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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면 옥적마을 한 ‘빈집’의 변신

금요일마다 열리는 ‘미용실’ 겸 ‘사랑방’
미용사 채성순씨의 10년 봉사

  • 입력 2019.05.04 11:17
  • 수정 2019.05.10 13:46
  • 기자명 임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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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 화양면 옥적리 빈집.

시골엔 빈집이 많다. 빈집이 생기는 패턴은 거의 일정하다. 홀로 사시는 나마니 어르신이 편찮아 병원과 객지 자식 집을 오갈 때 마당에 풀이 돋고, 급기야 고향집에 못 오고 요양원에 입소하시거나 병원 침대신세를 지면 이제 지붕이 비가 새고 한 귀퉁이가 헌다. 그러다 더는 누구도 찾아오지 못하게 될 때 객지의 자녀들에 의해 철거되거나 그도 저도 못하면 그냥 방치된 폐가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건 공식이다. 어느 동네를 가건 대한민국 시골 현 주소다.

옥적마을 돌 표지석

 

여수시 화양면 옥적마을도 사정은 같다. 빈집이 마을 입구에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거기는 빈집이 아니다.

화양면 시골길을 자동차로 한참 들어가면 가나헌장애인중증거주시설이 있고 조금 더 가면 멋진 돌 표지석이 안내하는 옥적마을이 나타난다.

마을 앞 버스정류장

마을 어귀 버스정류장이 이곳의 한산함을 보여주고 있다. 정류장에 내리면 누구나 사용할 작은 수레가 시골 점잖은 어르신 마냥 서 있다. 마을에는 점잖은 빈집이 한 채 있다. 빈집은 금요일 마다 북적거리는 할머니들 사랑방이 된다.

미용사 채성순씨(64)가 금요일마다 미용실을 개업(?)한 탓이다. 10년째 성업 중이다.

지난 금요일(52) 그날도 미용사 채성순씨는 아침채비를 서둔다. 평소보다 빨리 일어나 반찬 몇 가지를 챙겨 집을 나서는 시각은 오전 6.

여수시 화양면 옥적마을까지는 채성순 미용사의 시내 집에서 한 시간 거리다. 금요일이면 반복되는 일이다.

모처럼 들른 빈집은 온기도 약하고 사전에 준비도 해야 하는 탓에 채성순 미용사가 이른 6시부터 서두르는 이유다. 짐을 풀고 숨 돌린 틈도 없이 미용소품을 준비하면 한 두 분씩 찾아온다. 커트에 이어 퍼머를 해야 하는 절차 때문에 시간이 소요된다.

빈 집을 이용해 미용봉사를 하는 채정순씨

이날도 15분 어르신이 다녀갔다.

한 쪽 방에서는 미용사 선생님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는가 하면 옆 방에는 수건을 둘러 쓴 퍼머머리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얘기꽃을 피운다. 고추모종 심은 이야기, 자식 사업 얘기, 손자 손녀 자랑에, 살짝 어느 분 흉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퍼머머리 할머니들이 옆 방에서 얘기 꽃을 피운다. 점심도 함께 나눈다.

 

그러면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아 참. 이 빈집이 금요미용실이 된 사연이 있다.

10여년 전 여수의 노인복지회관 봉사팀 일원으로 이곳 옥적마을로 미용봉사를 오게 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고는 없지만 어르신들을 도와주고 나서 느낀 민족감과 봉사를 하며 살아간다는 긍지가 있어서 시골 옥적 파견 미용사를 계속하고 있다.

실은 그는 이곳에 처음 봉사오기 전에 이미 미용실 운영에서는 은퇴하고, 가진 기술을 이용해 봉사활동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연이 무섭다고 말했다. 질기고 그만두지 못한 상황을 그는 무섭다고 표현한 것이다.

특별한 게 없어요. 희안하게 인연이 되어서 시작한 일이고요. 또 기왕에 봉사하려고 했으니까 끝까지 가야겠다 그런 마음이죠. 인연이란 게 무서워요!”

질기고 무서운 인연은 서로 만든다. 이 마을 이장은 마을에서 미용봉사 하는 채성순 미용사의 사정을 보고는 서울 사는 빈집의 주인에게 청을 넣었다. 이러저러한 사정을 안 집 주인은 흔쾌히 빈집 사용을 허락했다. 주인 없이 허허로울 빈집은 이렇게 사랑방이 되고 금요 미용실이 되었다.

10년이 지나면서 도중에 이 집도 비가 새고 헐었으나 고마운 손길이 이어져 지속할 수 있었다. 

"돌산 달마사 주지스님(명현 스님)이 사정을 듣고 몇 년전에 지붕 수리를 몇 백만원 들여서 해줬어요. 그러면서 건강하게 이른살까지 봉사하고 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 절에서는 사골 어르신들 밥도 해주라고 가끔 쌀도 보내 주고 그래요" 
 

시간이 걸리는 퍼머를 하면서 점심 끼니가 다가오면, 오신 분 중에 누구 할 것 없이 밥솥에 밥을 한다. 채성순 미용사가 가져온 반찬으로 모두 점심을 함께 나눈다. 그야말로 마을 사랑방의 금요오찬 열렸다. 오찬장이니 찬사로 이어진다.

영 좋소이! 아주 편해요. 이 할망구들에게는 고맙죠

여기 오면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도 만나고 따뜻한 점심도 먹고... ”

시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 있다요? 끝나면 편하게 집에까지 데려다 주기까지 하요

이런 고마움 때문에 서로 미안해 하며 십시일반 재료비도 보태면서 사랑방 유지는 겨우겨우 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곁에서 보기에 채성순 미용사의 노력과 봉사가 빈집을 사랑방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는 제법 수완 발휘하는 사업가인양 오래 댕기니까 돈 좀 벌었죠라고 하는데,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사람은 없다.

미용 재료들

오늘 가져온 반찬과 선반에 채워져 있는 미용 재료들. 방에 머물며 돌려야 하는 보일러, 끊기지 않고 켜야하는 전기.  쉽지 않은 짐이고 비용이다.

할머니 한 분이 곁에서 누가 여기 전기세나, 저 분 자동차 기름 값이라도 조금 보태주면 좋겠소하며 농담처럼 던진 말이 내겐 하소연이 담긴 여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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