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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특별법 제정, 힘 보태 달라"

  • 입력 2012.10.20 11:07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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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64주기 여수지역 합동위령제 열려

여순사건 64주기인 10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여수 여서동 미관광장에서는 ‘진실 화해와 상생을 위한 첫 걸음‘이라는 주제로 합동위령제와 추모식이 열렸다.

1부 합동위령제는 여수향교(정교:정오균)가, 2부 추모식은 여수시가 주최한 식장에는 유족과 시민 150명이 참석했다. 행사를 주관한 여순사건 여수유족회 황태홍 회장의 추모사다.

"위령제를 통해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연좌제 등으로 고통 받았던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계기가 되기를 빕니다. 여순사건은 우리 유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수시민 전체의 문제로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에 함께 힘을 보태 주시기 바랍니다."

진실규명이 확정된 유족 300명, 정부 상대로 피해배상소송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에서 진실규명이 확정된 여순사건 유족들은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소송에 나섰다. 진화위에서 진실규명이 결정된 여순사건 희생자는 약 1000여 명. 희생자는 크게 지역별 사건 피해자와 유형별 사건 피해자로 구별할 수 있는데, 이는 유족과 시민사회·학계의 약 1만여 명 피학살자 주장과는 10배 정도의 차이가 있다.

지역별 사건은 여수·순천·구례·광양·고흥·보성 등 전남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전라남도·전라북도·경상남도 일부지역에서 발생한 23개 지역의 사건이다. 이 지역에서 여순사건 시기에 발생한 유형별사건은 군경토벌사건·국민보도연맹사건·형무소재소자희생사건·군경에 의한 민간인희생사건(이른바 부역혐의자 희생사건)·적대세력(반군과 지방좌익 등)에 의한 희생사건 등이다.

이를 토대로 여순사건 피해배상 소송은 현재 지역별 유족회 단위로 이뤄지고 있는데, 여수와 순천·광양과 보성 일부 지역은 소송이 진행 중이고, 기타 구례지역 등은 유족들이 연로하고 실무자가 없어서 소송을 포기한 상태이다.

한편, 이번 여순사건 피해배상소송은 진화위에서 진실규명 결정된 여순사건 여수지역 희생자 300여 명으로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완익 변호사가 선임됐다.


지금까지 여수지역 여순사건 피해자들의 소송 경과를 보면 국민보도연맹사건 소송(34명)·군경토벌사건 소송(119명)·향후소송 계획사건(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군경에 의한 민간인희생사건·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등이다. 이들은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소멸시효 제도 관계로 소송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여순사건 유족회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와 함께 여순사건 피해자가 1/10에 그친 진화위 진실규명이 대단히 미흡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진화위의 여순사건 미신청자와 진실규명 불능자(각하 포함)를 대상으로 하는 여순사건 단독 특별법 제정을 18대 국회에 이어 19대 국회에서도 김성곤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내세워 추진하고 있다.


여순사건 특별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진화위 진실결정자 승계 인정 ▲ 진화위 결정불능 및 각하에 대한 재조사 ▲ 신청자에 대한 추가조사 ▲ 평화 인권 교육과 추모위령사업을 위한 위령묘역조성 ▲ 위령탑건립 ▲여수·순천 10·19사건사료관 건립 ▲ 희생자 중 필요한 자에게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지급 등이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

여순사건 피해자 중에는 송재원(당시 22세)씨가 있다. 당시 14세였던 동생 송재상(79)씨의 증언이다.

전남 고흥군 동강면 마륜리 마동부락에 사는 송씨의 아버지는 면 유지들이 중심이 된 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억지로 떠맡았다. 아들인 송재원씨는 당시 민심이 하도 흉흉해 면소재지에 피해 있었으나 동지에 "별일 있겠나"하고 안심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대선면에 주둔한 진압군이 동네를 포위해 젊은이들을 끌고 갔다. 진압군에 있는 좌익분자 중 하나가 송씨를 좌익이라고 무고해 끌려간 5~6명과 함께 총살당했다(1948년 12월 27일 경).


"형님에게는 5살 된 아들과 돌 지난 아이가 하나 있었어요. 아버지는 장남이 죽자 날마다 술로 살다가 위암이 걸려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화병이 나 돌아가셨어요. 부모님이 그렇게 되자 가세가 기울어 순천 농림학교(순천대학교의 전신)에 합격했는데 학교를 못 다니게 됐어요. 돌 지난 조카를 아내가 젖을 먹여 키웠죠."

총살당한 송재원씨의 아들 송철호씨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억울하게 돌아가시고 나서 저희 집은 풍비박산이 났죠. 어머니는 돌 지난 제 동생과 저를 두고 재가를 해서 저희는 졸지에 고아가 돼 작은 아버지 집에서 자랐죠. 아버지 일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나고 기가 막혀요."

추모식장에 참석한 피해자 가족들은 제주는 특별법이 제정됐는데 여수는 진척이 되지 않는 점에 대해 불만을 말하며 하루 빨리 특별법이 제정되길 요구했다. 진혼제를 바라보는 유족과 시민들은 구천에 떠돌고 있는 영령들이 편안히 잠들기를 빌면서 추모제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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