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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비렁길, ‘이것‘ 먹으니 세상이 내 것

  • 입력 2012.08.27 17:28
  • 기자명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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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와 눈 그리고 입이 즐거운 비렁길... 숨어있던 비경에 가슴이 트여
지난 25일 오전 2시, 오랜만에 지인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수 화양면 백야도를 눈앞에 둔 산 꼭대기 황토방에 아름다운 선율이 흐릅니다. 제 귀가 오랜만에 호사를 누립니다. 오케스트라 예술 감독이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고 온 임송씨가 플루트를 붑니다.
토방에 든 일곱 명은 이미 술에 취했지만 나름대로 음악에 취할 자세를 갖춥니다. 은은한 분위기가 주위를 감쌉니다. 하지만 그 좋은 느낌,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플루트 연주가 끝나자 긴장된 순간이 다가왔거든요. 내일 갈 곳을 정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상징 킬리만자로 오른 오문수 선생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온 임송 단장이 다음 날 일정을 두고 날카롭게 맞섭니다. 새로 난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두고 두 사람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입니다. 오 선생은 위험하니 다음 기회로 미루자 말하고 임 단장은 비렁길 꽁무니라도 보잡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두 사람의 뜨거운 대화를 간단히 줄이면 다음과 같습니다.
순례자 : 내일 날씨 좋다는데 비렁길 꽁무니라도 보고 와야 한다.
등반가 : 폭우가 내렸다. 날씨 맑아도 비가 많이 왔기 때문에 걷기 위험하다.









파란 하늘 아래 섬들 보자 이구동성 "비렁길 걷자"
순례자와 등반가의 대결, 누가 이겼을까요? 결론은 무승부입니다. 25일 새벽에는 킬리만자로 등반가가 이겼죠. ‘위험하다‘는 중론에 산티아고 순례자가 뜻을 접었지요. 하지만 다음날 맑은 하늘을 보자 모두의 마음이 바뀐 겁니다. 일정을 급선회해서 결국 금오도 비렁길을 걷게 됐습니다.
물론, 일정이 바뀐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깊은 밤 킬리만자로 오른 등반가가 집으로 돌아갔거든요. 모두들 비렁길 안 걷기로 하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하늘이 맑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보자 생각이 바뀐 겁니다. 이구동성으로 여수 금오도 비렁길을 걷잡니다.
역시, ‘비렁길‘은 걷는다는 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5895m 킬리만자로 우후루 정상 오른 사람보다 산티아고 800Km를 걷고 온 사람 말이 더 귀에 와 닿았나 봅니다. 복잡한 사연을 품고 일행이 전남 여수 돌산 신기항에 도착했습니다.
비렁길 걸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신기항에 몰려들었습니다. 전날 여수에는 3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먼 바다에서는 태풍 볼라벤((BOLAVEN)이 올라온다고 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신기항에 도착한 사람들은 폭우와 태풍 중간에 낀 맑은 날씨를 잘 뽑은 거죠.









비렁길 2구간, 꽁꽁 숨어있는 비경에 가슴이 탁 트여
비렁길은 1구간과 2구간으로 나뉩니다. 1구간은 다시 1, 2코스가 나뉘고 2구간은 3, 4, 5코스로 나뉩니다. 비렁길은 몇 달 전까지 1구간만 열려 있었습니다. 함구미에서 두포(초포라고도 함)를 거쳐 직포까지 이어지는 1구간은 많은 사람들이 걷고 또 걸은 길이죠.
푸른 바다와 파도소리 때문인지 평일과 휴일을 따지지 않고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 인기를 안고 몇 달 전 여수시에서 새롭게 2구간을 개척했습니다. 직포에서 학동과 심포거쳐 안도대교 앞에 있는 장지마을까지 이어지는 2구간을 열어 관광객들에게 선 보이고 있습니다.
그날 일행은 2구간 4, 5코스를 둘러봤습니다. 맨 마지막 2구간 5코스인 장지마을에서 출발했죠. 매번 1구간 1, 2코스까지 왔다가 2구간 3, 4, 5코스는 다리 아프다는 핑계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이번에는 길을 거꾸로 걷기로 했습니다.









2구간의 매력, 자갈 구르는 소리와 파도가 직벽 때리는 소리
그렇게 걷기 시작한 비렁길 2구간, 결코 1구간 못지않더군요. 꽁꽁 숨어있는 비경에 가슴이 탁 트입니다. 비 핑계대고 이곳에 안 왔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습니다. 잘 알려진 비렁길 1구간도 아름답지만 2구간은 더 많은 비경을 숨기고 있습니다.
2구간의 자랑을 늘어놓자면 가장 먼저 귀가 즐겁습니다. 몽돌밭이 있는데 돌밭사이로 바닷물이 빠지면서 자갈 구르는 소리가 유명 오케스트라 연주 못잖습니다. 또, 절벽사이로 파도가 파고들어가 직벽을 들이치는데 쿵, 쿵하고 웅장한 소리가 들립니다.
귓가에 닿는 그 소리는 마치 큰 북 울리는 소리를 닮았습니다. 그 소리를 한참 들으며 걷다 보면 ‘일종고지‘가 나옵니다. 이곳 안 봤으면 말을 마세요. 그 비경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그야말로 신선이 놀다 깜박하고 돌아갈 시간을 잊을 만한 곳입니다.
아름다운 비렁길을 걷는데 눈길을 끄는 사람이 있더군요. 맨 앞서 산티아고 순례길 걷고 온 임송 단장이 산길을 걷습니다. 예쁜 우산 받쳐 들고 말이죠. 가지 많은 숲길에 접어들면 우산을 접었다가 너른 들판이 나오면 재빨리 우산을 받쳐 듭니다.









귀와 눈 그리고 입이 즐거운 ‘오감만족‘ 길
그 모습이 귀엽기까지 합니다. 설마 산티아고 순례길도 저 모양으로 걷지는 않았겠지요? 그 모습 바라보며 한참을 걸어 비렁길 2구간 4코스에 닿았습니다. 마지막 3코스 직포까지는 차로 이동했습니다. 걸음을 멈춘 직포에서 문어 한 마리를 삶아 먹고 그 국물에 라면을 말아 먹었습니다.
문어와 라면이 뒤섞여 들어간 배를 바라보니 세상이 모두 제 것 같더군요. 여름 끝자락에 비렁길 2구간을 둘러봤습니다. 비렁길은 가을되면 더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때는 몽돌밭 물 빠지는 소리도 더 맑게 들리겠죠.
가을엔 큰 비 올일 없을 테니 킬리만자로 등반한 오 선생과 함께 걸어봐야지요. 오 선생은 귀만 즐거웠는데 일행은 귀와 눈 그리고 입이 즐거웠습니다. 그야말로 비렁길 걸으니 오감만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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