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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가시거든 헤밍웨이가 추천한 '이곳'부터

누에보 다리와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도시, 론다

  • 입력 2019.05.22 17:34
  • 수정 2019.05.22 17:35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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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달레빈 강 협곡을 가로지르는 "누에보 다리"와 신시가지가 보인다 ⓒ오문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가면 매력적인 다리를 가진 도시 '론다'가 있다. 과달레빈 강이 만든 타호 협곡 위에 조성된 이 도시는 험준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론다의 풍경에 반한 헤밍웨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추천했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하얀 집들과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잇는 누에보 다리는 스페인의 숨은 비경이다. 1735년에 세워진 옛 다리가 무너진 후 1751년에 새로 짓기 시작해 40년 만에 완공됐다. 때문에 '새것'이라는 뜻의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로 불리게 됐다.

론다의 과달레빈 강을 흐르는 협곡 위에 세워진 론다 신시가지 모습 조금만 더 가면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나온다 ⓒ오문수
길이 30m의 짧은 다리지만 엄청난 깊이의 과달레빈 강 위에 새로운 다리 "누에보 다리"를 놓기 위해 40년이나 걸렸다. 다리를 건너가면 론다 구시가지가 나오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500미터쯤 가면 헤밍웨이가 집필했던 집이 나온다 ⓒ오문수

길이 30m의 짧은 다리지만 험준한 협곡과 그 아래 흐르는 과달레빈 강(Rio Guadalevin)을 내려다보면 아찔함을 느낀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 골목길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500미터쯤 걸으면 헤밍웨이가 집필 활동을 했다는 집이 나온다. 헤밍웨이의 체취를 맛보고 싶어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하필 일요일이었기 때문이다.

 


헤밍웨이가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유럽은 그만큼 줄어드니, 그건 곶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위는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의 <기도문> 중 일부이다. 시인은 "우리 각자는 인류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다른 이의 일이 곧 나 자신의 일이 된다"며 인류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헤밍웨이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제목은 존던의 시 <기도문>에서 따왔다. 1940년대 유럽에는 파시즘과 함께 나치즘이 세력을 떨치기 시작했다. 헤밍웨이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문학도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문학도 현실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작가들을 행동주의문학가라고 일컫는다. 행동주의문학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프랑스에서 나타난 문학 운동으로 허무주의를 비판하면서, 문학이 인간의 내면세계만을 묘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작가의 활동과 작품에 있어서 혁명적이고 모험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하는 주의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조지 오웰, 생 떽쥐베리, 파블로 네루다, 옥따비오 빠스, 세사를 바예호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샘우드 감독이 감독하고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헤밍웨이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헤밍웨이가 머물며 집필활동을 했던 집 모습 ⓒ 오문수

이 영화의 주인공 역시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 의용군이 마리아라는 순박한 시골 처녀를 만나 순수한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보여준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투우, 스페인 문화의 중요한 일부분이지만 동물보호단체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론다를 유명하게 한 또 다른 요인은 투우다. 론다는 근대 투우의 창시자 프란시스코 로메로의 고향이자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있는 곳이다.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고, 최대 6천 명 정도의 인원이 입장할 수 있는 규모로 오직 투우만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투우장이기도 하다.

스페인을 자세히 소개한 <두 개의 스페인>에는 투우에 대한 내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투우의 기원에 대해서는 제천의식이나 수렵기원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황소와의 싸움이 제례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볼거리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원형경기장이 만들어진 로마시대부터인데 이때는 기독교인들의 처형이나 검투사와의 대결에서 황소를 이용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맹수와 검투사와의 대결을 금지하기 시작하면서 로마에서는 투우도 사라졌지만 용맹한 이베리아 황소의 서식지였던 스페인에서는 계속 존속되었다. 16세기에 들어서는 귀족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었고 18세기 들어서는 일반 민중들이 즐기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론다 투우장 앞에 황소상이 서 있다 ⓒ 오문수
론다 투우장 입구에 서있는 투우사 모습이다 ⓒ 오문수

18세기 안달루시아 론다 출신 프란시스코 로메로가 투우와 경기할 때 붉은색 천인 물레따(muleta)를 고안해 황소와 일대일 대결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늘날 시행되는 투우 규칙들은 19세기를 거치면서 점차 정비되었다.

투우 경기는 통상 석양노을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오후에 시작된다. 경기는 3팀의 투우사 그룹이 등장하여 각각 두 마리씩 6마리의 소를 상대로 하며 마리당 20분에서 30분씩 소요되므로 전체 경기시간은 대략 두 시간 반 내외에 걸쳐 진행된다.

하나의 투우사 그룹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처음 등장하는 투우사는 말을 타고 나와 긴 창으로 소에게 상처를 입혀 소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반응을 살피는 2명의 장창잡이(삐까도르)다. 이어  날렵한 동작으로 소의 등에 두 개씩의 짧은 창을 찔러 소를 극도로 흥분시키는 역할을 하는 3명의 단창잡이(빈데리예로)가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천으로 된 물레따를 사용해 소와 혼연일체의 유희를 펼치며 긴 칼로 소의 숨통을 끊는 1명의 주인공 투우사 (마따도르)가 있다. 프랑스 남부 지역과 스페인 북동부 지역인 카탈루냐는 동물 학대를 이유로 투우를 금지시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동물 학대를 이유로 투우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에 여전히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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