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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투표지분류기‘ 공인검증 강제 규정 없어

  • 입력 2013.07.13 10:19
  • 기자명 yosu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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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투표지분류기‘ 공인검증 강제 규정 없어
미분류표, 유령표, 혼표 발생해도 장비 점검·수리만... 규정 마련 및 대책 필요
13.07.12 16:17 | 최종 업데이트 13.07.12 16:18 | 정병진(naz77)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총선, 대선, 지방선거 등의 굵직한 선거마다 지난 10여 년간 줄곧 사용해온 투표지분류기(전자개표기)가 국가공인 검증 기관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사실이확인됐다.

투표지분류기의 공인 검증 여부에 대해중앙선관위의 담당부서인 선거 2과 홍진영 주임은 "문서를 확인해본 결과 독립된 전문 공사기관의 공인인증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이어 투표지분류기에 대한 공인 검증을 거쳐야 하는 관련 법령이 있는지 묻자 중앙선관위 법제과 이지연 주임은 "현 공직선거법에 그런 법령은 없다"고 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전자정부사업부 김영식 수석은 "우리 부처 소관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산업통상자원부 정보통신표준과의 한 직원 또한 "발주처인 선관위가 기기 도입 때 업체에게 인증을 요구해야지, 국가기관 장비라 해서 반드시 공인 인증을 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투표지분류기가 국가 공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법령은 존재한다.

전자정부법제56조 ①항은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행정부는 전자정부의 구현에 필요한 정보통신망과 행정정보 등의 안전성 및 신뢰성 확보를 위한 보안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국가정보화 기본법 38조 ①항도 관련 법령에 해당한다.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은 관계 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보보호시스템의 성능과 신뢰도에 관한 기준을 정하여 고시하고, 정보보호시스템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자에게 그 기준을 지킬 것을 권고할 수 있다. <개정 2013.3.23>"

공직선거법 부칙5조 ②항도 "전산조직을 이용하여 개표사무를 행하는 경우" "전산전문가의 개표사무원 위촉과 전산조직운용프로그램의 작성·검증 및 보관"

그럼에도 중앙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를 ‘전산장비‘가 아닌 ‘단순기계장치‘라 주장하고 있어 현재 공직선거법 부칙 5조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선관위가 국가공인 검증기관의 검증을 거친 적 없는 투표지분류기를 사용한다는 의혹이 많았으나 그 사실이 중앙선관위를 통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 투표지분류기는 2002년 도입 때부터 위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기가 국가공인 검증을 한 차례도 거치지 않은 사실이 지금껏 사회적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적은 없다.

물론 간헐적인 의문제기는 있었다. 지난 2008년 10월 중앙선관위 국감에서 이명수 의원이 "투표지분류기에 쓰인 프로그램은 검증이 된 건가요, 중앙선관위 자체 말고 외부에서?"라 묻자, 중앙선관위사무총장 조영식은 "밖에서도 검증이 다 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명수 의원은 같은 달 23일 열린 한국정보사회진흥원 국감에서도 투표지분류기 검증의 필요성이 있는지 여부를 원장에게 질의해 긍정의 답을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선관위의 투표지분류기가 국가공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장비임이 분명히 드러나진 않아 별다른 파장은 없었다.
▲ 투표지분리기(전자개표기)기존 투표지분리기 구성(투표지분리기 제작 제안요청서 4쪽)
ⓒ 중앙선관위관련사진보기
선관위는 국회, 정부, 법원처럼 헌법상 독립된 국가기관이다. 법령을 성실히 준수해 ‘엄정중립‘을 지키며 각종 공직선거를 ‘공정‘하게 치러야할 본연의 사명이 있다. 그럼에도 총선과 대선 같은 국가의 중대한 선거에 사용하는 전산장비에 대해 국가공인 검증을 안 거쳤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지난 18대 대선에서 후보 중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에게 투표지분리기(전자개표기)가 공인 검증 한 번 안 받은 기기임을 알고 있었는지 물어봤다. 그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공인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답했다.

전국의 18대 대선 개표상황표를 살펴보면 무수한 투표구에서 수백 매 이상의 ‘미분류표‘가 쏟아져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미분류표는 투표지분류기가 이미지 판독에 실패해 후보자별 분류를 하지 못한 채 토해내는 표를 말한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에서 미분류표가 발생하는 평균 오차율을 3.73%로 본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정읍 신태인읍 1투에서는 1887표 개표에 미분류표가 무려 1020매(54%) 나와 전국 최고의 오차율을 기록했다. 또 춘천 소양동 1투는 1835표 개표에 미분류표가 606표(오차율 33%), 서울 강남 삼성2동 2투는 4176표 개표에 미분류표가 981표(오차율 23%)가 나오는 등 투표지분류기의 오차율이 평균치를 크게 웃돌았다.
▲ 대선 개표 현장18대 대선 영등포 개표 현장
ⓒ 정병진관련사진보기
현 투표지분류기의 장비 결함은 비단 ‘미분류표‘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서초구와 순천의 개표소에서는 잘못 구분돼 다른 후보자 표와 섞이는 ‘혼표‘ 현상이 발생했다. 전국 217개 투표구에서 253표에 이르는 ‘유령표‘도 나왔다. ‘유령표‘란 교부한 투표용지 보다 개표시 투표용지가 더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이경목 교수(세명대, 전자상거래학) 같은 전산전문가에 따르면 투표지분류기를 통해 나온 ‘혼표‘와 ‘유령표‘ 현상은 프로그램 조작을 의심할 수 있는 증거에 해당한다. 하지만 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를 제어용 PC로 운용하면서도 전산전문가들에 의뢰해 프로그램 공인 검증을 받지 않았다.

현재 선관위가 사용하는 투표지분류기는 강한 빛, 먼지, 기온, 투표지의 구김 따위에 의해서만도 오작동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순천에서 발생한 혼표 현상에 대해 순천선관위는 "개표소 현장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생긴 일이라 해명했다.

실제로 투표지분류기 운영 유의사항을 보면 "저온에서 잼 가능성이 높기"에 "개표개시 1시간 전 전원을 켜 예열"하라고 돼 있다. 또한 무려 80가지가 넘는 에러 및 장애 조치 요령이 설명돼 있다.

적어도 선관위 같은 국가기관이 제어용 PC같은 전산장비가 딸린 기기를 개표에 사용하려면 해킹과 조작에 대한 안전성, 성능의 정확성, 사용의 편의성 등 기술적 문제를 충분히 검증·보완해 현장에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개표시 투표지분류기의 오작동에 대비해 그 기기를 개발한 한틀시스템과 LG 유지·보수팀으로 구성된 ‘기술요원‘을 개표소마다 배치하므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보는 것 같다. 수백, 수천여 표 미분류표가 발생해도 "심사집계부에서 수작업 확인하니 별 문제 없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도 보인다.
▲ 장애조치방법투표지분리기 장애조치방법
ⓒ 정병진관련사진보기
불량기기를 사용한 지역 선관위에 대해서도 어떠한 시정 명령이나 징계조치는 없다고 한다. 오차율이 심한 경우 단지 "장비 수리와 점검"만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심사집계부에서 수작업으로 투표지를 다 확인하니 불량기기를 사용해도 별 문제 없다"는 선관위의 대체적 시각은 너무 무책임하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3월과 6월조달청 입찰을 통해 ‘투표지분류기 제작‘ 사업을 발주했다. 113억여 원을 들여 개표기 1378를 새로 제작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제안서의 추진배경을 보면 "내구연한(10년 도래에 따른 성능저하, 부품마모 등 장애빈도 높음", "유효투표지의 높은 미분류율", "투표지 걸림 등 장애시 처리과정 복잡", "투표지 오적재 개연성 원천 예방·차단 등 객관적 신뢰성 확보 필요" 따위를 들고 있다. 전문기관에 의한 "기기의 기능·성능·보안 유지를 위한 내구성 등 시험 및 인증과 소프트웨어 품질평가 및 인증"도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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