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와 무관하게 추진되어야할 신북방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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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와 무관하게 추진되어야할 신북방정책
  • 박종수
  • 승인 2019.04.04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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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바로알기④

 

편집자 소개글 

북미정상회담이 ‘하노이선언’없이 빈손회담으로 끝났다. 이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를 살피는 시야를 더 넓힐 필요성이 높아졌다.

그 중 러시아는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보다 더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문재인 정부 ‘신북방정책’의 주요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 여수출신 박종수(서강대 겸임교수) 전 주러시아 공사가 특별 기고문을 보내왔다. 본지는 '러시아 바로알기'를 지금까지 연재로 3회를 게재하면서 북한-러시아, 남한-러시아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망해봤다. 독자들의 시야를 넓히고자 한 여수출신 전 러시아 공사 박종수 교수의 마무리 글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다중적 입장

북한의 핵개발 문제는 러시아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핵시설과 기술을 공여한 장본국으로서, NPT체제 관리국으로서 북한의 핵무력화를 방임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또한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접국으로서 한반도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연해주 일대의 핵오염을 우려해야 한다. 그렇지만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북한과 공동보조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첫째, 북핵 공여국의 입장이다. 항일 빨치산 대장 출신인 김일성은 일본 본토에 투하된 원폭의 위력에 경악했고 정권출범 때부터 핵개발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핵의 이론적 기초를 다지기 위해 소련의 지원을 받아 1946년 김일성대학에 물리수학부를 개설했다.

지난 3월 1일 연해주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3.1절 100주년 행사 기념 촬영

도상록·리승기·한인석 등 북핵 1세대 3인방에 이어 정근·최학근·서상국 등 2세대 3인방이 소련에서 핵물리학을 공부했다. 1990년 소북 과학협력협정이 종료될 때 까지 소련의 도움으로 배출된 북한의 핵인력은 250여 명에 이른다. 1956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협력협정’ 체결 후 지원이 본격화됐고, 1980년대 영변에만 핵개발관련 직·간접 시설 100개가 건립됐다.

물론 소련은 핵탄두 개발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지원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 해체의 혼란기를 틈타 핵프로그램을 군사적으로 전용하는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북한이 불법적으로 핵물질뿐만 아니라 기술자까지 평양으로 데려간 정황이 도처에서 발견됐다.

1992년 12월 러시아 첼랴빈스크의 마케예프 설계국 소속 미사일 전문가 20명을 방북시키려다 공항에서 저지당했다. 1994년 6월 러시아 국내방첩부(FSB) 부장은 북한이 핵무기 생산용 부품들을 밀수하려 해서 골치 아프다고 토로했다. 1999년 3월 구소련권으로부터 중고 미그21기 40대를 해체해서 평양으로 불법반입해간 사실도 뒤늦게 포착됐다.

둘째, 북핵 관리국의 입장이다. 소련은 1970년대 미국과 함께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를 출범시켰다. 1990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제출한 KGB 보고서에서 “북한의 첫 핵무기가 영변의 핵연구센터에서 완성됐다”고 밝혔다.

이어 1993년 KGB 후신인 해외정보부(SVR) 백서에서는 북한의 핵무장화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렇지만 러시아 측의 이러한 주장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4자회담에서 조차 배제됐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는 대만·한국·일본 등 잠재적 준(準)핵국가의 연쇄 핵무장 촉발을 우려했다.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의 한반도 구축과 일본 재무장의 빌미 제공을 경계했다.

러시아가 최다 핵탄두 보유국으로서 세계 평화를 담보하는 핵심적인 국제관계 행위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크라스키노 포럼에서  발제하는 필자 

셋째, 북핵 피해국의 입장이다. 미국의 북핵시설 폭격 때 극동일대는 심각한 방사능 낙진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북한체제 위기 시에 탈북 난민의 극동지역 유입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국가발전 대전략으로 추진 중인 신동방정책과 시베리아 극동개발에 중대한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우크라이나·시리아 내전 개입과 함께 동북아에서 또 하나의 전선을 형성하는 전략적 부담도 가중된다.

체첸 전쟁 이후 나 죽고 너 죽자는 자폭테러의 현장을 무수히 경험한 러시아다. 자폭테러는 죽어가면서도 독침을 내뿜는 전갈과 같다. 북한과 같은 소규모 핵무장 국가가 위기상황에서 핵무기를 더 쉽게 사용할 유혹을 느낄 수 있음을 우려한다.

넷째, 러북 양국은 서방의 경제제재 대상국이다. 북한은 첫 핵실험을 실시한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장기간에 걸쳐 강도 높은 경제제재를 감내해 왔다. 러시아도 2014년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로 루블화 폭락 등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제 설계자·이행자이면서 제재 대상국이라는 상반된 입장에 처한 셈이다. 제재를 당한 입장에서 푸틴과 김정은은 동병상련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립과 갈등을 끝낸 새로운 평화협력공동체’를 천명했다. 이를 위해 ‘긴밀한 한미공조’를 강조했다. 그렇지만 탈냉전 후 한반도의 지정학적·지경학적·안보적 환경은 크게 변했다.

이제는 주변국과의 균형외교를 펼쳐야 할 때다. 특히 러시아와의 관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100년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100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루오션’을 찾아서

푸틴 대통령은 집권3기를 계기로 본격적인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유럽 편중에서 벗어나 아태지역으로 통치영역의 확대를 의미한다. 표트르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유럽으로 향한 창’으로 삼았듯이, 푸틴 대통령도 블라디보스토크를 ‘아시아로 향한 창’으로 설정하고 국가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정상회의 후 연례행사인 동방경제포럼을 플랫폼으로 삼고, 선도개발지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법, 1헥타르법 등 전례 없는 흡입책을 마련해 두었다.

블라디보스크 야경

문재인 정부도 이에 화답하듯 신북방정책을 천명하고 나인 브릿지(9개 다리) 프로젝트를 실천적 과제로 제시했다. 전담창구로서 대통령 직속으로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신설했다. 한러 양국 간 이해가 일치되는 절묘한 상황인데도 아직 가시적 성과가 없다.

오히려 20-30대의 젊은층들이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한 러시행렬을 주도하고 있어 공공외교의 위력을 실감케 한다. 물론 남북한 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북방지역이 북한 땅에 가려서 안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신북방정책은 북한 변수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행여 남북관계가 경색될 경우에 북방변수는 대안카드로 활용할 수 있고, 북한변수와 북방변수 간 선순환적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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