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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집안 다른 길, 독립운동가 김백평
  • 2019.03.12 14:41

서울시청에 있는 시민청 갤러리를 갔다. 서울시교육청이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서울 학생들의 3.1 만세운동 참가 내용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 전시회를 서울시교육청 관내 특성화고가 준비하였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 100년을 잇는 학생운동이다.

전시회를 둘러보다가 서울 학생으로 3.1만세운동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된 경성고보(경기고) 4학년 '김백평金柏枰'이 있었다. 여수 출신으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받은 것으로 나와 있다.

전시장의  3.1운동 참가자 명단에 '김백평'이 보인다.   ⓒ한창진

'김백평'은 손병희, 강기덕 등의 지휘 아래 각 학교에 교부되던 독립선언서 200부를 비밀리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며 3월 1일 오후 2시 탑골 공원에서 대한 독립을 선언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부터 3월 5일까지 서울 지역에서 계속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 받고 공소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0년 2월 2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1년 2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여수에서 '맞돕회장'을 지내면서 청년회관을 지어 계몽활동 등을 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나와 있다.

우연히 발견한 '김백평'은 18평을 떠올리게 했다. 여수 김백평 집안에는 '평'자 돌림 4촌 형제가 18명이 있어서 이들을 18평'이라고 한다. 이들은 김한영, 김한승, 김한성, 김한종 4형제의 아들들이다. '한영고', '한영대학교' 는 4형제중  김'한영'에서 따온 교명이다.

이들 '18평' 중에는 '김백평' 외에도 널리 알려진 '김수평'과 '김우평'이 있다.

'김수평'은 해방 이후 미군정 초대 여수경찰서장을 지냈다.  그는 보성전문대학과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건국준비위원회의 여수치안부장, 6. 25전쟁 때 인민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53년 체포되어 11년형을 살았고, 1963년 출옥 1년 후 부인 정기순도 체포되어 3년형을 살았다.

김수평은 대첩비를 되찾아와 여수에 복구하는 '대첩비각복구기성회'를 맡기도 했다.

이와 다르게 '김우평'은 일본 유학을 거쳐 미국 콜롬비아대학을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기자를 하고, 만주국 재무부 참사관을 거쳐 해방 후에는 미군정 외자청 구매처장을 하였다. 5대 민의원 선거 때 여천군에서 당선되고, 민주당정권이 들어서면서 부흥부장관까지 지냈다.

'김우평'의 아버지 김한승은 대한제국 때 여수군 주사를 지냈고, 일제강점기 1920년 전남도평의원을 3회 연임하였다. 1932년 중추원 참의로 임명되었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조선인공로자 353인에 포함되었다. 이후 2002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에도 들어갔다.

격동기 여수에서 같은 집안에서도 이렇게 서로 다른 행적을 보여 4촌간이지만 역사적 평가가 다르다.

일제강점기 시대적 요구에 충실히 했던 독립운동가들은 제대로 평가 받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럴려면 친일청산이 먼저다.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 청산이 꼭 필요하다. 지난 100년 동안 못 해낸 친일파 청산 없이 앞으로 100년을 맞이할 수 없는 탓이다.

한창진  시민감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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