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빨리빨리‘와 비슷한 ‘뽈레뽈레‘, 무슨 뜻일까

  • 입력 2012.08.16 08:51
  • 기자명 오문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킬리만자로 등정기②] 백 명이 넘는 대규모 등정대

아프리카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에 ‘하쿠나 마타타‘가 있다. 영화 <라이언 킹>에도 나오고 국내 한 출판사가 발행한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도 ‘하쿠나 마타타‘가 나온다.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a)를 현지 가이드가 전하는 바로는 ‘문제 없다, 괜찮다, 걱정할 것 없다‘ 정도로 해석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단어는 킬리만자로를 여행하는 12일 동안 내내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 다녔다.

우리 일행이 첫날밤을 묵은 모시호텔을 떠나 킬리만자로 등정을 시작하기로 예정된 시각은 오전 9시 반. 아침 일찍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등산화 끈을 동여매고 차를 기다리는 데 우리를 싣고 킬리만자로 산자락까지 태워줄 차가 오지 않는다.

언제 가나 하면서 기다리는데 차 한 대가 들어온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반. 예정된 시간을 한 시간이나 지났다. 여기저기서 "왜 시간을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하쿠나 마타타"란다.


한국인이 누군가. 우리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다. 특히 외국에 나가보면 한국인을 상대하는 식당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을 빗대 "빨리빨리"라고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 있다.

케냐와 탄자니아어에는 우리와 발음이 비슷한 "뽈레뽈레"가 있다. 그러나 "뽈레뽈레"는 ‘천천히‘라는 뜻이다. ‘하쿠나 마타타‘와 ‘뽈레뽈레‘는 케냐에 입국할 때부터 출국할 때까지 귀 아프게 들었던 말이다.

등정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차 안에서 엄홍길 대장이 "몇 시간이나 차를 타고 가면 식당에 도착하느냐?"고 물었을 때 운전사는 "30분이면 도착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계속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를 보고 엄 대장은 화가 폭발했다.

엄 대장이 "너 아까도 30분, 또 지금도 30분이라고 대답했는데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묻자 그래도 30분이란다. 결국 3시간을 더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다 된 시각. ‘하쿠나 마타타‘ ‘뽈레뽈레‘의 위력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열대우림부터 키 작은 관목림까지 펼쳐지는 이곳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길을 1시간 반쯤 달리니 마차메게이트(해발 1800m)가 나왔다.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등산로는 여섯 개가 있다. 대부분 등산객들이 코스가 수월한 마랑구 루트를 선택하지만 우리가 마차메게이트를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식생과 아름다운 경치 때문이다.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있어서인지 동양계는 우리 팀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차메게이트가 있는 마을은 킬리만자로 상류의 용암지대에 스며들었던 물이 흘러나와서인지 바나나 나무와 파인애플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이 펼쳐진 살기 좋은 마을이다. 마을을 벗어나 등산로 입구인 게이트에 도착하니 입구에 많은 사람들이 서성댄다.

행색으로 보아 등산객은 아닌 것 같은데, 총을 든 군인이 지키는 정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서성거리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에게 물으니 등산객들의 짐을 지고 갈 ‘포터‘들이란다. ‘아니,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까‘라고 의아해했으나 등산하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혼자 힘으로 6천 미터가 되는 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05명의 대부대로 꾸려진 등정 대원

가이드인 엘리어스에게 "저 포터들이 지고 가는 짐 무게는 얼마며 하루에 품삯으로 얼마를 받느냐"고 묻자 1인당 약 20kg쯤이며 일당 10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약 20kg의 짐과 1만 원, 평지에서 그 정도의 무게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숨이 넘어갈 만큼 힘든 상황에서도 70도쯤의 경사진 바위틈을 짐을 지고 이동하는 그들을 보고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이렇게 힘든 포터 자리도 포터들을 책임지는 사람의 눈에 들어야 팀에 들어갈 수 있어 경쟁이 치열했다. 생각해 봤다. 나는 1만 원 받고는 죽어도 저 일을 못할 것 같다.

31명의 일행과 포터 및 현지 가이드가 포함된 등정팀은 105명의 대부대가 됐다. 정문 앞에서 선발된 포터들에게 각자 할당된 짐을 분배 받고 산을 오르기 시작한 시각은 낮 12시가량. 우리나라 같으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텐데 어쩌랴 ‘하쿠나 마타타, 뽈레뽈레‘인걸.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잘 다져진 길을 30분쯤 올라가니 울창한 열대우림지대가 나온다. 아름드리나무와 높이 20미터쯤 되는 나무들에는 줄기마다 이끼가 잔뜩 붙어 있다. 마치 근육이 울퉁불퉁한 괴물의 형상. 여수 엑스포장에서 괴물로 분장한 외국인들이 이곳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높이 올라갈수록 길이 점점 좁아지고 배수가 안 돼 곳곳이 질퍽질퍽하다. 웅덩이가 길을 가로막아 모두가 조심조심하며 제1 목적지를 향해 올라간다. 얼마쯤 지났을까. 조그만 공터가 나오고 앞서가던 네덜란드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한다.

포터들이 마련한 식사에는 계란말이와 그 밖에 여러 가지 반찬들이 보인다. 아니! 그런데 내 눈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등산객들의 식탁이다.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이곳까지 등산온 사람들이 식탁과 의자에 앉아서 황제 같은 식사를 하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했다.


"너희들 식사하는 모습이 황제 같아"라고 했더니 그들이 웃는다. 낮 2시가 넘은 시각. 우리팀 포터들이 일행과 합류해 점심으로 내놓은 것은 샌드위치 몇 조각에 계란말이다. 아니 이것을 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였단 말인가. 차라리 김밥이나 빵을 싸줬더라면 좀 더 일찍 제1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을 텐데... 또 한 번 놀란 것은 우리에게도 의자가 놓이고 접시에 음식이 놓였다는 것이다. ‘꼭 이렇게까지 고급스럽게까지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게 틀렸다는 것은 하루가 지나고 나서 바로 깨달았다.

출발한지 4시간쯤 지나니 관목숲이 나오고 주위는 천천히 어두워졌다. 3천 미터 높이의 고산을 컴컴한 밤에 오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손전등을 켜고 길을 따라 오르지만 온몸에 힘이 빠진다. 오후 8시께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저녁을 먹자마자 바로 잠자리에 쓰러졌다. 아! 3천 미터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6천 미터는 어떡하나... 아참! 잊었다. 하쿠나마타타!

>>관련기사 : 검은 대륙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 가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