나'인 것은 이 집의 첫 번째 주인인 세바스티안 코라도의 이름을 따 집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정원에는 견학 온 학생과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네루다는 불평등한 사회를 고발하고 잔인무도한 권력자들에게 저항한 '저항의 시인'이자 '민중의 시인'이었다.

네루다 옆집 담장에 그려진 그림으로 네루다와 세번째 부인 마틸다 우르띠아로 추정된다 ⓒ오문수

시인이 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한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시구가 적힌 노트를 창밖으로 내동댕이친 후 불태워버리자 그는 필명을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으로 시를 발표했다. 화려한 우주의 신비를 노래한 그의 첫 시집 <황혼의 노래>의 한 부분이다. 19세 때 그가 발표한 첫 시집에 수록된 시다.  
 

"하느님, 당신은 하늘을 불 밝히는 이 놀라운
구릿빛 황혼을 어디서 찾으셨나요?
황혼은 저 자신을 다시 기쁨으로 채우는 법을 가르쳐주었어요"

 


젊은 시절에는 서정적이고 관능적 작품인 <황혼의 노래><스무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를 썼다. 나이가 들어가며 좀 더 영적인 작품 <조물주의 시도><고무줄 새총에 미친 사람>을 썼다.

1920년대 칠레는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정했다. 네루다가 현실참여의 민중시인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스페인에서 영사생활을 하면서부터다. 그는 자본주의와 식민 질서 속에서 억압당하는 민중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 와중에 절친인 극작가 로르까가 의문의 암살을 당하자 반프랑코 성명서에 서명하고 반파시스트 대열에 가담한다. 스페인 내전기간에 쓴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는 현실지향적이며 고발조의 장엄한 서사시다.

현실정치를 목격한 그는 고국에 돌아와 1945년 칠레공산당에 가입하고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지지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말이나 글만 앞세우지 않고 행동하는 지성인답게 대중 앞에서 나선 네루다. 1969년 칠레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그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자 수락했다.

그러나 이듬해 대선에서 좌파진영의 승리를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후보를 사퇴하고 오랜 사상적 동지이며 절친한 친구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단일후보로 추대했다. 아옌데의 대통령 당선은 온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이 탄생한 역사적 사건이다.

네루다 집을 견학온 학생들이 네루다 조각상 앞에서 기념촬영했다 ⓒ오문수
칠레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네루다 한 명 뿐인줄 알았는데 네루다 보다 먼저 노벨상을 받은 여류시인 미스트랄이 있었다. 일행이 견학온 학생들과 함께 미스트랄 여사 동상을 두고 기념촬영했다. 학생들에게 "한국관광객들을 환영해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BTS와 싸이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오문수

그러나 아옌데의 급진적 정치실험은 각계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이슬라네그라에서 조용히 만년을 보내던 네루다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피노체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에서 항전하던 친구 아옌데 대통령이 자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진 네루다의 병세가 걷잡을 수없이 악화됐다.  펜을 들 기운조차 없어 침대에 누운 채로 부인 마틸다에게 쿠데타를 규탄하는 글을 구술하고 있는 도중 무장군인들이 가택수색을 위해 들이닥쳤다.

네루다는 몸을 일으키며 장교에게 "당신들에게 위험한 것이라고는 이 방에 단 하나밖에 없네"라고 말했다. 놀란 장교가 권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그게 뭡니까?"라고 다그쳐 묻자 네루다가 대답했다.

"시라네!"

 

* 위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공동게재 기사입니다.

 

오문수  oms114k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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