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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당한 ‘단일화 촉구‘ 작가 "감옥 가도 그리겠다"

  • 입력 2012.11.15 17:01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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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포스터 그린 작가 ‘이하‘씨

지난 11일. 서울시선관위가 문재인·안철수 두 대선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포스터를 제작해 공공장소에 붙인 팝아트 작가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팝아트 작가 이하(44)씨는 지난 6일과 7일 서울 종로·신촌·여의도 일대 버스정류장 등에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포스터 500여 장을 붙였다는 혐의로 서울시선관위로부터 고발당했다.

포스터는 두 후보의 얼굴을 반반씩 그려서 합성하고, 그 아래쪽에 영어로 ‘Co+INNOVATION(공동혁신)‘이란 문구를 새겨넣었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93조1항은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벽보, 사진, 인쇄물 등을 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팝아트 작가 이하씨와 지난 12일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지난 6월에도 박근혜 후보의 포스터를 붙여 고발당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

"부산진 선관위에서 조사한 후 선거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부산진 경찰서에서 조사 후 유죄 취지로 부산지검으로 송치했습니다. 부산지검까지 조사를 마쳤지만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검찰조사에서 기소를 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결정을 안 하신 듯합니다."

- 당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하기도 했는데 반응은 어땠나요.

"솔직히 다양한 곳에서 전화를 꽤 많이 받았습니다. 대부분 지인들의 안부전화였는데요. 시민단체나 인권단체 그리고 정치인에게 전화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대부분 제게 뭔가 도움을 주고자 하시는 분들이었어요.

물론 제게 도움을 주시고자 하는 깊은 뜻은 알지만, 그런 도움을 받으면 저의 순수성을 잃게 되겠죠.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벌금을 대신 내주겠다거나 모금운동을 열어 주시겠다는 분들도 계셨는데 그것도 거절했습니다. 만일 저에게 벌금형이 확정된다면 교도소에 들어가 벽화를 제작할 생각입니다."(관련기사 : 이 포스터 그렸다고 검찰조사? "겁 안 나요")

 


- 이번에 서울시 일원에서 두 야당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포스터를 제작해 선관위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했는데요.

"총 1000장의 포스터(A4사이즈)를 제작하여 11월 6일과 7일엔 종로, 신촌, 여의도에 약 500여 장을 부착했고요. 8일엔 부산에 부착하러 갔다가 경찰 분들이 잠복하고 계셔서 포기했습니다. 9일 광주로 이동하여 구 전남도청 자리에 400여 장을 부착했습니다. 서울선관위에서 지난 7일 조사를 받았고 광주선관위에서는 12일,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 포스터는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의미가 있었고요. 두 분의 단일화를 기다리시는 많은 시민 분들에게 힘이 되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단일화된 분이 꼭 대선에서 승리하셔서 대한민국을 제대로 만들어 달라는 의미에서 Co+Innovation(공동혁신)이란 문구를 넣었습니다."

- 지난번과 달리 선거가 50일도 남지 않아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일반인들은 경찰에서 오라고만 해도 떨린다고 하는데.

"이해가 안 가겠지만 이 일을 하면서 무섭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하는 퍼포먼스에 신념이 있고 그 신념이 처벌의 두려움보다 우선하는 것 같습니다."

- 예술에 관한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죠. 예술가들은 사회현상과 유리돼 별난 세상에서 존재해야 하나요, 아니면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사회현상을 고발하고 대중에게 메시지를 던져야 하나요?

"예술은 세상의 중심이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은 세상이지 예술이 아닙니다. 예술의 기능은 따로 있습니다. 예술은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 논쟁을 통해 세상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지속되는 한 끊임없이 현실의 문제가 생깁니다. 그 현실은 당대에 어떤 의식을 줍니다. 예술가는 그 의식을 정리하여 작품으로 만들어 발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술의 행위가 지속되면 문화가 됩니다. 문화의 뒤를 이어 경제와 교육 등이 오고 맨 나중에 시스템을 체계화하는 법, 즉 정치가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과 정치는 근본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태생적으로 맨 앞에서 의식을 짚어내고 그 의식들을 정리하여 작품으로 발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작품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겠죠."

- 끊임없이 사회현상을 관찰하고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데, 그 메시지의 원천은 어디서 나옵니까?

"상식입니다. 그 기본적인 상식조차 말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 이번 야당 대선후보 단일화 포스터로 또 한 번 파장이 일어날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총 일곱 번 거리로 나갔는데요, 지금껏 기자님들에게 취재를 요청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몫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기자님들이 절 찾고 기사화하고 이슈를 만드시는 것은 제가 선택하는 몫이 아닙니다. 그래서 별 관심 없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신념이 잘못된 거라면 그건 예술가가 현장에서 직감적으로 느낍니다. 절 비난하는 분들보다는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보니 제 신념이 잘못된 것 같진 않습니다."

- 끝으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예술인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나 철학은 무엇일까요?

"현 시대의 예술가들이 너무 제도권의 테두리를 지향하는 거 같습니다. 솔직히 현시대의 예술판은 거대하게 타락한 비즈니스의 세계입니다. 비즈니스가 예술가를 쫓아오면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지만 예술가가 비즈니스를 쫓으면 더 이상 좋은 예술을 할 수 없습니다. 비즈니스적인 마인드가 발달하신 분이 그 길을 간다면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에게는 미술에 대한 약간의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을 갤러리나 부자들에게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회로부터 상처받는 시민 분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피로감을 풀어드리는데 저의 재능을 쓰고 싶습니다. 물론 제도권 미술판에서도 절 초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길이 행복하고 적성에 맞습니다."


작가 이하씨와 인터뷰를 마치고 근황을 물었다. 그는 현재 경기도 수원에서 작업실을 얻어 그림을 그리며 생활한다. 돈이 필요하면 용접 일을 하기도 한다. 때때로 초상화를 의뢰하는 분들에게 초상화를 그려드리는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고 행복하단다.

지금껏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총 8번의 조사를 받았다. 삶의 궤적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위를 설명하다보면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가끔 조사관으로부터 ‘존경합니다. 팬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는 그는 "참 아이러니한 한국적인 비극"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는 한국에도 ‘길거리 예술‘의 시대가 반드시 온다"며 자신의 행위가 "표현의 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담아 한국사회와 후배작가들에게 메시지를 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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