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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복에 유관순 옷까지... 기발한 운동회

  • 입력 2013.06.07 12:16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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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무선중학교 학생들이 반 대항 달리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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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키모들에게 에어컨 팔기, 아프리카에서 신발 팔기‘ 어디서 들어본 듯한 문구다. 불가능한 이야기일까? 요즘 아이들은 과거 천편일률적인 행동과 사고를 벗어나 변화를 원하며 그 속에서도 재미를 추구한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우주의 에너지 총량이 향상 보존된다‘는 에너지보존법칙과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가 존재한다. 김정운 교수는 그의 저서 <노는 만큼 성공한다>에서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네트워킹을 찾아내는 인간의 지적 창의력이 21세기 사회 발전의 근본 동력이 된다"고 했다.

새로운 지식은 기존의 정보와 정보들 간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며 이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그러나 창의성은 적극적으로 ‘재미‘를 추구할 때 개발된다고 한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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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운동을 위해 모인 학생들의 옷이 총천연색이다. 반별 회의를 통해 선택한 옷들이 개성 만점이다. 26반에서 26색깔이 운동장에 모였으니 가히 무지개 빛 운동회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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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력은 ‘재미‘를 추구할 때 개발된다. 이 ‘재미‘가 근면 성실을 뛰어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과거 노동과 자본이 없는 나라는 망했듯이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은 여수 무선중학교 체육대회 날이다. 개회식을 위해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복장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하고 한편으론 흐뭇했다. 20세기에 학교를 다니고 통일된 복장이라는 뜻의 ‘유니폼‘ 문화에만 젖어있는 시각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울긋불긋한 복장, 2차 세계대전 시 독일 유태인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이 입었던 복장, 몸뻬바지, 얼룩말무늬 옷, 표범무늬 옷, 물방울무늬 옷 등 다양하다. 통틀어 26개 반이니 26가지의 반티가 총천연색으로 빛난다. 한마디로 무지개 빛 체육대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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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복장을 한 3학년 1반 학생들이 줄다리기를 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3학년이 마지막이라 확 튀는 걸로 하자며 선택한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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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학생들이 회의를 통해 선정한 반티를 입고 멋진 폼을 잡은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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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반티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유관순 복장이다. 검은 치마에 하얀 저고리에는 옷고름까지 달려있다. 그 중에서 단연 압권은 환자복. 환자복 무늬들 사이에는 ‘병원‘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으니 보는 이들의 웃음을 사기에 충분하다.

독립군 복장이기도 하고 유관순 복장이라고도 칭한 한복을 고른 김은미(3-1)학생에게 왜 그런 옷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묻자 "3학년 마지막이라 확 튀는 걸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반 아이들이 동의했어요"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거들었다. "만족해요"

교직원과 모든 학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환자복을 선택한 주예지(3-6) 학생에게 보통 상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반티를 선택한 이유와 주위의 반응을 들었다.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처럼 운동회 때 미치듯 열심히 하자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등교할 때 미친 사람 취급 받았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병원에서 나온 사람이냐며 신고당하니까 조심하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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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에 있는 환자처럼 미친듯이 열심히 운동하자는 뜻에서 환자복을 선택했다는 3학년 6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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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예지 학생 옆에 서있던 학생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처음에 선택할 때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입어보니까 후회가 돼요. 어딘가 병자 같다며 엄마가 한번 입고 버리라고 했어요."

일반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옷을 선택한 조익현(3-9) 학생은 "튀는 옷도 각자의 개성이 있어 괜찮아요. 하지만 튀는 옷은 체육대회 끝나면 못 입고 다니기 때문에 끝나고 나서도 입을 수 있는 무난한 옷을 골랐습니다"라고 말했다.

체육교사이자 3학년 6반 담임인 박현권 교사에게 학생들이 반티를 입는다고제재하지 않았는지, 자신이 맡은 학급 학생들이 환자복을 선택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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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깜찍하고 발랄한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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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이라도 애들이 복장에 구애받지 않고 반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 하나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하지 않았습니다. 반티를 선정할 때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그냥 두었는데 체육대회 이틀 전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야! 우리 반에 환자가 왜 있어?‘라며 물었죠. 애들이 뭐라고 그런 줄 아세요? ‘선생님을 놀래고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라고 하더군요."

다양한 생각을하는 아이들은 스스로 크고 있었다. 환자복은 맘대로 못 입으니 가장 값싼 것으로 구입했고, 주위의 얘기를 듣고 나서는 스스로 판단하며 삶에 대한 가치관을 세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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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마다 개성있는 복장을 선택한 학생들이 응원을 하다 포즈를 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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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익숙한 것, 낡은 것을 뒤집어 낯설게 하는 능력이다.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라는 이들에게는 미래가 있다. 한복을 입고, 환자복을 입은 채 악을 쓰며 줄다리기 하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학생에게서 희망을 본다.

미래의 일을 누가 미리 점칠 수 있을까? 그러나 창의적 생각에 젖은 우리의 아이들을 예단할 수는 있다. 유관순 복장을 하고 환자복을 입고 체육대회에 나섰던 아이들이 또 다른 스티브 잡스가 될 날을 그려 본다.


덧붙이는 글 |다음 블로그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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