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김광호교육칼럼4]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 입력 2013.06.10 19:31
  • 기자명 yosupia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사색(思索)하지?


  
김광호

여양고등학교 교사 김광호


우리나라 교육의 특징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고 암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공부한 내용이 일상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단편적 지식이라도 머리를 자극하기 때문에 전혀 대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렇지만 암기 및 주입식 교육은 체, 덕, 지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 목표에는 턱없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사고의 혁명을 일으키지도 못한다.

이 낮은 수준의 입시교육은 필기와 암기를 통해 정답 확정짓기까지는 가능하지만 심오한 사색까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낮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는 사색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며 오히려 아이들의 사색을 억압하고 사색의 힘을 소멸시킬 뿐이다. 그렇다면 교육의 방향을 바꿀 대안은 없는 것일까? 우리 모두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답은 희미하지만 물음표 교육을 현장에서 실시해야만 아이들에게 지혜를 줄 수 있다.

이제는 진실을 알아야한다.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 그리고 과외 교육까지 받으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그들의 두뇌와 삶에 큰 변화가 없었던 근원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총기(聰氣)를 잃고 지혜(智慧)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잠시 학교의 현장을 들여다보자. 대부분의 학교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이 교육방식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현 교육 제도는 일제에 의해서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학교제도를 그대로 모방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되었다. 또한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학교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배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속담에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12년의 교육을 받고도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다만 국, 영, 수의 편차만을 보인 채 고만고만하게 학교를 졸업한다. 더나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해도 지식만 약간 늘어날 뿐 지혜의 영역에서는 초 중등 때와 별 차이가 없다. 배우면 배울수록 두뇌가 열리고 성장하고 변화하기는커녕 무능한 사람으로 전락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혹여 우리나라 공교육은 지시하는 일만 할 줄 아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이 시점에서 동서양의 천재들이 하나같이 “공부는 사색에 있다”라고 강조한 금언(金言)을 조심스럽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색이 빠진 공부는 허상이요, 가짜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몇몇 천재들의 말을 음미해보자.

성호 이익은 사색이 없는 공부를 이렇게 말했다.“단지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책을 읊어도 희고 검은 것에 대해 말은 할 줄 알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장님처럼 되고 만다.”또 개혁군주 정조는 책을 많이 읽고 그 내용을 잘 기억하는 박람강기(博覽强記)는 겉만 아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궁리(窮理) 및 격물(格物)하여 깊이 파고 들어라. 그럴 때라야만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궁리 및 격물이 완벽하면 실천은 저절로 뒤따른다’라고 말했다.

공자는 <논어>에서“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子曰 學而不思則罔하고 思而不學則殆니라)”라고 설파했으며,‘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을 쓴 영국의 천재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독서(공부)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얻는 것에 불과하다. 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사색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21세기 석학 앨빈 토플러는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내 통찰력의 근원은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이다.”라고 덧붙였다.

위에서 천재들은 하나같이 공부는 끝없이 사색에 잠겨야하는 것이고, 사색의 와중에서 머리와 가슴을 치는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 그렇게 공부해야만 심장은 뜨겁게 고동치고 입술에선 흥겨운 노래가 나오며 손과 발은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다.

교육방법에는 왕도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정답을 정해놓고 편협한 지식 익히기에 열정을 쏟고 있다. 이젠 학생들에게‘사색하다 죽어버려라’라는 극단적인 처방전을 제시하고 싶다. 더불어‘우리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 사색하지?’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잘못된 교육을 바라보는 서애 유성룡 선생의 안타까움 음성을 전하면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다섯 수레의 책을 술술 암송하면서도 그 의미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사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