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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중항쟁 "시대의 아픔을 넘어 왜곡 말아야할 아픈 역사"

여수넷통뉴스, 여수뉴스타임즈 공동 주최한 광주 5월을 독자와 걷다! 역사기행

  • 입력 2019.05.19 18:34
  • 수정 2019.05.20 07:03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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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26일 5시 광주 금남로 옛도청에서 윤상원 열사가 내외신 기자들을 모아놓고 가진 기자회견 장소에 당시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실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의 역사로 기록할 것입니다.“

80년 5월 26일 5시. 광주 금남로 옛도청(현재 5.18민주평화기념관)에서 윤상원 열사가 내외신 기자들을 모아놓고 했던 기자회견은 가슴을 울렸다.

위대한 승리의 역사를 쓴 39년전 5월 광주!

당시 계엄군의 폭정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광주시민들의 궐기를 읽을 수 있는 문구가 눈에 확 띄었다.

”우리 광주시민은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5.18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에 민주평화교류원 방문자센터에서 안내를 담당한 도슨트 신진 해설사는 ”이곳은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을 때 가장 치열한 마지막 교전을 벌였던 곳“이라며 ”당시 이곳은 흩어진 시신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시신을 염하고 입관했던 자리였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간의 이야기 전시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당시 이곳은 모든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죠. 평화로운 일요일 어느날 잔인한 살상이 이뤄졌습니다. 3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금남로에 운집했죠. 계엄군은 특수훈련을 받은 정예부대였고 그들의 화력은 엄청났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전쟁보다 큰 불상사가 일어나 화해와 타협으로 국면을 전환하려 노력했지만 계엄군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도청 3층 옥상에 있는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계엄군의 집단사격이 이뤄집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가 그때 의상황을 잘 말해 줍니다.“

이후 27일 최후의 교전속에 10일간의 계엄 상황은 막을 내린다. 5.18민중항쟁 39주년을 맞아 18일 망월동을 참배했다.

여수넷통뉴스와 여수뉴스타임즈가 공동  주최하는 광주 5월을 독자와 걷다! 역사기행에서 참가자들의 기념촬영 모습

매년 <여수넷통뉴스>와 <여수뉴스타임즈>가 공동 주최한 '광주 5월을 독자와 걷다! 역사기행'이 시작됐다. 아침 8시 우중속에 40여명을 태운 버스가 여수를 출발했다.

일행은 갓돌을 지난 아이부터 일흔이 넘은 노장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참가했다.

이날 최고령은 70대 김동훈,이경자씨 부부다. 이씨는 "지난 4월 연천DMZ 인간띠 행사가 오늘로 이어졌다"면서 "5.18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 현장에 오니 마음이 뭉클하다"며 “아침에 비가 많이 오는 것을 보면서 5.18 희생자들의 눈물이었고 아픔이었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참가 소감을 전했다.

아이들과 함께 참가한 30대 여성은 “제 생일이 5.18 역사적인 날에 태어나서, 생일만 언급되면 항상 사람들이 저에게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해 얘기한다“면서 ”저는 경기도가 고향이지만 전라도에 시집와서 항상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저희 아들과 딸에게 5.18을 알려주기 위해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날 일행들은 5.18기념식이 열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5.18민주평화기념관과 아시아 문화전화전당을 먼저 찾았다. 국립아시아 문화전화전당(ACC)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라이브러리 파크와 어린이 문화정보원을 둘러보고 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예술극장을 구경했다.

전두환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산화해간 5월 영령이 잠든 신묘역 모습
5.18 망월동 신묘역에 당시 전남대학생회장 박관현 열사의 묘소앞에 참배하는 모습

점심 식사후 망월동 구묘역과 신묘역을 참배했다.

5.18 구묘역 입구에 도착하자 전두환 박석을 밟는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었다. 한 일행은 ”전두환이 누워있으니 창시가 터지게 밟아야 한다“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참배객 마다 살인마 전두환을 얼마나 밟았던지 박석이 꺼져 있었다. 그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케 했다.

구묘역 입구에는 5·18 무력 진압의 진상을 맨 처음 전 세계에 알린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품이 안장된 묘비는 참배객이 줄을 이었다.

5·18 무력 진압의 진상을 맨 처음 전 세계에 알린 영화 ‘택시 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품이 안장된 묘비 모습

특히 6월 항쟁의 한복판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다 경찰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 참배는 인기 코스다. 바로 옆에는 전남대 총학생회 회장인 박관현 열사의 묘소가 나란히 있다. 또 주변에 김준배 열사의 묘역도 자리하고 있다. 비석에 한총련 전사 민중의 아들 투쟁의 불꽃이라고 새겨진 묘역에 도착하자 여수뉴스타임즈 곽준호 부장의 증언이 시작됐다.

망월동 구묘역에 잠든 김준배 열사 묘역

”97년 수배당시 준배형은 현상금 500만 원짜리 1급수배자였어요. 1급은 간첩에 준하는 수준인데 수배생활을 7년 가까이 했죠. 그러다가 경찰의 폭력적인 검거과정에서 아파트 13층에서 죽습니다. 프락치에 의해 알아낸 보안수사대가 형이 은신하고 있는 장소를 알아내 폭력적인 검거과정에서 형이 죽습니다. 그것도 추석날 아침에....

당시까지만 하다더라도 열사들을 죽여 놓고 시신을 뺏어가 맘대로 화장해서 뿌려버렸어요. 39일 동안 저희들이 전남대 영안실에서 형 시신을 탈취당할까봐 지켰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형의 아버님이 아들의 삶을 대신살고 싶다면서 노구의 나이에 농민회 운동에 뛰어들어 장흥 농민회 회장을 하시면서 농민운동을 이끌었고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여수넷통뉴스 엄길수 이사장은 ”여수는 5.18유공자 31명이 살고 계시는데 여수시민들과 함께 5월 역사기행을 통해 5월을 희망으로 맞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5.18을 왜곡하는 자한당의 형태를 보면서 우리 역사가 이제 바로서야 하지 않냐는 피끊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가다듬으며 오늘 영령들에게 엄숙하게 약속드리고 싶다“며 ”다시는 민주화 운동의 아픔이 재생산 되지 않아야 되겠다“라고 다짐했다. 

정치권 "역사왜곡 처벌법 국회입법 처리하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화환이 줄 선가운데 시민들의 참배가 이어진 유영봉안소 모습

이후 신묘역을 향했다. 이곳은 오전 대통령이 참석해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행사가 열렸다. 이날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개탄과 경고 다짐의 발언이 쏟아졌다.

"5.18의 진실은 보수·진보로 나뉠 수 없습니다. 광주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바로 '자유'이고 '민주주의'였기 때문입니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 진실을 통한 화해만이 진정한 국민통합의 길임을 오늘의 광주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지난해 3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아직도 위원회가 출범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와 정치권이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 주실 것을 촉구합니다.”

관심을 끌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자 일부 시민들이 5·18 망언 의원 징계와 5·18특별법 개정안 처리 등 밀린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 '빈손'으로 재차 광주 방문을 강행한 것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황대표는 이날 평소와 다르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이 연출됐다.

오늘 5월 역사여행을 마치며 민주주의를 다시한번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39년 전 무자비한 신군부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온몸을 던져 독재에 맞섰기에 오늘날 우리가 그 열매를 누리고 있다. 다시한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산화해간 광주 5월 영령들의 그 숭고한 정신과 값진 희생에 큰 위로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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