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되살려야 할 ‘충무공비각복구기성회’ 정신
상태바
현대에 되살려야 할 ‘충무공비각복구기성회’ 정신
  • 오병종
  • 승인 2019.02.28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 존재로 말한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⑤

 

편집자 소개글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3.1운동의 근본정신은 ‘독립’과 ‘평화’입니다. 그리고 3.1운동의 근본정신을 일깨워줄 여수의 상징물로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떠올려 봅니다.

본지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 존재로 말한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5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합니다. 충무공대첩비에 담긴 내용과 역사성을 깊이 살펴보면서 100년을 맞은 3.1운동 근본정신을 새기고자고 합니다.

 초대 여수군수 오횡묵의 회고 “한서린 파도소리” (2월 16일)

② 이항복의 추모 “노량을 깊고 깊은데...” (2원 19일)

③ 통제사 유형과 증손자 유성채... 대를 이은 ‘여수사랑’ (2월 22일)

④ 일제강점기 말에 사라진 대첩비, 그리고 ‘복구’ (2월 25일)

⑤ 현대에 되살려야 할 ‘충무공비각복구기성회’ 정신 (2월 28일)

고소대 충무공대첩비각 앞에서 거북선축제 관계자들이 2018년 제 52회 축제 앞서 축제의 시작을 알리며 참관하고 있다.

여수의 호국문화축제인 거북선축제는 매년 충민사에서 고유제를 지낸다. 그리고 곧장 이순신 장군 동상과 무명수군위령탑 참배에 이어 이곳 고소대 대첩비각에 들러 축제의 서막에 해당하는 의례행사를 마친다.

고소대 대첩비에 들르는 이유에 대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김병호 이사장은 이렇게 얘기한다.

“축제 때마다 충무공비각에도 들러서 참관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충무공의 혼이 서려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충무공을 기리는 비석인만큼 여수시민들은 이 대첩비를 충무공과 거의 동일시한다. 이런 일련의 의식과 관심은 과거 300년 전통인 여수의 ‘비각계’의 정신이 이어진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지금은 문화재를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때문에 민간이 나서서 굳이 관리를 하지는 않지만 대첩비가 건립된 조선말기는 제대로 관리가 어려웠다. 민간조직인 ‘비각계’가 여수에선 300년간 비와 비각을 관리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여수시민들이 대첩비를 충무공과 동일시하는 데는 대첩비가 갖는 역사성 때문이다. 고소대 안내판에는 이 대첩비는 '국내 비석 중 가장 큰 것으로 유명하다'라고 소개한다. 대첩비 높이 305cm. 국내 문화재 비석 중 최대로 남다른 위용이다.

물론 충무공비로서 국내에 더 큰 비석도 있긴 하다. 1956년도에 진도에 세워진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는 높이 380cm다. 그러나 최근 작품이어서 국가문화재 반열엔 못 들고 진도군 향토유산이다.

진도벽파진 전첩비는 진도군 향토문화유산 유형유산 제5호다.

집채만한 비의 원석이 400여년전 열악한 운송수단 아래 황해도에서 여수까지 옮겨와 제작된 세기적인 작품이란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전후 복구에 어려움속에 당시 전라좌수영민들의 노고와 여수와 관련있는 명망가와 관리들이 혼연일체로 나서서 건립한 범국민적 관심과 노고의 산물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 연유로 문화재 정비계획이 나올때면 ‘대첩비’는 보물에서 국보급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남도와 여수시는 2016년도에 문화재 조사를 통해 여수시가 타 시·군보다 많은 39건의 이순신 관련 유물과 유적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이때 보고서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보물(제 571호)에서 ‘국보’로 승격시키자는 내용이 담겼지만 현재는 주춤하다.

충무동(지금은 동련현 1길 12-2)의 옛 대첩비 비각터를 기리키는 임용식 문화원장(오른쪽)과 전 도의원 윤문칠씨(왼쪽). 이곳에는 원래 충무공비각터였다는 안내판이 없다.  사진안에는  비각터 가옥의 주소 안내판이다.

또 다른 주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움직임이다. 지역신문에 꾸준히 향토문화 컬럼을 실어온 전 윤문칠 도의원은 “대첩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 개발 중인 남산공원에 이순신 관련 유물유적을 전시할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기념관의 핵심으로 ‘대첩비’의 안치가 요청된다고 말했다. 고소대 충무공대첩비각을 바다가 보이는 남산공원으로 옮기자는 파격적인 주장인 셈이다.

그는 박제되거나 꽁꽁 숨겨진 문화재가 아닌 많은 사람이 관람하기에 용이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는 관광과 문화재 그리고 역사가 따로 떨어진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종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논리이긴 하지만 많은 논쟁과 토론이 요청되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또 하나 여수거북선 축제 중에서 ‘대첩비’ 역사스토리의 등장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거북선축제 하이라이트는 ‘통제영길놀이’다. 통제영 길놀이는 임진왜란 전란사 및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역동성 있게 표현한 스토리가 있는 ‘로드 연출물’이면서, 당시 상황을 ‘퍼포먼스로 펼치는 역사물’이기도 하다. 다양한 연령층에서 여수시민 5천 명 가량이 매년 참여한다.

올해 5월 제 53회 거북선축제에서 ‘대첩비’ 가 등장할 전망이다.

여수진남거북선축제보존회 임용택(69) 이사장은 “올해 3.1운동 100주년 해이고, 좌수영 설치 9주갑 되는 해인 만큼 거기에 맞는 연출물로 대첩비 조성이나 일제때 없어진 대첩비를 다시 찾아왔는데 그런 과정을 축제에 표현되도록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제 52회 거북선축제 '통제영길놀이' 장면

거북선축제보존회 기획연구위원장인 권인홍 연출가도 “선조들의 대첩비 조성과정이든 또 일제때 사라진 대첩비를 서울에서부터 여수로 이송해서 고소대에 복구하는 과정이든 그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은 역사성과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어서 올해 프로그램에 구체화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최근 개교하고 3월부터 첫 수강생 30명을 모집한 여수이순신학교도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부산의 ‘여해재단’(여해는 이순신의 자)이 이어 지난해 여수여해재단이 창립되었고, 이 재단에서 운영하는 여수이순신학교가 작년 9월 개교한 후 올 3월부터 30명 정원의 수강생을 모집해 개강에 들어간다.

여수이순신학교(교장 이삼노. 전 여수대 총장)는 이순신 정신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이삼노 교장은 “선조들이 힘겹게 대첩비를 건립하고 관리를 해온 것은 충무공을 기리는 일이었다면, 일제 강점기 반출되었던 것을 시민들이 복구기성회를 조직해 다시 재건립했다는 것은 시민들이 이순신 정신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비각계가 300년 전통의 '신민'들의 조직이었다면, 3.1혁명을 겪고 해방을 맞으면서 '신민'이 아닌 '시민'으로서 '충무공비각복구기성회'가 반출된 대첩비를 찾아오고 비각을 건립하는 일에 나섰다.

여수에서 충무공대첩비의 존재가 상징하는 역사성은 국내외적으로 지역민들을 ‘자랑스러운 시민’으로 우뚝 서게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평화를 지향하려는 뜻이 담겨있는 탓이다.

여수시민에게 ‘통제이공수군대첩비’ 그 존재 자체가 자긍심이고 ‘독립’과 ‘평화’를 바라는 염원의 상징인 것이다.

400년 전에 건립되었고 도중에 일제 강점기에 뽑혀 반출되었다가 다시 여수 고소대에 복구된 '통제이공수군대첩비' (보물 571호)의 현재 모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