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무상교육 제외...일본고등학교 중 조선학교만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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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무상교육 제외...일본고등학교 중 조선학교만 해당
  • 오문수
  • 승인 2019.04.1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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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들의 아픔...두 개의 조국, 태어난 곳에서 차별받아
 

 

 
▲  기무라씨의 인권강연을 알리는 안내문 모습.
ⓒ 오문수  
16일(화) 오전 10시 반, 여수소호요트장에는 제20회 나가사키 국제범선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코리아나호 승선자들이 모였다. 그 속에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일본인이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온 76세의 기무라 히데토씨.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생긴 기무라씨는 나가사키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로 퇴직한 평화활동가다. 뉴욕여행을 하다 느낀 게 있어 아시아, 특히 한국을 먼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먼저 시작한 것은 한글공부다. 어느 정도 한글독해가 가능해지자 한국소설 읽기에 도전했다.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충격을 받은 그는 내친 김에 대하장편소설에 도전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 태백산맥>을 두 번이나 읽고 몇 년 전에는 필자와 함께 <태백산맥>속에 나오는 현장을 답사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왜 소설 <태백산맥>이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합니까? 민족사이며 20세기 이데올로기 대립을 잘 보여준 명작입니다"라고 말한다.  

2007년에 열린 '스톤 워크 코리아(Stone Walk Korea)' 팀과 동행해 부산, 김해, 남원, 임진각을 거쳐 금강산까지 다녀왔다. '스톤워크'란 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무명의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우호를 기리는 반전평화운동단체로 미국에서 시작했다. 스톤워크 코리아' 반전평화행진을 마친 기무라씨는 원폭피해자가 머무는 합천 '평화의 집'에서 두 달간 봉사했다.  

기무라씨의 질문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은 왜 차별받을까?" 

그가 지난 12일(금) 저녁 7시, 광주 금남로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이사장 리종빈, 소장 박흥순)에서 열린 "시민과 함께하는 인권 서로배우기" 모임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을 들은 참석자들이 30만 원을 모금했다. 기무라씨는 이 돈을 조선학교에 기부할 예정이다. 
 
▲  광주 금남로 예술의 거리에 위치한 다문화평화교육연구소에서 강연하는 기무라씨와 참석자들의 모습
ⓒ 오문수  
▲  기무라씨의 강연을 들은 한 참석자가 소감을 적었다
ⓒ 오문수  
    40여 명이 참석한 강연회 주제는 <나는 계속 질문한다>이다.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은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은 왜 차별 받을까?"다. 인권문제로 고민하던 그는 천황제와 조선학교 차별문제, 일본의 우경화 현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기무라씨는 천황제를 불편해 한다. 천황제가 불편한 이유는 천황도 보통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천황을 이용했다. 명치시대가 시작되면서 천황의 권위를 이용해 백성들을 지배하려는 의도로 새로운 연호 (일세일원) 제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징병제와 학교령도 내려졌다.

징병제, 학교, 천황의 권위를 이용해 근대국민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그때까지 천황이라는 존재를 몰랐던 민중들이 학교, 징병제를 통해 자식을 빼앗기는 무서운 경험을 했다. 천황을 신격화해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교육한 결과가 아시아 제국에 대한 침략전쟁이었다.

1941년에 병사들에게 발표된 '전진훈'은 전쟁에 나간 군인들에게 하는 훈계로 "살아서 포로가 되는 오명을 받지 말라"는 훈계다. 천황은 아시아인 3000만명을 죽이고 일본인도 300만명이 죽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지지 않았다. 천황은 사람이 아닌 신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한국 국회의장과 전임 나가사키 시장의 발언에 주목했다.

"한국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본을 대표하는 천황이 사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사람이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지 않는가'라고 발언했잖아요? 1988년 12월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있다'고 시의회에서 답변한 나가사키 모토시마 시장은 여러 가지 압력을 받았지만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모토시마 시장은 1990년 1월 우익단체 사람한테 총을 맞아 중상을 입었어요"



고등학교 무상교육 대상에서 조선학교 제외는 적법?...명백한 유엔인권위원회 규약 위반   

기무라씨는 조선학교 고교무상화와 취학지원금에 대한 일본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2018년 3월 14일 일본 기타규슈 조선학교 고교무상화와 취학지원금에 대한 재판결과 조선학교가 패소했다. 불과 1년전 오사카 지방법원에서는 승리했던 재판이 2018년 재판에서는 뒤집혔다. 2017년 오사카 지방법원 판결내용과 2018년 히로시마 지방법원의 판결내용을 보면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판결이 180도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 2017년 오사카 지방법원 판결내용
일본정부가 조선학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는 정치적인 것으로 문부과학상의 재 량범위를 일탈하고 있고, 학교 운영에 관해 북조선과 조총련의 영향력이 있기는 하지만 취 학지원금이 수업료로 적절하게 사용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각하한다.

▲2018년 히로시마 지방법원 판결내용
문부과학상의 재량 범위 내 무상화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적법하다. 북한과 조총련에 의한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으며, 취학지원금을 지급해도 수업료로 적절하게 사용될지 우려된다. 일부 보도와 과거 민사소송 사건의 판결 등에서 조총련과의 밀접한 관계가 의심 되며 개선되었다는 보도도 없다.


고등학교 무상화, 취학지원 제도는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이 들어섰을 때 실현되었다. 이 판결에 대해 기무라씨가 보충설명했다.   
 
▲  여수 소호요트장에서 기념촬영한 기무라씨 모습. 뒤에는 나가사키 국제범선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출항을 기다리는 코리아나호가 보인다. 나가사키에 사는 기무라씨는 코리아나호를 타고 나가사키에 도착해 일행을 안내할 예정이다.
ⓒ 오문수  
     
       
▲  16일 오전 10시 반, 나가사키 범선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여수 소호요트장을 떠나는 코리아나호
ⓒ 오문수  
     
"고교 무상화를 북조선, 조총련과의 관계 즉, 외교적 관점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것입니다. UN인권위원회에서 일본 정부의 조처는 민족차별에 해당되니 개선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권고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행정부의 민족차별정책에 사법부까지 동조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는 일본의 우경화와 우익단체들의 차별정책이 일본사회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아베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J-Alert System(전국경보시스템)'을 구축해 미사일 통과가 예상되는 지역학생들로 하여금 책상 밑으로 기어드는 훈련까지 실시했다.

"우익단체들은 한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 즉, 신주쿠, 오쿠보 등에서 헤이트 스피치(증오 연설)를 하거나 시위를 벌였어요. 그들의 격렬함은 태극기 부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조선학교를 일본에서 쫒아내라, 조선인을 죽여라"고 외치기도 했어요"  

자신감을 잃어버린 일본인들이 의지할 곳은 내셔널리즘

조선학교 재판과 판결은 남북 관계가 점점 소원해진 2013년 이후 자민당 정부가 조선학교 10곳을 무상화 지원 대상에 제외시키면서 촉발되었다. 그 후 재일동포를 향한 혐오 발언과 증오 언설을 의미하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가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기무라 씨는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일본 사람이 안고 있는 불안감이 그 밑바닥에 있다고 진단했다. 자신감을 상실한 세대가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접근하는 곳이 우익단체이며 내셔널리즘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쟁특수를 맞이한 일본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의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불경기에 들어섰다.

1995년 무라야마 사회당 당수가 아시아 여성기금을 발족했지만 국회결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한 사회당이 무너지면서 정치와 경제에서 꿈을 잃은 민중은 자신감을 상실해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번지며 이른바 '오타쿠 문화(개인적인 취미의 세계)'가 유행했다.  

기무라씨는 "이런 와중에 '일본을 되찾자'라며 등장한 사람이 아베신조 입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정치인들은 '누구에게 빼앗긴 일본인가? 과거의 침략전쟁을 반성하는 사관은 '자학사관'이라며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조직해 '종군위안부는 없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근대산업화를 이룬 나라다'라며 센카쿠 열도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기무라씨 모습
ⓒ 오문수  
     

한국을 수십번 방문한 그는 한국에서 수년 전부터 들려오는 화해라는 말을 좋아한다. 화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매년 3월말 벚꽃이 필 때면 일본의 지인들과 함께 부산과 원폭피해자가 사는 합천을 방문한다.

기무라 씨는 5월 16일부터 18일까지 일본 시민활동가와 함께 다시 광주를 찾을 예정이다. 일본 시민활동가 12명과 함께 5월 광주를 방문해서 5.18 민주화운동을 배우기 위해서 사전 답사를 왔다.  

죄책감으로 닫힌 마음은 상대방의 역사를 알고 인권문제에 대해 고민할 때 비로소 열린 사고가 발휘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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