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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 위 하우스보트에서 월남쌈을

타인의 삶의 방식 받아들이기

  • 입력 2019.02.20 11:24
  • 수정 2019.02.20 11:25
  • 기자명 김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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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리 호스트에서 네덜란드의 게스트가 되어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에 입국!

예지네의 한국여행 가이드북

네덜란드라는 미지의 나라가 아니라 만나야 할 예지네가 궁금해지는 순간, 예지아빠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가 어찌나 반갑던지 얼싸안고 싶었다.

예지네는 암스텔담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정도 달려가면 나온다. 그들이 설명하는 창밖의 풍경과 예지네 주변 이야기도 듣다보니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별할 게 있다면 그들 가족은 입양아가 10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그 숭고한 사랑은 축복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초록빛 싱그러움과 꽃향기 가득한 마을에 자리잡은 예지네 집에 도착하자, 뛰어나온 예지 엄마와 얼싸 안고 깊은 해후를 나누었다. 정말로 게스트와 호스트가 바뀌었다고 깔깔대며 옛 추억을 더듬었다.

내가 머무를 게스트룸은 기독교인이 주인이다. 그러나 집에는 붓다가 장식되어 있었다. 웬 부처님이냐는 물음에 그는 “많은 유럽인들이 동양의 명상에 관심이 있어 작은 부처를 집안에 모시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있다”고 답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땐 이곳저곳 다니며 일정을 마치고 온 터라 몸이 피곤할 법도 한데 오히려 힘이 났다.

마을 미술관 카페에서 사진 한 장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예지맘이 지난 여름 한국을 방문한 기념으로 구입한 노트 두 권을 건네 주었다. 한국여행기를 적은 노트에는 페이지마다 꼴라쥬작품으로 장식되어 간단한 설명까지 써 있었다.

"유럽사람들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처럼 여행 중 사진을 그렇게 많이 찍지 않는다"라는 예지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그들은 방문한 곳이나 여행지에서의 관심거리를 오리고 붙여 글을 쓰고 그림을 덧입혀 멋진 가이드북으로 기념품을 대신 했다. 이게 바로 ‘유럽피언 스따일’인걸까.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운하 위의 집, 그리고 예지네 하우스보트

잡지에서나 봄직한 예지네 세컨하우스는 사면이 통유리로 된 운하 위의 하우스보트다.

모터보트를 타고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도착한 하우스 1층에는 주방과 식당 그리고 모던한 분위기의 가구가 배치되어 있고, 물에 잠기는 하우스보트 아래는 3개의 방과 화장실, 사우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백나무 침실은 보일러가 가동되고, 물에 잠기는 방에서는 창밖으로 넘실거리는 물결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따끈따끈 핀란드식 건식 사우나는 목욕탕 문화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함을 더해 주었다.

와우, 사방이 통유리로 둘러싸인 거실에서 비춰지는 외부 풍경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운하의 물길과 바람 따라 떠다니는 대형요트, 노을 지는 주황빛 하늘 아래 어슬렁거리는 소떼들이 보이는 풍경에 취해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네덜란드에서 본 예지의 엄마와 아빠는 우두리에서와 다른 새로운 모습이다
모터보트에서 바라본 풍경

도착하기 전부터 밥 한 끼 정도는 내가 만들어 주겠노라고 큰소리 쳤지만 심장이 멈출 것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마켓에서 사온 채소와 과일을 가늘게 썰고 한국에서 가져온 라이스페이퍼를 꺼내 월남쌈을 준비했다.

외국인 집에 머무를 때면 잊지 않고 챙겨가는 물건이 한복과 라이스페이퍼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준비한 한복을 드라이를 해 선물하면 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면서 옷과 함께 나를 기억에서 잊지 않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또 끼니를 여러번 대접받은 집에서는 한 끼 정도 내가 직접 준비하는데 그럴 때 월남쌈은 가장 ‘안전빵’인 음식이다. 라이스페이퍼 안에 넣을 채소를 준비하고 집주인이 선호하는 소스만 내놓으면 이색적이면서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쌈을 싸 먹는 동양문화를 접하고 잘게 썬 채소를 젓가락으로 집는 일은 그들에게 특별한 경험이다.

내가 건네고 간 라이스페이퍼로 친지를 초대해 즐기는 사람들
라이스페이퍼를 처음 접해 쌈을 만들줄 모르지만 이것 역시 신나는 경험이다

마지막으로 식사가 끝나면 미리 준비한 한 통의 라이스페이퍼를 그들에게 건네며 오늘과 같은 방식으로 친구나 친지를 초대해 즐기면서, 그 장면을 사진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준비한 여행의 과정이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추억이 가물가물할 때 쯤, 예지엄마가 영상통화와 함께 사진을 보내줬다.

일주일 간 함께 보내며, 피 섞인 재외교포에게서 받은 따뜻한 대접과 배려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 떠올려보기만 해도 그들에게 다시 달려가고 싶어진다. 귀촌한 우두리의 민박집이 만든 귀중한 인연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가까이서 보게 된다는 뜻이다. 길 위에서 보고 느낀 새콤달콤 짭짤한 맛은 내 삶의 윤활유가 되어, 세상을 누리고 사람을 누리는 삶에 색을 덧입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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