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21 일 21:07
상단여백
북한과 러시아는?... 우리가 늘 관심 가져야
러시아 바로알기 ③
  • 2019.03.24 21:39
편집자 소개글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선언’없이 빈손회담으로 끝났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살피는 시야를 더 넓힐 필요성이 높아졌다.

그 중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보다 더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문재인 정부 ‘신북방정책’의 주요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 여수출신 박종수(서강대 겸임교수) 전 주러시아 공사가 특별 기고문을 보내왔다.  본지는 앞으로 몇 차례 '러시아 바로알기'를 연재로 실어 북한-러시아, 남한-러시아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망해 보면서 독자들의 시야를 넓히는 자료로  활용코자 한다.

‘불루오션’을 찾아서

푸틴 대통령은 집권3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유럽 편중에서 벗어나 아태지역으로 통치영역의 확대를 의미한다.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유럽으로 향한 창’으로 삼았듯이, 푸틴 대통령도 블라디보스토크를 ‘아시아로 향한 창’으로 설정하고 국가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정상회의 후 연례행사인 동방경제포럼을 플랫폼으로 삼고, 선도개발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법, 1헥타르법 등 전례 없는 흡입책을 마련해 두었다.

문재인 정부도 이에 화답하듯 신북방정책을 천명하고 나인 브릿지(9개 다리) 프로젝트를 실천적 과제로 제시했다. 전담창구로서 대통령 직속으로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신설했다. 한러 양국 간 이해가 일치되는 절묘한 상황인데도 아직 가시적 성과가 없다.

오히려 20-30대의 젊은층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한 러시행렬을 주도하고 있어 공공외교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물론 남북한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북방지역이 북한 땅에 가려서 안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북방정책은 북한 변수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행여 남북관계가 경색될 경우에 북방변수는 대안카드로 활용할 수 있고, 북한변수와 북방변수 간 선순환적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크 야경

위기 마다 북한을 두둔하는 러시아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 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서로 비난했다. 트럼프-김정은 간 극한 설전이 오가면서 한반도에는 일촉즉발의 전운마저 감돌았다.

이러한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을 ‘핵(核) 외교전의 승리자, 대화로 해결할 성숙한 정치인’이라고 격찬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푸틴의 미국패권 견제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2003년 북핵 6자회담 출범 직전에 러시아 수석대표인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북한 측의 요구를 반영한 일괄타결안을 제시했다. 미국과 일본이 반대하고 한국과 중국은 침묵했다.

미국이 2005년 9월 동결시킨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김정일 비자금 반환문제가 대두되자, 러시아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자국 은행을 통해 예치금 전액을 북한 측에 넘겨주었다. 2009년 4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때는 6자회담국 중 유일하게 유엔의 대북 제재에 반대했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는 유엔의 대북 규탄성명서 채택에 불참했다.

오히려 안보리 긴급회의 소집을 전격 제안해 서해의 한미합동 사격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2012년 3월 북한의 대러채무 100억 달러를 탕감해 주었다. 반대급부로 러시아제 무기도입 등 군사협력이 강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2월 러시아 정보기관 출신 10여 명이 평양에 파견돼 트럼프의 김정은 참수작전에 대비한 신변경호 교육을 전담했다.

푸틴은 9월 1일 발표한 기고문에서 “평양에 대한 압박만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전제조건 없이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직접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도 2018년 6월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회담 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대북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몸은 중국, 마음은 미국, 머리는 러시아?

북한 매체들은 2017년 8월 광복 72주년을 맞아 김정은과 푸틴이 축전을 주고받으면서 양국 간 친선 강화를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중국 측과 축전을 교환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방송은 각국 지도자의 신년 연하장 접수사실에 대해서도 연속 4년간 러시아를 가장 먼저 호명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올해 2월에도 김정은의 푸틴 앞 연하장 발송 사실을 보도했지만 시진핑에 대해서는 패싱했다. 2017년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때 러시아는 1주일 전에 통보받고 북·러 국경 인근의 하산 마을주민 1500여 명을 대피시켰다.

수소폭탄 실험장소인 풍계리로부터 약 100㎞ 떨어진 중국은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시진핑은 BRICs 개최국 수장으로서 개막식 당일에 예고 없이 실시한 북핵 실험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중 관계가 양호했던 시기는 대략 1961~1964년, 1970~1973년 정도였다. 그 이외에는 상호 인식의 편차나 갈등이 노출됐던 시기였다. 북중 간 군사동맹 관계라고 하지만 정례적인 합동훈련조차 없었다.

중국의 엘리트 그룹은 ‘북한에 끌려 다닌 북중관계 60년이요, 허울 좋은 혈맹일 뿐’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북한의 대중국 무역의존도 90%는 숫자상의 놀음일 뿐이다. 통계 작성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오류가 산견되고 있다.

주펑 남경대 교수는 북한이 먹이를 주는 주인을 물어뜯는 개와 같은 존재라고 혹평했다. 중국의 조야에서는 ‘북한이 전략적 자산이냐 전략적 부담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한다.

반면 러시아와는 1990년대 한소수교 및 소련 해체의 혼란기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지속해 왔다.

북중관계의 시초는 공동 항일투쟁 및 중국공산당의 국공내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이 6.25때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북한 구하기’에 나섰던 것은 북한의 지정학적·전략적 가치도 작용했지만, 국공내전 때 북한군의 전폭적인 중국 지지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국공내전 당시 김일성의 도움이 있었기에 중공군이 승리할 수 있었고, 이는 결국 한국전쟁에 중국이 참전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혈맹’으로 한층 격상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김정은은 작년부터 4차례나 집중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지난번 베트남 북미회담 때도 전용열차를 이용해 중국영토를 통과했다. 이렇듯 몸은 비록 중국에 있지만, 마음은 오직 미국을 향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에는 타도대상이었지만 지금은 협력해야할 파트너 1호다. 그렇다고 북미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호전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북핵문제 해법을 놓고 오월동주(吳越同舟)식 북미동주(北美同舟)하고 있다. 지난 2월말의 하노이 북미회담이 결렬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일체가 소련에 의해 건설된 북한정권의 태생적 한계는 간과될 수 없다.

러북 간 국경선 39.1km는 머리(러시아)와 몸통(북한)을 연결하는 목 부위에 해당한다. 머리의 지령없이 몸통은 움직이지 않는다. 목을 조이면 몸통은 한순간에 주검으로 변한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지정학적 구도다. (계속)

박종수  전 러시아 공사

<저작권자 © 여수넷통,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