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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교육칼럼9]결초보은하는 돼지

  • 입력 2013.07.14 16:52
  • 기자명 yosu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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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아이들을 길들이는 곳인가요?


- 아저씨 정성에 결초보은하는 돼지 -


여양고등학교 교사 김광호


기성세대(부모님, 학교, 국가)는 혹여 마음씨 착한 농부 아저씨 같다. 아저씨는 돼지 한 마리를 오일장에서 사 오셨다. 아저씨는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돼지 새끼를 기른다. 마치 사람처럼 대접한다. 항상 돼지와 안방에서 자면서 따뜻한 이불을 덮어준다. 혹 심심할까봐 텔레비전도 보여주고 베토벤 음악도 들려준다. 더우면 에어컨을 켜주고 추우면 난로까지 준비해준다. 혹여 상처가 덧나 부스럼이 생기면 마데카솔을 발라주며 위로까지 해준다. 정성과 사랑을 듬뿍 먹고 자란 돼지는 어느새 어른 돼지가 되었다.

어른 돼지는 잠을 자다가 우연히 아저씨의 고민을 듣게 된다.‘어쩌지. 낼 모레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 결혼식인데 손님을 어떻게 접대한담. 결혼식이 있으면 대대로 돼지를 잡아 대접하는 풍속이 야속하구나. 아! 어떻게 하지? 아, 돼지가 필요한데 나에게는 돼지를 살 돈이 없구나!’아저씨는 담배 한 대를 피면서 혼자 독백조로 말하였다.

돼지가 주인님의 고뇌에 찬 음성을 듣고 곧바로 결초보은하겠다고 말한다. “주인님! 그동안 저를 자식처럼 보살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인님께서 저를 필요하신 것 같아서 저를 드리겠습니다. 저를 잡아다가 쓰세요. 동안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감동의 대사가 계속 오갑니다. 결국 아저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돼지를 손수 잡아서 손님에게 대접하였고 많은 사람들은 행복해 하였습니다.

자! 여러분은 이 아저씨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돼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저씨와 돼지는 한편의 감동을 주는 이야기일까요? 조금만 방향을 틀어서 생각해볼까요? 혹여 그 아저씨가 학교이며 부모님이고 국가라고 생각해볼까요. 혹여 그 돼지가 아이들이라고 가정해볼까요. 어떻습니까? 무슨 느낌이 오나요. 이 아저씨 어떤 아저씨죠? 그렇게 정성을 다해 돼지를 길렀을 뿐이지요. 그렇게 정성을 다해 교육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아저씨는 철학이 없는 내용과 방법으로 돼지에게 정성과 사랑만 보여주었던 것은 아닐까요. 무조건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 하면 훌륭한 돼지가 되나요.

이 돼지는 어떤 돼지죠? 혹 미친 돼지 아닐까요? 미친 돼지가 맞을 겁니다. 아저씨의 정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서 우리를 떠나는 못하는 돼지로 커버린 것입니다. 너무 사육되어서 멧돼지의 기백은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요. 너무 길들여져 버려서 다리는 짧아지고 이빨은 무디어졌으며 털까지 빠져버린, 야성(野性)이라곤 찾아봐야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돼지로 커버렸습니다. 잘 길들어진 돼지, 순종하는 돼지가 여러분이 바라는 돼지인가요.

불쌍하지 않나요. 이래선 안 되지 않나요. 우리 아저씨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진정한 정성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시다. 우리 돼지에게 진정한 결초보은이 무엇인지, 진정한 삶(자아)이 무엇인지 안내해줍시다. 혹여 그동안 우리 모두는 아저씨와 돼지가 아니였는지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눈동자를 마주보며 성찰(省察)봅시다.

윤동주님의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이다지도 욕될까.//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만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告白)을 했던가.//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여러분! 우리도 윤동주님처럼 삶(교육)에 대한 참회록(懺悔錄)을 쓸 시점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달콤한 꿀물에 빠져버린, 화려한 문명에 도취해버린 너와 나의 자화상을 돌아보면서, 성찰(省察)하는 현대화, 반성(反省)하는 자본화를 꿈꿔봅시다. 이젠 학교(교육) 또한 아이들에게 자본(출세)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방법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어떻게 삶을 살아야하는지,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인지, 어떤 사회가 행복한 사회인지 사색하고 통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두 가슴에 꼭 기억해 주시렵니까. 교육은 결코 아이들을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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